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일의 견문발검] 학살당하는 팔레스타인 올리브 나무
매일 나무 죽이는 이스라엘 정착민들, 기소 9년에 단 4건
뽑으면 팔레스타인 영토가 사라지고, 다시 심으면 복원된다
[미디어오늘 이송희일 영화감독]
“지금 팔레스타인에는 올리브 시즌이 왔습니다. 항상 일년 중 가장 행복한 시기였는데 올해는 가장 슬픈 시기가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며칠 전, 트위터에서 가자 소식을 보다가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쓴 문장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녀의 말처럼, 가자와 서안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10월과 11월은 가장 빛나는 계절이다. 풍요의 올리브 수확철. 그렇기에 매년 10월이 되면 가족들이 모여 떠들썩하게 올리브 열매를 딴다. 또한 미처 다 수확하지 못한 이웃에게 손을 빌려주기도 한다. 팔레스타인의 오랜 상호부조 전통인 '알 우나(Al Ouna)'가 여전히 살아 있어, 이웃과 자원활동가들이 올리브를 함께 수확하고 지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배고픈 과수원 노동자들과 함께 넉넉히 음식을 나눠먹는 것도 이 계절이 빚는 풍경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올리브란 모든 것을 의미한다.
김태일 감독의 <올 리브 올리브 All Live, Olive>(2016)는 팔레스타인에서 올리브 나무가 품고 있는 가치의 사슬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서안 지구의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이스라엘의 분리 정책 때문에 통행증이 있어야만 자신의 올리브 농장으로 애면글면 갈 수 있고, 그것도 인티파다에 참여한 사람들은 허가는커녕 농장에 일거리조차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올리브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올리브 나무, 팔레스타인의 정체성
올리브 나무가 곧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조상 대대로 물려 받은 땅에서, 수백년 된 올리브 나무를 가꾸며 삶을 재생산해온 이력이 억척스러운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많이 닮았다. 가물고 척박한 땅에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버텨낸다. 올리브 나무는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2000년까지 산다. 베들레헴의 알 왈라자 마을에 있는 올리브 나무는 수령이 무려 4000년으로 추정되는데, 높이는 13미터, 뿌리는 지표면 아래로 25미터 이상 뻗어 있다. 1948년 이스라엘이 점령하기 훨씬 이전부터 대부분의 올리브 나무는 그렇게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땅을 지켜왔다.
실제로도 올리브 나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존재의 뿌리를 이룬다.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의 거의 절반의 면적(48%)에 올리브 나무가 심어져 있다. 천만 그루다. 팔레스타인 전체 과일 생산의 70%를 차지하며, 전체 농업 소득의 25%에 기여한다. 또한 대략 10만 가구의 주 수입원이자 80만여 명의 생계를 책임진다. 올리브, 오일, 피클, 비누 등 팔레스타인의 두 번째 수출 품목이기도 하다. '집안에 올리브 나무가 있으면 굶어 죽지 않는다'는 오랜 속담이 예증하듯, 수천 년부터 지금까지 올리브 나무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렇게 더불어 공생하며 살아온 것이다.
식민 지배자 이스라엘의 눈에 당연히 올리브 나무는 들보처럼 성가신 존재였다. 1967년 이래 점령군과 정착민들이 80만 그루의 올리브 나무를 닥치는 대로 뽑아냈다. 그 덕에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생계를 잃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 따르면 2020년 한 해에만 서안 지구에서 최소 9300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파괴됐다.
미국 백인의 들소 학살,
유럽의 식민지배 진행형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땅을 차지하기 위해선 그들의 삶의 근간을 이루는 올리브 나무를 뽑아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정착민들이 불도저로 나무를 밀어버리거나, 기름을 붓고 불태우거나, 뿌리까지 고사시키는 독한 제초제를 뿌린다. 마치 19세기 미국 백인들이 아메리카 토착민을 쫓아내기 위해 수천만 마리의 야생 들소를 학살했듯이, 틈만 나면 팔레스타인의 올리브 나무를 학살한다. 미국 평원을 달리는 기차 안에서 스포츠를 하듯 백인들이 들소를 향해 총을 갈겼다면,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자동차를 타고 선글라스를 낀 채 올리브 농장을 향해 총을 난사한다. 2005년에서 2013년까지 베거나, 불태우거나, 훔쳐간 방식으로 올리브 나무가 파손된 사건이 이스라엘 NGO 단체에 수백 건 보고되었는데, 그중 경찰에 기소된 사건은 단 4건에 불과했다. 정착민들은 유엔(UN)이 '제도적, 조직적 면책'이라고 부르는 혜택을 누리기 때문에 처벌을 피해간다.
