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배 이날치 사용, 발칙한 도전..‘소릿길’ 고창여행[함영훈의 멋·맛·쉼]
범내려온다 이날치, 200년전 국악명인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판소리의 고창
고창읍성 여인들 국방 동참 성밟기 감동
성벽1.6㎞ 산책+맹종죽 예술=MZ 놀이터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세계유산 고창 갯벌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고창 운곡람사르습지 탐사를 마치고 풍천장어로 원기를 회복한 뒤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판소리의 중심지 고창 판소리 박물관으로 향한다.
▶문화유산 방문캠페인 ‘소릿길’의 거점, 고창 판소리박물관= 고창은 문화재청-한국문화재재단을 벌이고 있는 문화유산 방문캠페인 여행코스 중 하나인 ‘소릿길’의 거점이기도 하다.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판소리 박물관은 판소리를 중흥시킨 동리(桐里) 신재효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2001년 개관했다.
판소리의 이론가이자 개작자, 후원가였던 동리 신재효 및 진채선,김소희 등 다수의 명창을 기념하고 판소리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동리 신재효 선생의 고택 자리에 설립되었다.
상설전시실은 멋마당, 소리마당, 아니리마당, 혼마당, 발림마당 등 5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시실에는 신재효의 유품과 고창 지역의 명창, 판소리 자료들 10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곳곳에서 우리 국악과 판소리가 흘러나와 나도 모르게 박자를 맞추며, “허 좋다”라는 추임새를 넣으며 전시관을 섭렵하게 된다.
박물관이 세워진 곳은 원래 신재효고택이 있던 자리로 고택 대부분은 없어지고 사랑채만 박물관 오른쪽으로 옮겨져 위치하고 있다. 박물관 옆에는 신재효가 노래청을 두고 제자를 길러낸 옛집이 복원되어 있다. 신재효 선생은 역사드라마의 소재로도 등장한 바 있다.
고택은 현재 사랑채만 복원되어 남아 있으며 바로 옆에는 동리 국악당이 있다.
판소리 박물관은 이와 같은 판소리의 유형,무형의 자료를 수집.보존.조사.연구.전시.해석함으로써 일반 대중에게 수준높은 판소리 예술의 재교육과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고 마침내 판소리 성지화를 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흥미로운 한 가지 사실을 학습한다. 바로 ‘범 내려온다’로 국민들에게 잘 알려진 이날치 선생 얘기다. 한국관광공사 글로벌 홍보영상 시리즈1편의 배경 국악 가수는 청년 퓨전국악그룹 이날치인데, 실제 이날치 선생은 19세기 고창-담양을 무대로 활동하고, 후진들을 양성한 음악교수 겸 명인이다.
우리 국민에게 잘 알려진 고창 출신 명인 김소희 선생은 이날치 선생의 제자의 제자의 제자이다.
▶감동적인 고창읍성 여인들의 성밟기 순성= 읍내리에는 고창 판소리 박물관 만 보러 오는게 아니다. 인문학여행지이자, 산책로이자, 속 시원해지는 걷기여행길이자, MZ세대 사진 맛집인 고창읍성이 판소리 박물관과 같은 구역에 있기 때문이다.
여인들이 돌을 이고 성을 다지는, 특별한 ‘순성(巡城)’ 무형유산을 갖고 있는 고창읍성 걷기여행은 읍내리를 중심으로 한 고창 한복판 여행의 기쁨을 배가시킨다.
행주산성은 여인들이 이미 벌어진 왜군의 공격 때문에 실전 무기인 돌을 날랐다는 이야기로 유명한데 비해, 고창읍성은 무거운 돌을 들고 여인들이 방어벽인 성벽을 튼튼히 해 유비무환의 자세로, 난공불낙의 요새로 만든 점에서 비교가 된다. 그래서 누구도 고창읍성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570년 동안 전투경력 ‘0’이다. 왔다면 적들은 큰 낭패를 봤을 것이다.
1~2kg짜리 돌을 이고,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희망을 공유하면서 고창 여성들은 국방에 동참하는 것을 당연시 했다고 한다.
둘레 1684m, 높이 4~6m, 면적 16만 5858㎡이며, 동·서·북의 3문과 치(雉) 6곳, 옹성, 수구문 2곳 등이 남아 있다.
천촌만락을 발아래에 두고 성벽을 한 바퀴 도는 기분은 매우 뿌듯하다. 성내로 들어오면 역사인문학이 반기고, 어느지점에는 맹종죽 숲이 기막힌 운치를 뽐낸다. 고창 젊은이들은 이 운치에서 영감을 얻어 우주의 불빛 컨셉트의 예술 조명을 설치해 명랑 컨셉트를 더했다. 대나무사이로 빛이 스며들고, 불을 켜지 않아도, 조명등에 반사될 때 몽환적인 분위기도 연출한다. 그리고 국악과 명상곡이 흘러나와 대숲 산책의 서정을 짙게 한다.
방장산을 둘러싸고 축성된 고창읍성은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백제시대 때 고창 지역이 '모량부리'라 불렸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고창현의 읍성으로서, 장성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 기지의 역할을 했다.
▶아무도 넘보지 못한 곳, 대원군 척화비 세워= 문헌과 각석 등으로 미뤄 조선 세종 32년(1450)부터 단종 원년(1453)까지 전라좌우도 19개 군·현에서 구간별로 분담하여 축성한 흔적이 성벽 구간마다 새겨져 있다.
그중에는 무장시면(茂長始面)·무장종(茂長綜)이라는 흔적이 있으며, 동문 옹성 성벽에는 계유소축감동송지민(癸酉所築監董宋芝玟)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어 연대를 비교적 정확히 알 수 있다.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으로 쌓은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고, 읍성으로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관아를 비롯해 22개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전란에 모두 소실되어버렸고 현재 북문 공북루, 서문 진서루, 동문 등양루와 이방과 아전들이 소관 업무를 처리하던 작청, 동헌, 객사, 풍화루, 내아, 관청, 향청, 서청, 장청, 옥사 등 일부만 복원되었다.
성밟기는 저승문이 열리는 윤달에 밟아야 효험이 있다고 하며 같은 윤달이라도 3월 윤달이 제일 좋다고 한다.
성을 돌 때는 반드시 손바닥만 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세 번 돌아야 하고 일정한 지역에 그 돌을 쌓아두도록 했다. 겨우내 부풀었던 성을 밟아 굳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머리에 돌을 이게 하는 것도 체중을 가중시켜 성을 더욱 다지게 하려는 의도였다. 이렇게 쌓인 돌은 유사시에 좋은 무기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여인들 까지 나서고 군민들의 지혜롭게 고을을 지키니, 고종의 아버지로서 한때 실권을 장악했던 흥선대원군도 이곳에 “외부세력들 탐하지 말라”는 뜻의 척화비를 세웠다. 〈‘세계유산 7관왕 고창여행-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로 계속〉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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