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는 우리 사회 '마지노선'…이보다 더 나락일 순 없어"
참사를 한 마디로?…'기억·분노·이해안됨·가슴아림·나아가기 위한 무거운 마음'
유가족 "청년들 안전 위한 法 제정되길…피해자 품어주는 사회분위기 됐으면"
청년들 "이상민 장관-尹대통령-박희영 구청장 등 참사에 가장 큰 책임 있어"
"기억과 애도, 진실규명 통해 더 나은 사회 만들자"…공통의견 모아 정책제언
"제가 '마지노선'이라 적은 이유는…아마 여러분도 생활하다 보면 '이것보다는 더 떨어지면 안 되겠다', '여기서 더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실 때가 있을 거 같은데요. 그간 이런 참사와 희생자들에 대해, 우리사회 안전망과 우리의 앞으로를 고민해볼 때 이태원참사 같은 일이 더 이상 일어나면 안 되고 이것보다 더 국민의 안전과 생활, 두려움을 나락으로 보내선 안 되지 않나, 이보다 더 안 좋아질 순 없지 않나, 하는 복잡한 마음에서에요."(대학생 송모씨)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주말인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향린교회에서는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주최로 청년들이 이태원참사에 대한 기억과 생각을 나누고 재발방지를 위한 제안 등을 자유롭게 교환하는 공론장에서 나온 송씨의 발언이다.
이 자리는 지난 2014년 4·16 세월호 참사를 포함해 2020년 코로나19, 2022년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참사와 재난을 '동시대'로 통과한 젊은 세대의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고 이어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청년 100인의 대화'란 이름으로 기획된 행사는 약 70명의 사전신청자가 모여 성황을 이뤘다.
일부 참석자는 애도의 뜻을 표하며 검은색 옷차림으로 발걸음을 하기도 했다. 주최 측이 지난 25~27일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51명 응답), 참석자 대부분은 20대 41명·30대 10명 등 이른바 MZ세대였고 서울시 거주자가 가장 많았다.
주된 참여 동기를 '10·29 이태원참사 1주기에 대한 추모의 마음'으로 적은 이들은 각각 4~7명씩 12개의 모둠으로 나눠 앉아 때로는 전체 토론, 또 모둠별 토의로 진지한 대화를 이어갔다. 대체로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여전히 '미완'의 과제란 인식을 공유해서인지, 초면인 사이의 어색함도 금세 깨졌다.
'10·29 이태원참사'를 한 단어로 표현해본다면 우리는 어떤 말들을 적을 수 있을까. 참석자들이 정한 키워드는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나타낸 '기억' 외 △분노 △슬픔 △책임감 △답답함 △복잡함 △무기력 △이해 안됨 △가슴 아림 △두려움 △투쟁 △찝찝함 △속상함 △안타까움 △아픔 △다짐 △정부 무(無)쓸모 △유가족에 대한 존경 △나아가기 위한 무거운 마음 등이 스크린을 빼곡하게 채웠다. '희망'이란 단어도 한 귀퉁이를 희미하게 차지했다.
이 자리에는 일부 이태원참사 유가족들도 함께했다. 행사 초반 마이크를 든 송진영(고(故) 송채림씨 아버지)씨는 "저희가 그 나이일 때는 몰랐는데 아이(채림씨)랑 비슷한 나이대 청년들을 보면 빛이 난다"며 "이런 자리를 만들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딸이랑 (이태원) 현장에 있었던 친구를 1년 만에 (처음으로) 어제 만났다.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병원에 오래 있었는데 저희도 그 아이를 부르지 않았고 그 아이도 저희를 찾지 않았던 것"이라며 "그 친구는 '채림이를 지켜주지 못해서', 저희는 '그 아이가 그렇게 힘든 상황을 겪게끔 만든' 걸 서로 미안해했다"고 밝혔다.
특히 송씨는 '이태원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들어 "청년들을 위한 안전한 법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젊은 청년들이 (이 문제에) 관심이 좀 있어야 하는데 항상 느끼는 게 사회문제에 (큰) 관심들이 없다"며 "여기 계신 분들은 굉장히 극소수일 것"이라고 했다. 또 "어제 만난 (딸의) 친구를 포함해 참석한 분들이 시발점이 되면 좋겠다"며 "피해자와 부상자 등 현장에 있었던 친구들이 밖에 나와서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태원 유가족들을 평범한 '동네 아저씨·아줌마'로 대해줬으면 좋겠다는 송씨의 말에 청년들은 "엄마·아빠, 힘내세요!"라는 외침으로 화답했다.
참석한 청년들은 이태원참사로 사회적 참사에 대한 사람들의 위기감이 높아졌다고 봤다(10점 만점에 7.1점). 하지만 '참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이 적절했다'고 보는 비율은 미미했다(2.1점).
청년들은 관할 지자체(용산구와 서울시)의 책임이 매우 크다(10점 만점 기준 8.4점)는 데 의견을 같이했지만, 무엇보다 사태의 원인이 '국가의 총체적 책임'(9.1점)이라는 데 깊이 공감했다.
똑같은 참극을 막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진상규명'이 가장 시급하다고 응답했고, '기존 참사 책임자 처벌'과 '안전을 위한 관련법·제도 정비'도 뒤따라야 한다고 판단했다.
현장에서는 '우리가 세월호·이태원 등 사회적 참사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다고 인식하나', '이태원 참사의 근본적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나' 등의 주제를 놓고 색깔별 종이로 의견을 표시하는 '신호등 토크'도 진행됐다.
참석자 이서윤씨는 "(저희 모둠에선) 행정부와 지자체에서 그런 책임을 지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란 의견이 많았고 또 당일 (이태원에) 계셨던 분들도 끝까지 참사 해결을 위해 같이 노력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해주셨다"고 했고, 장유진씨는 "이태원참사를 (10·29) 당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사후 처리가 잘못되고 심화되었던 일들까지를 참사로 볼 건가를 두고 토론했다"고 전했다.
장씨는 "사회란 게 위에서부터 내려와야 모든 게 (원활하게)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결국 총 책임자가 (대처를) 잘해야 했다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그럼에도 저희 마음엔 (실무)책임자들이 윗선의 명령만 따르지 않고, 필요한, 예상 가능한 참사에 대한 대응을 잘 준비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전했다.
모둠별 토론 후 진행된 즉석 설문에서 청년들은 이태원참사의 가장 큰 책임자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89.4%·66명 중 59명)을 지목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근소한 차이로 2위(83.3%·55명)였고, 박희영 용산구청장(72.7%·48명), 오세훈 서울시장(45.5%·30명), 김광호 서울경찰청장(34.8%·23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1년이 지난 지금, '가장 어이없는 상황'으로는 10여개의 선택지 중 '지금까지도 사과 없는 정부'(63.6%·42명)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가족과 상의 없는 일방적 국가애도기간 설정'·'어이없는 상황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공동 2위(43.9%·29명)로 조사됐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는 참석한 청년들의 공통된 의견을 모아 이날 저녁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열리는 유가족 주관 추모문화제에서 정책 제언을 담은 '청년 100인 대화 제안서'도 발표할 예정이다.
제안서는 "'기억과 애도, 진실규명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고민에 청년 100명이 모였다"며 "우리는 불안하다. 이 불안은 우리가 만들어낸 문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경쟁하고 누군가를 밀어내는, 불평등하고 안전대책이 부재한 이 사회가 만들어온 문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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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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