42년 실리콘 외길 걸어온 영일… ‘실리콘 샤워기’로 도약

시흥=이은영 기자 2023. 10. 29.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견·중기 오너 2.0] 권오훈 영일실리콘 부사장
물때·꼬임·환경호르몬 없는 실리콘 샤워기 개발
“직원 아이디어로 탄생… 일본·카타르 수출 확정”

한국경제를 이끄는 중견·중소기업의 2·3세 경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들은 선대로부터 배운 승부 근성과 해외 경험을 발판 삼아 글로벌 무대로 뻗어나간다. 1세대 기업인을 뛰어넘기 위해 2·3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들어본다. [편집자주]

“해외에는 실리콘 샤워기라는 제품이 없다. 국내에는 경쟁사가 일부 있지만, 아이가 입에 넣어도 될 만큼 안전한 등급의 실리콘으로 국내에서 제조하는 샤워기는 ‘올바(All:ba)’뿐이다. 영일실리콘의 기술력이 고스란히 담겼다.”

영일실리콘은 업력 42년의 실리콘 전문기업이다. 실리콘이 채 산업화 되기 전인 1981년 구로공구상가에서 영일상사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지금은 경기 시흥에 7000㎡(약 2100평) 규모의 공장을 지닌 중소기업이 됐다.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바이오로직스, 에버랜드, 한화, 에코프로, 대웅제약 등에 공업용, 의료용 실리콘을 공급하고 있다. 주력 제품은 내열 실리콘이다. 이 실리콘은 최대 300℃까지 견딜 수 있다. 주로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분야 부품으로 쓰인다.

권오훈 영일실리콘 부사장 겸 영일상사 대표. 의료용 실리콘으로 샤워기 호스를 개발해 영일상사 브랜드 '올바'를 통해 출시했다./시흥=이은영 기자

권오훈 부사장은 미국과 한국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를 마친 뒤 2015년 영일실리콘에 실장으로 입사했다. 그의 첫 숙제는 세대교체였다. 영일실리콘은 40년 넘게 사업을 이어온 탄탄한 중소기업이지만, 권 부사장은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외형을 키우고자 했다. 그러려면 젊고 유능한 직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권 부사장은 “B2B(기업 간 거래) 제조기업이긴 하지만 구성원 대다수가 50~60대였다.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5년 동안 인적 관리를 맡으며 조직을 다시 꾸렸다. 지금은 직원의 70%가 20~30대다. 국내에서 가장 젊은 실리콘 기업일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군도 산업 트렌드에 맞춰 꾸려가고 있다. 그는 “젊은 직원들이 제조업에 종사하면서 ‘이 제품에 우리 부품이 들어갔지’ 하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반도체와 이차전지, 바이오 분야 실리콘 부품 제조를 주력으로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영일실리콘이 삼성전자, 한화, 대웅제약 등에 납품하고 있는 실리콘 시트(왼쪽)와 의료용 실리콘 부품. /영일실리콘 제공

권 부사장이 외형 확대를 위해 꺼내든 또 다른 카드는 샤워기였다. 의료용 실리콘으로 샤워기 헤드와 호스를 만들었다. 기존의 메탈 샤워기는 물때가 잘 껴 청소가 어렵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또 폴리염화비닐(PVC)이 쓰인 플라스틱 샤워기는 가소제 때문에 뜨거운 물에 오래 노출되면 환경 호르몬이 나오는 문제도 있었다.

영일실리콘은 의료용 등급 실리콘으로 이 소재를 대신했다. 그 결과 호스 줄이 꼬이지 않고 물때가 끼지 않는, 인체에 무해한 샤워기가 탄생했다. 젊은 직원의 아이디어였다.

권 부사장은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제품 아이디어 회의에서 실리콘으로 샤워기를 만들자는 제안이 나와 시작한 사업”이라며 “당시 외형 성장에 대한 고민을 한창 하던 때였다. 수출을 해야 한다는 결론은 나왔는데 기존과 같은 B2B 반제품으로는 어려워 보였다. 옆 나라만 가도 제조사들이 필요로 하는 실리콘 부품 사양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만의 B2C 완제품이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욕실이 흰색의 밋밋한 인테리어인 점에 착안해 샤워기 자체가 하나의 디자인 요소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색깔로 제품을 구성했다. 권 부사장은 “자체 생산라인이 있기에 가능했다. 안료를 배합할 때와 실제 결과물을 찍어냈을 때 색상이 다르다. 원하는 색상이 나오기까지 시행착오를 30번씩은 반복했다”며 “외부 공장에 의뢰해 제조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말했다.

올바 샤워기 헤드와 호스 제품 사진. /올바 제공

제품 개발을 끝낸 뒤엔 B2C 판매라는 낯선 벽을 만났다. 권 부사장은 과거 경영대학원에서 만났던 유명 마케터에게 무작정 찾아갔다. 권 부사장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며 “영일실리콘은 B2B 제조기업이라 내부에 B2C 마케팅 전문가가 없으니, 제가 나서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그 분에게 큰 도움을 받아 브랜드와 로고, 홈페이지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실리콘 샤워기는 권 부사장이 대표로 있는 영일상사가 지난해 9월 ‘올바(All:ba)’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유일한 100% 국내산 실리콘 샤워기다. 국내 최대 워터파크인 캐리비안베이에서 도입했고 서울의 프리미엄 산후조리원과 비즈니스 호텔에도 납품했다.

최근엔 일본과 카타르 수출을 확정 지었다. 권 부사장은 “올해 4월부터 일본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6개월 동안 전시회만 4번을 나갔다. 일본의 여러 잡화점 브랜드에서 관심을 보여 협의 중”이라며 “일본 다음으로는 대만, 홍콩, 태국 등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려 한다. 욕심을 더 내자면 독일 등 유럽 진출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올바는 계속 제품군을 늘려갈 예정이다. 그는 “펫산업 쪽에서도 올바 샤워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리콘 호스는 그대로 유지하고 헤드에 펫 전용 브러쉬를 부착하는 식의 제품을 고민 중”이라며 “실리콘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제품을 꾸준히 개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