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원하는 남성성의 변화…‘대세’ 방송인 덱스에 열광하는 이유[이진송의 아니 근데]

기자 2023. 10.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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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자신감·치명적 다정함·순백의 진정성…남다른 태도가 주는 호감
요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방송인이자 유튜브 크리에이터 ‘덱스’(본명 김진영)가 <솔로지옥2> 출연 당시 자기소개를 하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

몇년 사이 가장 용례가 달라진 표현 중 하나가 ‘상남자’다. ‘남자다운 남자’ ‘남성성이 두드러지는 남자’를 뜻하던 이 말은, 거친 언행을 과시하며 상남자라고 주장하는 밈이 비판받으면서 오히려 조롱의 의미를 띠게 되었다. 남성성을 과시하려다 되레 멋을 잃는 남자를 ‘상(上)’과 반대되는 의미에서 ‘하(下)남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성성은 남성이 사회 문화적으로 습득하는 젠더 정체성이다. ‘남성성’, 즉 ‘남자다움’에 대한 사회적 이상은 생물학적인 남성다움을 둘러싼 사회적 구성물, 복잡한 권력관계의 망에 의해 지탱되고 지배적인 문화의 틀과 이데올로기를 통해 구체화되는 패러다임(박노자, <씩씩한 남자 만들기>, 푸른역사, 2009, 33쪽)이다. 남성성은 대개 다음과 같은 가치를 상징한다. 강하고, 담대하고, 박력 있고, 활발하고, 주체적이고…. 이것은 곧잘 이렇게 변용된다. 폭력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강압적이고…. 그래서 미디어 속 ‘상남자’들은 벽에 여자를 밀어붙이고, 강제로 키스하고, 밥을 먹을 건지 같이 죽을 건지 물으며 소리 질렀던 것이다. 남성성은 고정되거나 불변의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사회 문화적인 틀이나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전통적인 남성성에서 어떤 요소가 탈각되고,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시대가 선호하는, 가장 트렌디한, 안전하고 또 ‘러블리’하게 다듬어진 남성성의 의인화가 있다. 방송인이자 유튜브 크리에이터 ‘덱스’(본명 김진영·전 군인)다.

웹 예능 <가짜 사나이2>와 서바이벌 예능 <피의 게임>(MBC·wavve)으로 이름을 알린 덱스는 <솔로지옥2>(넷플릭스)에서 ‘메기남’으로 등장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메기는 연애 프로그램에서 중간 투입되는 역할을 일컫는데, 기존 러브라인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다. 그만큼 메기는 치명적이어야 재미가 있다. 하나같이 근사한 외모의 출연자 사이에서 덱스가 유독 돋보인 순간은, 모르는 것을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하는 태도였다. 덱스는 데이트 도중 상대방에게 파스타를 덜어주다가, 가위로 싹둑 자른다. 여성 출연자가 파스타를 가위로 자르는 사람을 처음 봤다며 웃자, 덱스는 이런 데 잘 안 와서 모른다고 쑥스러워하며 사과한다. 술을 마실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는 척’이나 ‘있는 척’하지 않고 담백하게 인정하는 모습이 시청자의 호감을 샀다. 데이트할 때는 다정하고 로맨틱하지만, 육탄전을 벌일 때는 거칠고 야성적인 매력을 뽐낸 덱스는 대중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시즌1에 이어) <피의 게임2>에 출연, “사냥할 것인가, 사냥당할 것인가”라는 캐치프레이즈에 걸맞게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UDT 출신의 피지컬과 운동 능력을 활용해 기량을 펼친 덱스는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신인남자예능인상을 받았다. <좀비버스>(넷플릭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2>(MBC)에 고정으로 출연하고, 웹 예능 <덱스의 냉터뷰>를 진행하며 ‘MBC의 막내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곱상한 외모·UDT 출신 이력에 ‘솔로지옥2’ 메기남 캐릭터 등 반전 매력
강함을 과시하지 않는 성품…전세사기 피해 공개 등 진솔한 모습도 눈길
친절함을 ‘습관적 플러팅’으로 몰기 보단…강함을 재정의하는 계기 되길

자기보존 욕구가 있는 인간은 위기 상황에서 의존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갈망한다. 일상에서는 위협적이지 않지만, 위기가 닥치면 복면을 벗듯이 사실은 강인한 ‘싸움 짱’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인물은 늘 흥미롭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스스럼없이 드러내지만 ‘알고 보면 특전사 출신’이라는 덱스의 배경은 이런 판타지를 충족시킨다. 백수로 보였지만 특전사 출신이었던 <아저씨>의 원빈, 아빠의 반전을 보여준 <테이큰> 시리즈의 리엄 니슨, 아트박스 사장이지만 우리 동네가 위험에 빠지면 나서는 <베테랑>의 마동석을 같은 계열에 넣어줄 수 있겠다. 하지만 덱스의 인기는 UDT 출신으로서 뛰어난 운동 능력과 강인한 정신력에서만 기인하지 않는다. 특정 캐릭터를 선호하는 대중의 취향은 시대의 욕망을 반영한다. 덱스의 인기는 그가 ‘충분히 강하면서도’ 폭력적이거나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이 포인트다. 외모가 빼어나더라도, ‘하남자’ 같다는 평가를 받으면 인기의 상승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 강함을 폭력과 구별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강인함을 증명하고자 약자를 괴롭히거나 ‘강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가치(예를 들면 여성성)를 억압하고 배제하는 일이 발생한다. 권력을 과시하는 형태로 벌어지는 학교폭력이나, 남자를 자극하는 말이 ‘남자도 아니다’라는 조롱인 것처럼.

