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필의 인공지능 거버넌스] 높고도 높은 '최소 수준'의 창의성[수담활론]
[파이낸셜뉴스] [수담활론(手談闊論)]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글(수담)을 통해 우리사회 곳곳의 이슈들을 파악하고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편집자 주>
다만 창작성은 저작자를 기준으로 한 상대적 개념이다. 문명과 고립된 정글에서 자라난 늑대소년이 목탄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가정해 보자. 우연히 이 그림이 유명화가의 작품과 실질적으로 유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도 저작권 침해는 인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창작성 있는 저작물이 된다. 정글에서 유명화가의 기존 작품을 참조해 목탄화를 그리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목탄화는 늑대소년의 독자적 창작인 것이다. 이처럼 창작성은 절대적 개념인 특허법상 '신규성(novelty)'과는 구별된다.
미국 저작권법상 창작성의 해석도 대동소이하다. '독자적 창작(independent creation)'일 것과 '최소 수준의 창의성(minimal level of creativity)'을 요구한다. 이들은 1991년 연방대법원이 업종별 전화번호부에 대한 파이스트(Feist) 판결에서 제시한 창작성의 두 가지 구성요소다. 독자적 창작이란 우리 대법원이 말하듯 모방이 아닌 저작자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 또는 감정의 표현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최소 수준의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Feist 판결은 이를 극도로 낮은 수준의 창의성이라고 했다. 이 개념의 충분한 이해를 위해서는 많은 저작권 개념과 이론을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아이디어나 사실이 아닌 사상과 감정의 표현일 때 충족할 수 있는 정말 최소한의 요건이다. '약간의 창의성(modicum of creativity)'이라고도 불린다.
다만 그 결과 매우 어색한 상황이 발생한다. 가령 2017년 연방대법원의 'Star Athletica v. Varsity Brands' 사건을 생각해 보자. 연방대법원은 Varsity Brands의 치어리더 유니폼 그래픽 디자인이 회화, 그래픽, 조각 저작물로서 저작권 보호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이 판례의 핵심 쟁점은 저작권법상 실용성원칙의 적용 여부였고, 연방대법원 다수의견도 이 결정이 창작성에 대한 판단은 아니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연방대법원이 창작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판단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줄무늬, 갈매기무늬(chevron) 등 단순한 2차원 디자인에 대해 아이디어에 불과하고 사상과 감정의 표현에 이르지 못했다는 판단이 내려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판단 대상인 치어리더의 유니폼 디자인을 인간 디자이너가 창작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저작자가 인간인 경우 요구되는 창작성은 그야말로 최소 수준이다. 또 결국은 연방대법원도 그 단순한 2차원 디자인들의 저작권을 일단은 인정한 셈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탈러 박사의 창의기계가 창작한 파라다이스로 가는 최근 입구란 작품은 어떠한가. 만일 인공지능 창작물이아니었다면 치어리더 유니폼의 줄무늬, 갈매기무늬보다는 파라다이스로 가는 최근 입구의 창작성을 더 높이 평가하지 않을까. 일반인의 눈에 훨씬 창작성이 높아 보이는 작품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되지 못하고 더 단순해 보이는 인간의 작품은 저작권 보호가 가능하다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2022년 9월 미국 콜로라도주 회화 공모전에서 우승한 '우주의 오페라 극장'은 어떨까. 올해 9월 미국 저작권청 재심위원회는 이 작품에 대해서도 창작성이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예술작품의 창작성 판단이 이처럼 인간의 작품이냐, 인공지능의 작품이냐에 따라 원천적으로 갈리고 있는데 이는 예술작품에 대한 인간의 평가에 혼선을 초래하게 된다. 인류 역사상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이다.
그에 따르면 생성형 인공지능도 인간 중심의 예술적 가치를 해치는 존재가 될 수는 없다. 그의 깊은 역사적, 철학적 사유와 성찰에 기초한 발표내용에 많은 격려를 받았다. 한편, 인공지능 거버넌스를 위해서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식재산 분야만 하더라도 인간이 발명과 창작의 유일한 주체라는 기존 입법의 전제가 도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예술 영역에 가져올 긍정적 영향을 기대하며 그 활용을 장려하는 입장, 그리고 인공지능의 잠재적 위험을 최소화하고 법적 혼돈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은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핵심적인 한 가지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기술이든 예술이든 인간의 가치를 확인하고 고양하는 데 그 존재이유가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인공지능 거버넌스도 헌법상 최고 이념인 인간의 존엄성을 기준으로 정립해 가야 하는 것이다.
/박성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이 글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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