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구했다" 소름 돋는 한 방, 62년 묵은 한 푸나…다저스는 왜 이런 선수를 놓쳤나
[OSEN=이상학 기자] 큰 선수는 결정적일 때 빛난다. 2020년 LA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MVP를 차지한 ‘거포 유격수’ 코리 시거(29)가 62년간 무관인 텍사스 레인저스의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 한까지 풀 기세다.
시거는 28일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열린 2023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WS·7전4선승제) 1차전에 2번타자 유격수로 선발출장, 9회 극적인 동점 투런 홈런 포함 4타수 1안타 2볼넷 3득점 활약을 했다.
시거의 클러치 홈런으로 패배 위기에서 벗어난 텍사스는 11회 아돌리스 가르시아의 끝내기 홈런이 폭발하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6-5로 꺾었다. 짜릿한 역전극으로 월드시리즈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9회말 시작 전까지 3-5로 뒤진 텍사스는 애리조나 마무리투수 폴 시월드를 맞았다. 시월드는 이날 등판 전까지 이번 포스트시즌 8경기 1승6세이브를 거두며 8이닝 3피안타 1볼넷 11탈삼진 무실점으로 평균자책점 제로 행진을 펼치고 있었다. 쉽게 공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지만 시거의 한 방으로 모든 게 바뀌었다.
선두타자 레오디 타베라스가 볼넷으로 걸어나갔지만 마커스 시미언이 3구 삼진으로 물러나 추격 흐름이 끊길 뻔한 텍사스. 하지만 시미언 뒤에 시거가 있었다. 시월드의 초구 몸쪽 높게 온 93.6마일(150.6km) 포심 패스트볼을 놓치지 않고 번개 같은 스윙으로 받아쳤다. 타구 속도 112.6마일(181.2km), 비거리 418피트(127.4m), 발사각 33도로 우측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한 시거는 텍사스 1루 덕아웃을 바라보며 포효했다.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 시거는 “모든 아웃이 나오기 전까지 경기는 끝이 아니다. 9회에도, 연장에도 계속 좋은 타격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홈런 순간 감정에 대해 “당연히 흥분했다. 재미있었다. 이런 게 바로 플레이오프다. 정말 멋진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평소 감정 표현이 크지 않은 선수이지만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6차전 때부터 감정을 폭발하며 텍사스 선수들의 에너지를 크게 끌어올리고 있다.
브루스 보치 텍사스 감독은 “시거가 휴스턴에서도 저런 감정을 보여줬다. 오늘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높았을 수도 있겠다. 9회 2점 뒤진 상황에서 이보다 큰 홈런을 치기는 어렵다”며 “시거가 우리를 구해줬다. 모든 선수들을 흥분시켰다. 정말 대단했다”고 칭찬했다. 적장인 토레이 로불로 애리조나 감독도 “시거는 큰 선수다. 결정적인 순간 해낼 줄 안다. 그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오랫동안 활약해왔다”고 리스펙했다.
‘MLB.com’도 ‘포스트시즌 시거는 한 달 내내 클럽하우스에서 화제가 됐다. 달력이 10월로 넘어가면서 시거는 더 주목받고 있다. 이전 포스트시즌 이력을 봐도 알 수 있다. 2020년 월드시리즈 MVP인 시거는 올해 포스트시즌 슬래시 라인을 .327/.484/.673으로 끌어올렸다. 포스트시즌 통산 홈런 17개는 데릭 지터(20개), 카를로스 코레아(18개)에 이어 유격수 중 3위다. 볼넷 14개는 이안 킨슬러와 함께 텍사스 선수로는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 타이 기록으로 포스트시즌 통산 40볼넷 이상 기록한 16명의 선수 중 한 명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텍사스 신인 3루수 조쉬 영은 “마치 시거를 위해 각본이 쓰여진 것 같다. 중요한 상황에서 만들어내는 타구는 정말 놀랍다. 9회 시거가 타석에 들어설 때 ‘뭔가 멋진 일이 일어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시거의 존재감을 강조했다. 또 다른 신인 외야수 에반 카터도 “모든 선수들이 중요한 순간을 잘 이겨내고 있다. 시거와 가르시아 같은 베테랑들이 주변에 있어 자신감이 넘친다”고 말했다.
텍사스는 아직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한 6개팀 중 하나로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됐다. 1961년 창단 후 지난해까지 62년간 무관이다. 2021년 시즌 후 FA 최대어 시거를 10년 3억2500만 달러에 영입하며 우승 의지를 보였다. 2년차인 올해 햄스트링 부상으로 시즌 초반 한 달 공백이 있었지만 119경기 타율 3할2푼7리(477타수 156안타) 33홈런 96타점 OPS 1.013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가을야구에서도 13경기 타율 3할2푼7리(49타수 16안타) 4홈런 8타점 OPS 1.157로 가르시아와 함께 텍사스 핵타선을 이끌고 있다.
시거의 활약을 바라보는 전 소속팀 LA 다저스로선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다저스는 2년 연속 타선 침묵으로 디비전시리즈에서 업셋을 당했다. 큰 경기에 강한 시거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다. 다저스도 시거를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연봉 지급 방식, 주별 세금 차이로 인해 텍사스의 조건을 이기지 못했다. 텍사스는 연봉 후불 지급 없이 첫 4년에 1억4000만 달러를 보장했다. 또한 다저스가 속한 캘리포니아주와 달리 텍사스주는 주세 없이 연방세만 내면 되기 때문에 시거는 더 많은 실수령액을 챙길 수 있었다.
이런 조건 차이가 있긴 했지만 당시 다저스는 2루수로 뛰었지만 올스타 유격수 출신인 트레이 터너(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있었다. 내구성이 약한 시거에게 굳이 목매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다. 지극히 결과론적이지만 그때 시거를 적극적으로 붙잡지 않은 게 다저스로선 두고두고 아쉬운 상황이 되고 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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