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6] 루앙프라방에서의 씁쓸한 딱밧의 기억
[여행작가 신양란] 루앙프라방의 새벽은 스님들의 딱밧(우리식으로는 탁발) 행렬로 열린다. 주홍빛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줄지어 왓 시엥통을 출발하면, 거리는 아침 공양을 바치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술렁거린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라오스 사람들이 불심을 다해 시주하는 모습과, 그 장면을 사진에 담으려고 분주히 움직이는 여행자들의 모습은 상당히 이국적이다. 라오스의 다른 도시에서도 딱밧은 이루어지겠지만, 루앙프라방처럼 대규모로 진행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여간 루앙프라방을 여행하는 사람에게 새벽의 딱밧 행렬은 놓칠 수 없는 여행의 한 장면이 된다.
처음 루앙프라방에 갔을 때는 알면서도 그것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피곤한 여행자로서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힘겹기도 했지만, 숙소가 왓 시엥통에서 먼 곳에 있어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째 루앙프라방 여행 때는 일부러 숙소를 왓 시엥통 앞에다 잡았다. 그것은 ‘반드시 딱밧 행렬을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시였다.
그리고 다음 날, 기어이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게스트 하우스의 발코니에 앉아서 딱밧 행렬을 내려다보는데, 아닌 게 아니라 장관이었다. 루앙프라방에 다시 온 보람이 있다고 나는 내심 만족했다.
그다음 날, 나는 발코니에서 보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거리로 내려갔다. 그리고 내친김에 딱밧 행사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스님들에게 아침 공양을 바치는 일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공양거리를 팔러 다니는 아줌마에게 밥을 조금 사기로 했다.
그런데 내게는 잔돈이 없었다. 내가 큰돈을 만지작거리며 망설이자, 그녀는 거슬러주겠으니 밥을 사라고 권했다. 잔돈은 나중에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고 큰돈을 건네준 다음, 밥을 받아서 스님들의 발우통에 정성껏 넣었다. 그런데 이 아줌마, 내 옆에 앉아서 사탕이며 과일을 듬뿍듬뿍 넣는 게 아닌가? 잠시 뒤에는 그녀의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까지 함께 했는데, 나는 그녀들이 자신의 발복을 위해 시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딱밧 행렬이 다 지나간 다음에, 나는 그녀에게 거스름돈을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사탕이랑 과일을 시주하지 않았느냐?”며, 거슬러줄 게 없다고 시치미를 딱 떼는 게 아닌가.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건 내가 사지 않았다. 나하고는 상관없다. 거스름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녀는 사탕이랑 과일을 시주했으니 거슬러줄 게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나중엔 화가 치밀었지만, 영어가 짧아 조목조목 따질 수 없었다.
내가 그런 꼴을 당하는 것을 숙소 발코니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남편이 웃으며, 한 곳을 가리켰다. 거기엔 필경 나와 같은 일을 당한 게 분명한 서양인 커플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이 왓 시엥통 담장 위에 놓은 밥 덩어리를 가리키며 옥신각신하는 걸 보니, 그들은 사탕과 과일 대신 새와 벌레들을 위한 밥으로 바가지를 쓴 모양이었다.
한없이 유순하고 선량한 라오스 사람들만 보다가 그런 장사꾼을 겪고 나니, 입맛이 씁쓸해졌다. 어쩌면 라오스에도 자본주의의 악착스러움이 스며들고 있는 증거인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십오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앙프라방이 그립다. 영악스러운 상인 몇 명이 있다고 하여 루앙프라방을 미워할 수는 없다. 루앙프라방은 아직도 순진무구한 사람들이 더 많은 청정 지대일 것만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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