이스라엘은 또 교묘하게 토지법을 바꿔 팔레스타인에 강요했다. “일정 기간 경작하지 않으면 그 땅은 이스라엘에 귀속된다.” 이 토지법은 정확히 유럽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던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 형태의 자연법을 모사한다. 경작되지 않는 땅은 미개간지이기 때문에, 먼저 선점하고 그 땅을 개발하는 인간에게 토지의 권리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악착같이 올리브 나무를 뽑아내는 이유다. 매년 팔레스타인 농부들과 평화운동가들이 파괴된 지역에 1만 그루의 올리브 나무를 심고 있지만,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매일 나무를 죽인다.
정착민들이 올리브 나무를 가장 많이 공격하는 때가 바로 10월과 11월, 한창 올리브를 수확할 때다. 무장한 정착민들이 과수원과 농기계에 불을 지르고, 화염병으로 건물을 불태우며, 사람들을 쫓아내는 폭력이 곳곳에서 빗발친다. 하마스의 공격이 있기 직전 한 달 동안에만 서안 지구에서 수백 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불태워지고, 건물들이 파괴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공격당했다. 그런 이유로 전 세계 평화활동가들이 서안 지구에 가장 많이 오는 때 역시 이즈음이다. 타국의 활동가, 평화를 염원하는 이스라엘 시민들이 팔레스타인 농부들과 올리브 열매를 함께 수확하면 공격이 줄기 때문인데, 이마저도 최근 들어 복면을 쓴 정착민들의 공격이 점차 늘어나며 무색해지고 있다.
올리브 나무는 일종의 움직이는 국경이다. 나무의 존재 여부에 따라 영토가 결정된다. 나무를 뽑아내면 팔레스타인 영토가 사라지고, 다시 심으면 영토가 복원된다. 이 올리브 전쟁은 지난 60년 동안 자행된 '인종 청소'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서히 숨통을 조이는 느린 폭력이다. 하지만 그것마저 네타냐후 극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폭력의 속도가 가빠지고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 유엔에 따르면, 서안 지구에서는 2022년 매일 3건 이상의 정착민 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1100명이 자기 땅에서 쫓겨나 뿔뿔이 흩어진 채 난민이 되었고, 팔레스타인 공동체 다섯 곳이 붕괴됐다. 올리브 나무 파괴, 양 방목, 총격, 방화, 건물 파손 등 매일 매순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감옥이나 마찬가지인 가자 지구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숨통을 짓눌러왔다면, 서안 지구에서는 60년 넘게 올리브 나무를 뽑아내며 천천히, 느리게 숨을 질식시켜온 것이다. 지상에 남은 마지막 아파르트헤이트. 이게 이스라엘 시온주의와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우는 미국과 유럽 제국주의가 그 동안 벌여온 짓이다.
한창 농부들이 올리브 열매를 따야 할 이 가을, 가자 지구에서는 제노사이드가 벌어지고 있다. 20일 동안 폭탄을 쏟아부어 7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중 어린이가 300여 명. 덩달아 서안 지구에서도 점령군과 정착민의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 이미 수십 명이 사망했고, 최근에는 공중 폭격도 벌어졌다. 단 며칠 사이 올리브 나무 1000 그루 이상이 뽑혀나갔다. 사람과 올리브 나무들이 대책 없이 학살당하고 있는 것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올리브 나무를 지키며 살아가는 게 그토록 나쁜 짓인가. 이스라엘 점령군으로부터 농장의 마지막 남은 올리브 나무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저 팔레스타인 노파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던 말인가. 땅을, 그들의 삶을, 존재의 의미를, 그리고 평화를 뿌리 뽑는 게 과연 누구인가. 저기 가공할 만한 폭력이 쏟아지는 팔레스타인을 방관한 채, 뿌리 뽑히는 올리브 나무를 외면한 채 과연 우리는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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