<덱스의 냉터뷰 시즌2>에서 오랫동안 이상형으로 꼽아왔던 트와이스의 사나를 만난 장면. 유튜브 제공

덱스는 상대에게 다정한 말투로 칭찬을 건네고, 상냥하게 대한다. 그 특징 때문에 ‘플러팅’을 습관적으로 날리는 ‘유죄인간’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플러팅은 상대에게 호감 표시를 한다는 뜻인데, ‘끼 부린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여자친구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거울을 봐라, 네가 꽃이다’라고 말하는 게 상남자식 애정표현이라며 유머(?)로 돌던 게 불과 몇년 전이다. 무엇이 강함인지, 강함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유와 가치관도 변화했다. 우악스럽고, 폭력적이고, 지나치게 의리나 멋에 집착하는 요소는 권위를 잃는다. 하비 맨스필드는 위험이 제거된 모험사회에서 남성다움이란 쓸데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거추장스러운 것에 불과해진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비폭력적이고, 다정다감하며,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섬세함이 ‘새로운 남성성’으로 부상했다. 이른바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한, 강강약약. <덱스의 냉터뷰 시즌2>에서 덱스가 오랫동안 이상형으로 꼽아왔던 트와이스의 사나를 만나자 긴장해서 떠는 모습은 645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런데, 덱스의 이런 모습이 꼭 로맨틱한 면에서만 매력적인 걸까? <좀비버스>는 덱스가 <솔로지옥2>에 출연해 플러팅 장인이라는 캐릭터를 얻기 전 촬영한 프로그램이다. 좀비 떼에 맞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서, 덱스는 츠키를 구하려고 도르래를 타고 내려간다. 한 명이 내려가면 한 명이 올라오는 시스템이라 원래는 한 사람을 구하려면 한 사람이 희생할 수밖에 없는 설정이다. 그런데 츠키가 무사히 위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덱스는 맨몸으로 밧줄을 타고 올라 생존한다. 또한 파트리샤가 뗏목 위에서 무서워하자 얼음물에 뛰어들어 뗏목을 밀기도 한다. 이런 장면들은 덱스의 운동 능력뿐만 아니라, 열악한 상황에서 어떤 계산도 없이 오로지 선뜻 뛰어드는 모습에서 신선함을 안긴다. 이성적인 호감 때문에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저 힘든 일을 해야 하는데 ‘내가’ 할 줄 아니까 한다. 한반도 거주민에게는 딱히 허용된 적 없는 ‘기사도’라는 달콤한 환상, 소유한 적 없지만 어쩐지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을 선사하는 노스탤지어랄까. 범죄 때문에 만들어진 여성 전용 주차장을 역차별이라 주장하고, 임산부석조차도 어렵게 사수해야 하는 사회에서, 전쟁 나면 안 지켜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인셀들에 질린 여성들에게, 덱스의 이런 담백함은 차라리 시민의식의 차원에서 환대하게 되는 것이다. 덱스의 장점과, 그에 열광하는 인기를 단순히 이성적인 차원에서만 다룰 수 없는 이유다. 덱스는 플러팅을 많이 한다는 평가에 대해, “현재 이 사회가 서로에 대해서 칭찬이 너무 야박하지 않나. 나는 상대에게 그냥 칭찬을 한 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성 간의 예의 바르고 친근한 대화는 무조건 로맨틱하게 몰고 가는 경향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부분이다.

덱스가 인기를 끄는 또 다른 요인은 ‘진정성’이라는 가치를 온몸으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 몰입한다는 덱스는 연애 프로그램에는 진짜 여자친구를 사귀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생존 서바이벌에서는 자신보다 체구가 훨씬 큰 상대에게 덤벼든다. 또한 진로 고민, 전세사기, 번아웃처럼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솔직하게 공개한다. 이러한 사건은 최근 청년층 대다수가 경험하거나, 위기의식을 느끼는 이슈들이라 공감하고 지지하기 쉽다. 한 명의 시청자도 없이 혼자서 몇시간씩 인터넷 방송을 하던 시절을 거쳐 여기까지 온 ‘자수성가의 서사’ 역시 드라마틱하다. 이렇듯 다양한 인기 요인을 두루 보유한 덱스의 인기는 한동안 식지 않을 듯하다. 물론 우려되는 지점은 있다. 강인함에 대한 매혹은 자연스럽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신체 능력이나 무력을 맹목적으로 칭송하거나 우월하다고 추앙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군인의 능력이란 전쟁이라는 사건을 전제로 하기에. 그럼에도 덱스를 둘러싼 열광이, 강인함을 새로이 정의하고 남성성의 의미를 확장하는 즐거운 방향으로 흐르길 바란다. 물리적인 능력이나 그로부터 파생되는 권력보다, 강인함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방식과 그를 둘러싼 상호작용이 더 주목받았으면 한다. 덱스는, 그리고 덱스의 특별함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럴 역량이 충분하니까.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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