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행] 깎아지른 절벽 타고 붉은 물결 넘실…율곡 선생도 예서 발길을 멈추었네

황지원 2023. 10. 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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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행…오대산 ‘소금강’으로
무릉계폭부터 구룡폭포까지 3.1㎞
‘1569 율곡 유산길’ 걸으며 단풍 만끽
식당암서 마주한 비경에 절로 감탄

단풍은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 구경을 일찍 가면 아직 가을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초록 잎만 무성하고 조금만 늦으면 이미 잎들이 가지와 헤어짐을 알린다. 빨갛게 물든 가로수만 봐도 마음 설레는 계절, 사방에서 가을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산으로 떠나는 건 어떨까.

◆금강산만큼 아름답다는 오대산 ‘소금강’=오대산은 강원 강릉·홍천·평창에 걸쳐 있는 높이 1563m의 산이다. 이 산의 동쪽 자락에는 절벽과 바위의 모습이 금강산과 닮았다고 해 ‘소금강(小金剛)’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 있다. 이곳은 뛰어난 경치를 인정받아 1970년 명승 제1호로 지정됐다. 400년 전, 일찍이 소금강의 아름다움을 알아본 이가 있다. 율곡 이이다. 소금강의 원래 이름은 ‘청학산’이었는데 율곡은 1569년 이곳을 탐방하고 ‘유청학산기’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소금강 주차장에서 시작해 대표적인 명소인 무릉계폭∼십자소∼연화담∼금강사∼식당암∼구룡폭포를 지나는 3.1㎞ 구간은 2021년 ‘1569 율곡 유산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강원 강릉 소금강 식당암에서 등산객들이 바위에 앉아 가을을 즐기고 있다. 땀을 흘리고 나서야 비로소 바위와 절벽·봉우리가 만들어낸 비경을 볼 수 있다. 강릉=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푸른 낭떠러지가 오이를 깎아 세운 듯하고 날아 떨어지는 샘물이 백설을 뿜어냈다.”

등산로 초입에 있는 폭포 ‘무릉계폭’을 보고 율곡이 ‘유청학산기’에 쓴 글이다. 무릉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무릉도원 같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조용히 흐르던 물은 낭떠러지를 만나 우렁찬 소리와 흰 거품을 내며 떨어진다. 이제 막 붉게 물들기 시작한 잎들은 ‘산 위로 올라가면 더 많은 단풍을 볼 수 있겠지’라는 기대감이 들게 한다.

열십자(十) 모양의 연못 ‘십자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열십자(十) 모양의 연못 ‘십자소’도 명물이다. 등산객들은 너도나도 단풍잎 사이로 십자 모양을 찾아 헤맨다. 한참을 찾은 끝에 나무 틈 사이로 십자소가 빼꼼히 모습을 드러낸다. 산 위에서 내려오는 거센 물줄기와 양편의 조그마한 물줄기가 억겁의 시간 동안 돌을 깎아 큰 웅덩이를 만든 것이다. 옛사람들의 눈엔 열십자였던 이곳이 현대인에겐 산속에 숨은 별로 보인다.

유산길의 하이라이트인 식당암은 어떨까. 식당암은 십자소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식당암을 눈앞에서 마주하면 그 비경(祕境)에 압도돼 감탄이 절로 나온다. 깎아내린 계곡 틈 사이에 맑은 물이 흐르고, 주변에 울긋불긋 핀 단풍이 계곡물이 만든 거울에 비친다. 그 사이에 가을옷을 입은 촉운봉이 우뚝 서 있다. 식당암은 계곡에 있는 넓적하고 평평한 바위다.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되찾으려고 군사들과 산속에서 훈련하던 중 밥을 지어 먹었다고 해서 식당암(食堂巖)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식당암을 둘러싼 절벽과 촉운봉의 위엄은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일깨운다. 400년 전, 율곡은 날씨가 흐려진 탓에 식당암에서 산행을 멈춰야 했다. 더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보단 ‘태어나 이 정도 절경을 봤으면 충분하다’는 마음이 더 컸으리라.

◆단풍 보기 좋은 전국 산지, 또 어디?=오대산뿐 아니라 전국에 가을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산이 많다. 경기 광주 남한산성은 수도권에서 단풍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으며 음식점도 많아 산행 후 배를 채우기도 제격이다. 5개의 코스가 있는데 이중 남문에서 시작하는 4코스가 ‘단풍 맛집’으로 유명하다.

경기 광주 남한산성 KBS 한국방송
충북 단양 소백산 보발재 단양군청

충북 단양 소백산 자락 해발 540m에 있는 보발재는 드라이브하며 단풍나무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구불구불한 3㎞ 길이의 도로를 지나가면 붉게 물든 단풍이 끝없이 이어진다.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서 발아래로 펼쳐진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것도 잊지 말자.

전북 고창 선운산 선운사 고창군청

전북 고창 선운산 북쪽 기슭에 자리한 선운사는 가을 여행지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이맘때쯤 가면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이 사찰을 가득 채운다. 절을 둘러싼 하천인 도솔천과 어우러진 오색빛깔 나무들이 장관을 이룬다.

단풍 말고 색다른 가을 풍경을 즐기고 싶다면 경남 합천 가야산이 제격이다. 가야산에는 해인사로 올라가는 산책로 ‘가야산 소리길’이 있다. 이곳을 걷다보면 은행나무 구간이 나타난다. 은행잎이 떨어져도 아쉬워할 것 없다. 샛노란 은행잎은 땅에서 ‘옐로 카펫’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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