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단속 걸리자 남의 주민번호 댄 男…“오해한 아내 집까지 나가” 피도용자 분통

경찰, 단속 과정서 신분 확인 미흡…통지서 잘못 보내
“日출장 갔는데 어떻게 부천서 걸리나” 이혼 위기 겪어

주민등록번호를 도용 당한 A씨에게 잘못 도착한 운전면허 취소 처분 사전통지서. 연합뉴스

 
한 전기자전거 운전자가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경찰의 음주 단속에서 빠져나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도용 피해자의 가정으로 잘못된 통지서를 보냈고, 피해 남성은 이를 오해한 아내와 이혼 위기까지 겪는 등 가정이 파탄 날 뻔했다고 한다.

28일 부천 원미경찰서와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부산에서 무역업을 하는 남성 A씨가 지난 12일부터 18일까지 일본 출장을 간 사이 A씨 거주지로 운전면허 취소 처분 사전통지서가 도착했다. 경찰은 A씨가 지난 14일 새벽 면허취소 수준의 음주 상태에서 전기자전거를 타다가 적발됐다며 오는 31일까지 경찰에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당시 A씨는 일본 출장으로 부재중이었고, 통지서는 A씨의 부인 B씨에게 전달됐다.

B씨는 일본에 있는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출장 간 사람이 어떻게 부천에서 음주운전에 단속될 수 있느냐”며 추궁했다고 한다. 오해가 쌓이면서 A씨 부부는 크게 싸웠고, A씨는 결국 출장 업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귀국해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B씨는 “경찰 통지서가 잘못됐을 리 없다”며 집을 나갔다.

이에 A씨는 경찰에 출입국 증명서와 일본 입국 사실이 기록된 여권, 항공권 등을 증거로 제시한 후에야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무죄가 소명되면서 아내도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확인 결과 부천에 사는 C씨가 과거에 습득한 A씨 신분증의 주민등록증 번호를 외우고 있다가 경찰의 음주단속에 걸리자 자신이 A씨인 것처럼 주민등록번호를 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C씨가 신분증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대자 내부 전산망을 통해 운전면허증의 사진을 검색해 C씨와 대조했으나 주위가 어두워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C씨는 허위 신분 제시로 문제가 커질 것을 우려, 음주단속 며칠 뒤 경찰에 다시 연락해 이런 사실을 실토했다. 경찰은 C씨를 형사 입건해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A씨는 “경찰이 열심히 일하는 것은 고맙지만 좀 더 정확히 잘했으면 좋겠다”며 “부정확한 행정처분을 남발해 우리 부부는 잠깐이지만 별거에 들어가는 등 이혼할 위기를 맞았다. 아내는 모든 상황이 소명되자 귀가했지만, 그간 감정의 골이 깊어져 아직 정상적인 부부 사이를 회복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경찰 관계자는 “음주단속 과정에서 현장 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부분을 인정한다”며 “음주단속 직원이 고의로 잘못된 통지서를 발급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교육을 더 철저히 하겠다”고 전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