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1주기 이태원엔 추모 행렬…홍대엔 곳곳 핼러윈 복장(종합)
경찰·구청·소방 총출동…"작년엔 왜 안했나" 분통·아쉬움도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토요일인 28일 핼러윈을 앞두고 주말을 즐기려는 인파가 서울 마포구 홍대 거리로 몰렸다. 참사 1주기를 앞둔 이태원 일대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시민의 발걸음이 종일 이어졌다.
이날 밤 홍대 거리는 해 질 무렵부터 연인, 가족, 친구 등과 주말을 즐기러 나온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볐다.
밤이 깊어질수록 식당과 술집은 손님들로 가득 찼고 곳곳에 늘어선 좌판에는 각종 장신구와 먹을거리를 구경하는 시민들이 줄지었다.
일부 주점은 해골과 호박 등 핼러윈 장식을 걸어뒀고 핼러윈 분장을 한 종업원들이 호객 행위를 했다.
핼러윈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호박등 탈을 쓴 어린아이에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따라 한 남성도 보였다. 한복, 피에로, 마블 슈퍼히어로 복장 등 핼러윈 코스프레를 한 시민도 다수 볼 수 있었다.
다만 전체적으로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가 나지는 않았고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대규모 인파가 몰린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여유롭게 번화가와 골목길을 오갔고 일부 혼잡 지역에서도 경찰과 구청 관계자들의 통제에 따르며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친구 3명과 놀러 나온 대학생 정모(20)씨는 "올해 성인이 돼 처음으로 핼러윈을 맞아 나왔다"며 "사람이 너무 많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아직은 적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인파 관리에는 경찰, 구청, 소방 등 관계기관이 총출동했다.
경찰은 주요 거리에 안전 펜스를 설치해 시민들이 뒤엉키지 않고 양방향으로 오가도록 했다. 곳곳에는 경찰기동대 버스와 안전사고 예방을 강조하는 문구가 적힌 방송차량이 배치됐다.
지하철역 계단에서는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통행 인원을 통제했고 소방당국의 임시응급의료소와 마포구청의 핼러윈 합동상황실이 꾸려졌다.
좁은 골목에서 인파 관리를 하던 김모 경장은 "며칠 전부터 현장 시찰을 하고 만전의 대비를 했는데 생각만큼 많은 사람이 몰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음식점과 주점이 몰려있어 대표적인 인구 운집 지역인 강남역 일대는 핼러윈 코스튬이나 장식 하나 없이 평소 주말과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오가는 인파가 많지 않았고 경찰이 지정한 고밀집 위험 골목길에 해당하는 강남역 CGV앞 골목, 영풍문고 옆 샛길도 전혀 붐비지 않았다.
카페와 식당 등이 입점한 건물의 경비원 박모(70)씨는 "올해는 코스튬을 입은 젊은이를 한 명도 못봤고 몰려다니는 사람들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강남역 CGV 앞에서 만난 장선우(20)씨는 '핼러윈을 기념하기 위해 나왔느냐'는 질문에 "친구랑 저녁약속 때문에 나왔다. 맛집을 검색하는 중이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참사의 아픔이 가시지 않은 이태원 역시 주말을 즐기러 나온 시민과 관광객으로 거리가 북적이기는 했지만 여느 주말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해밀톤호텔 앞 사거리에선 경찰 10여명이 교통 안내를 하고 있었고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양방향 2개 차로는 약 200m 구간이 통제됐다. 세계음식특화거리 한 가운데엔 질서 유지선이 세워졌다.
여자친구와 왔다는 김형석(28)씨는 "평소에 핼러윈 파티를 즐기곤 했지만 지난해 큰 사고도 있고 해서 올해는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참사 현장에는 1주기를 하루 앞두고 시민들의 추모 발걸음이 종일 이어졌다.
추모의 벽 앞은 추모객이 가져다 놓은 음료와 과자, 꽃이 가득했다. 오래돼 색이 바랜 추모 메시지 위로 '기억하겠다'는 내용의 알록달록한 포스트잇이 새로 붙었다.
이곳에서 만난 안예령(19)씨는 "참사 당시 개인의 탓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며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만 국적의 자오 신이(23)씨는 "뉴스로 사고 소식을 접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생각했다"며 "마침 한국으로 여행을 왔는데 사고 1주기라고 하길래 직접 와서 추모하고 싶었다"고 했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활동가 등은 참사 1주기를 맞아 준비한 보라색 팔찌와 리본 등을 호박등 바구니에서 꺼내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10·29 기억과 안전의길' 디자인을 맡은 미술가 권은비씨는 "누군가는 핼러윈을, 핼러윈을 즐기려고 모인 사람들을 탓했으나 본질은 그게 아니지 않나. 인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등 문제가 따로 있었다"며 "핼러윈은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바구니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와 달리 인파 관리가 철저히 이뤄지는 모습에 시민들은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용산구 토박이라는 한 중년 여성은 "작년에는 경찰이 없다가 올해 왜 갑자기 이러냐. 정말 화가 난다"며 "경찰이 작년에 이 정도만 있어도 사고는 안 났다. 작년 그날 소식을 듣고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왔는데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참사로 떠나보낸 지인을 추모하기 위해 대전에서 이태원까지 왔다는 30대 A씨도 "해야 할 일을 너무 늦게 했다. 뒷북을 친 것"이라며 "당시 시위 현장에 배치했던 인력의 일부만 이곳으로 뛰어와 통제했어도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남역 인근에서 만난 20대 여성은 "참사 날 오후 8시까지 이태원에 있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왔다"고 조심스레 밝히며 "오늘은 정말 안전하게 느껴진다. 이태원은 너무 붐볐었다"고 돌이켰다.
서울시 데이터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 기준 홍대 거리에는 약 9만명이 운집해 혼잡도가 '붐빔'에 해당했다. 오후 10시에는 약 8만명으로 다소 줄었다.
오후 10시 기준 이태원 관광특구 인파는 약 1만4천명, 강남역은 약 5만명으로 '약간 붐빔', '보통' 수준이었다.
(윤보람 박형빈 계승현 장보인 기자)
br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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