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숨기는 건 아픔을 잊는 게 아니라 더 깊게 파묻는 일 [김동진의 다른 시선]
상처를 넘어 함께 나아가기 고민해야
(시사저널=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지난해 10월29일의 '이태원 참사'를 기억할 것이다. 이태원에 몰려든 인파 속에서 158명이 사망한 그날 이후, 생존자와 유족뿐 아니라 뉴스를 지켜본 온 국민 또한 상실감, 우울감, 무기력함 등에 빠져들기도 했다. 참사가 벌어진 지 어느덧 1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유족과 시민들의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생존자 자신을 살아가게 한 것은 '연결감'
축제 인파에 대한 통제가 미비했던 원인을 분석하고, 책임 은폐를 시도한 자를 처벌하며, 관련된 법 제도 등의 시스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각계각층에서 들려왔다. 원인 분석,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시스템 개선 등이 모두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인 우리가 이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여기서는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김초롱씨는 최근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당시 현장의 공포와 아픔, 그리고 그날 이후의 여러 감정을 자신의 책에 진솔하게 담아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참사 후 자신을 살아있게 한 것이 '연결감'이었다는 말이었다. 그는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 내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이 나를 숨 쉬게 했다"고 한다. 어찌할 바를 잘 몰라도 곁에 있어준 친구들,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고 상담 전화번호를 알려준 지인, 여러 곳의 상담 선생님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길에서 헤맬 때 도와준 지나가는 여성 등 실제로 그가 지난 1년을 살아내는 데는 이런 사람들과의 연결감이 중요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약혼자의 사망을 지켜봐야 했던 생존자 병우씨의 말을 들은 한 국회의원이 눈물을 흘리며, 이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정말로 잘 몰랐다고 고백했던 장면을 책에 기록했다. 그러면서 "당사자가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고통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무지한가"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는 저마다 이태원 참사처럼 크게 떠들썩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모든 아픔과 상처에 대해 당사자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공감하며, 서로 연결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김초롱씨의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태원 참사는 잊혀선 안 될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 중 하나다.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일을 기억하고 후대에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기억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어떤 기억은 간직하고 어떤 기억은 쉽게 잊어버리는 선별적 기억 문화가 있는 듯하다. 대다수의 사회적 참사는 기록에만 남고 실제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는 쉽게 지워진다.
특히나 우리 문화에서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시된다. 죽음뿐 아니라 어떤 특정한 주제나 사건에 대해서도 공적으로 말하고 이야기를 듣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공론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공론장은 보이지 않고, '그러게 왜 그런 데를 갔대' '놀다가 죽은 건데 뭘'과 같은 혐오 표현도 들려온다. 참사 생존자인 10대 청소년이 트라우마를 견디다 못해 자살한 비극적인 사건 이후 한덕수 총리는 "본인이 좀 더 생각이 굳건하고 치료받겠단 생각이 강했다면 좋았겠다"는 망언으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사회적 학대'에 앞장섰다. 김초롱씨는 자신 역시 그 같은 경험을 했다며, 문제 발생 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보지 못하고 개인의 탓, 특히 남 탓으로 돌리고 축소하며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 말한다.
이태원 참사와 같은 비극에 대해 소통하고 이해하는 것은 그 사건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는데 중요한 첫걸음이다. 참사를 숨기거나 언급하지 않는 것은 아픔을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더 깊게 파묻는 일이다.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존재를, 그 경험을 사회에서 지워버림으로써 부정하는 일이다.
비극에 대한 소통·이해, 상처 치유의 첫걸음
혹자는 이태원 참사 생존자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자꾸 묻는 것이 실례일 거라고 가정하기도 한다. 꼭 그런 거대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질병이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대체로 함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문화다. 필자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기에,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묻거나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일은 그분들을 기억하고 슬픔을 극복하는 일에 분명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최근 지인의 아버지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에 갔을 때 아버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물었다. 아버지를 사랑했던 지인은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지만 황망했던 죽음의 과정을 말해 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되짚어보고 그 일에 대해 대화하는 것은 사건의 희생자들과 유가족, 생존자들, 그리고 그 일을 간접적으로 지켜본 모든 시민에게 필요한 일이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참사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더 명확히 인지할 수 있고,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함께 힘을 모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참사를 기억하고 말하는 일은 유족 및 생존자들의 아픔과 그들의 기억을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인 기억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다.
이태원 참사 이후 핼러윈은 또다시 돌아왔다. 최근 한 지자체에서는 핼러윈 행사를 금지한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비난을 받자 철거했다. 각종 쇼핑몰에서는 작년과 달리 핼러윈 용품을 판매하지 않거나 축소 판매하기도 하고, 일부는 올해 핼러윈 축제에 간다는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물론 어느 정도 축제를 자제하는 분위기는 괜찮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태원 참사의 원인이 핼러윈 때문은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단지 축제에 가지 않기보다는,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고 말하는 자리, 서로를 위로하고 연결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면 좋겠다. 미국에서 제작된 이태원 참사 다큐멘터리 《크러시(Crush)》도 시청 가능하게 만들어서 함께 보고 이야기하자. 역시 이태원 참사를 다룬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 《별은 알고 있다》도 찾아서 보고 함께 말하는 장을 만들자. 책을 읽고 모여 이야기해도 좋고, 위로의 공연도 좋다. 무엇이든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며 기억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에서는 참사일 전 1주일을 집중추모주간으로 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다. 희생자들이 좋아했던 음악과 사연 공유하기, 종교단체의 추모기도회, 유족과 함께 걷기, 분향소 안내 도슨트 투어, 유가족 이어말하기와 추모문화제, 학술대회, 구술기록집 발간 기념 북콘서트, 청년 100인의 대화 프로그램 등을 기획해 실행 중이다. 이처럼 다양한 자리에 참여하는 것이 누군가가 붙잡을 수도 있는 '연결감'을 만들어내는 길일 것이다. 1주기를 맞아, 이태원 참사에서 희생된 고인들의 명복을 다시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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