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예산 전액삭감은 대한민국 미래 포기…예산 복구하라”
“청소년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에 나가는 게 두렵고 싫습니다. 정부는 (전액 삭감한) 청소년 사업 예산을 되돌려 주세요.”
고등학교 3학년 권수빈씨는 28일 오전 대학 수시 면접을 마치자마자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으로 향했다. 전국 청소년 사업 담당자들이 여성가족부의 주요 청소년 사업 예산 전액 삭감에 항의하며 개최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청소년운영위원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해 온 권씨는 “면접을 마치자마자 달려오도록 한 현실이 개탄스럽다”라며 “청소년 예산 삭감은 위원회 활동 뿐 아니라 다양한 자치활동에 대한 희망을 잃게 만들었다”고 했다.
정부의 청소년 사업을 수행하는 담당자들이 여가부의 주요 청소년 사업 예산 전액 삭감을 규탄하며 예산 복구를 요구했다. 전국 청소년 사업 담당자들로 이뤄진 ‘전국 청소년 예산 삭감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2024년도 청소년 예산 삭감 반대 범청소년대 공동행동’ 집회를 열어 “(예산 전액 삭감은) 30년 이상 공들이고 성장해 온 청소년정책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린 심각한 일”이라며 이같이 요구했다.
여가부는 2024년 예산안에서 주요 청소년 사업 예산 대부분을 전액 삭감했다. 전액 삭감된 예산은 ‘청소년 국제교류 지원’ 예산 128억원, ‘청소년 활동 지원’ 예산 38억2000만원,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 예산 34억원, ‘청소년 정책참여 지원’ 예산 27억원, ‘청소년 근로권익보호’ 예산 12억7000만원, ‘장애·학교 성인권교육’ 예산 5억6000만원 등이다. 이로 인해 전국에서 진행되던 관련 사업 대부분이 존립 위기를 맞았다.
각 사업 담당자들의 첫 공동집회인 이날 집회에는 청소년 활동 담당자 250여명이 모여 ‘청소년 예산 삭감 결사반대’ ‘예산 복원 강력 촉구’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집회 참석자들은 여가부의 이번 예산 전액 삭감이 ‘청소년 정책을 버린 것’이라고 했다. 양종요 청소년정책연대 광주본부장은 “정부가 청소년 정책을 흙탕물 범벅으로 만들고 있다”며 “자를 예산이 따로 있지 어떻게 청소년 사회참여 예산을 날리는지 기가 차다. 청소년 동아리가 무슨 카르텔인가”라고 했다.
이정호 부평청소년성문화센터장은 “대통령도 나서서 말로는 청소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라면서, 정책이 퇴보하고 예산이 삭감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며 “국회의원들에게 다시 한 번 호소한다. 더 늦기 전에 청소년 예산 삭감 결정을 되돌려야 한다”고 했다. 김진곤 비대위 집행위원장(한국YMCA전국연맹 청소년운동국장)은 “청소년을 삭제하는 것은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삭제하는 것”이라며 “이러면서 아이를 낳으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예산 삭감이 청소년들에게 구체적인 피해로 돌아온다고도 했다. 성인권교육 사업을 진행해 온 이정호 센터장은 “정부는 디지털강국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청소년 성문제 실태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며 “청소년이 더이상 성범죄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자녀들을 안전한 세상에서 살게 해 달라”고 했다.
정명화 대구청소년근로보호센터 팀장은 “모든 청소년은 머지않은 미래에 일을 하고 살아가야 하며 현재 일하는 청소년도 많은데, 청소년 고용 사업장 10곳 중 9곳은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을 위반하고 있다”며 “여전히 수많은 청소년이 임금체불과 부당해고 등 불공정한 노동환경에 고통을 호소하는데, 여성가족부는 청소년기본법이 규정한 일하는 청소년의 권익 보호를 무시했다”고 했다. 정 팀장은 “실무자들도 순식간에 직장을 잃는 사태를 맞이했다”며 “누군가에겐 가족의 생계가 걸려 있고 누군가에겐 새로운 삶의 도전이었지만 한순간에 무너졌고 어떤 대안도 마련되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가 청소년기본법과 청소년정책기본계획 등에 명시된 의무를 스스로 저버렸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수영 전 청소년활동진흥센터협의회 사무총장은 “청소년기본법에 따라 추진하는 제7차 청소년정책기본계획의 주요 정책 목표 중 하나가 청소년 참여 강화였다”며 “30년 동안 법에 근거해 이어져 온 것을 국가가 나서서 폐지한 것”이라고 했다.
청소년 당사자들도 예산 삭감 철회를 촉구했다. 서울 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청소년운영위원 김찬서씨는 “청소년이 공동체에 참여하고 기여할 공간은 많지 않다.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이 많아도 ‘기특한 학생’으로만 평가받았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무언가 논의하거나 결정할 수 없었다”며 “아하센터는 청소년운영위원인 제 말을 같은 구성원으로서 경청해줬다”고 했다.
비대위는 입장문을 통해 “범청소년계는 이 같은 일련의 상황을 대한민국 청소년 정책을 위축시키는 유례없이 심각한 상황으로 규정하며 이에 반대한다”며 “정부는 청소년 정책 예산 삭감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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