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이 대책 없이 남궁민·안은진에게 빠져드는 이유('연인')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10. 28. 15: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남궁민과 안은진 아니면 ‘연인’ 이만한 폭발력 가능했을까
‘연인’, 사건 자체보다 더 몰입하게 만드는 연기 디테일

[엔터미디어=정덕현] 도대체 남궁민과 안은진이 아니었다면 MBC 금토드라마 <연인>이 이만큼 폭발력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을까. 사실 <연인>의 스토리는 생각보다 새롭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병자호란이 끝나고 청나라 심양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그리 다채롭지는 않다. 결국 길채(안은진)가 도망한 조선인 노예라는 누명을 쓰고 심양까지 끌려와 갖은 고초를 당하면서도 끝내 버텨내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된 장현(남궁민)에 의해 구출되는 과정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청나라 공주 중 한 명인 각화(이청아)가 장현에게 연정을 품게 되고, 끝내 길채를 향한 장현의 마음이 바뀌지 않자 이들 사이를 갈라놓고 장현을 차지하기 위한 욕망에 불타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이 더해졌다. 이로써 길채를 향해 각화가 활을 쏘고, 그걸 장현이 몸을 던져 대신 맞는 절박한 상황이 펼쳐지지만, 그 서사는 사실상 삼각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파트2에서의 스토리 전개 속도 또한 느린 편이다. 장현이 길채의 간호를 받아 깨어났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되면 길채가 떠날까봐 이를 숨긴 채 길채를 옆에 두려는 이야기도 생각보다 꽤 길게 진행된다. 여러 차례 길채가 노예로 팔려 고초를 당하는 순간에 마주칠 수 있었지만 엇갈리는 장면도 이어졌다. 이런 엇갈림은 두 사람의 만남이라는 하나의 스토리를 향해 흘러가면서 이를 지연시킴으로써 만남의 순간에 극적 폭발력을 얻으려는 의도가 담겼다.

이처럼 객관적인 서사만 두고 보면 새롭다거나 전개 속도가 빠르다거나 하기 어렵지만, 이상하게도 <연인>은 몰입감이 높다. 그래서 지루하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대신 장현과 길채에 대한 과몰입이 형성되어, 두 사람이 엇갈렸을 때 주는 안타까움이 더 크게 다가오고 결국 만나게 됐을 때의 반가움과 놀라움이 똑같이 시청자들에게 실감나게 전해진다.

이게 가능해진 건 <연인>이 대서사극으로서 조선부터 청나라 심양까지 펼쳐지는 사건들이 등장하면서도, 이를 압도하는 장현과 길채의 감정적 서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잘한 사건들보다 시청자들은 장현이 가진 복합적인 감정에 빠져든다. 이미 구원무(지승현)와 혼례를 치른 부인이지만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고, 그러면서도 잘 살 줄 알았던 그녀가 심양까지 노예로 끌려와 갖은 고초를 겪은 사실 앞에 분노하기도 한다. "도대체 왜?"라고 반복해서 외치는 장면이 시청자들의 가슴에 강렬한 여운을 남기게 되는 건, 이처럼 차곡차곡 쌓아놓은 감정선이 두 사람이 만나는 그 순간에 폭발력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왜 날 버렸냐고 묻는 장현에게 길채가 버린 게 아니라 차마 가질 수 없었던 거라며, "나리는 나 없어도 살지만..."이라고 할 때 "왜 그렇게 생각하지? 왜 나는 그대 없이도 살 수 있다 생각했어?"라고 되묻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담담하지만 장현의 그 말은 그간 그가 그녀를 위해 목숨까지 내걸고 싸우기도 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는 걸 알고 있는 시청자들에게는 가슴 한 편을 아리게 만든다.

남궁민은 이처럼 그저 지나칠 수도 있는 대사도 꼭꼭 씹어 감정을 얹어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단순하지만은 않은 복잡한 속내를 연기를 통해 전해준다. 사실상 <연인>이라는 작품에 이토록 시청자들이 빠져들 수 있게 된 것에는 상당한 그의 지분이 존재한다는 걸 부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청자들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그의 연기는 이 작품에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안은진도 가세하니 그 폭발력이 두 배가 됐다. 병자호란 당시 죽을 위기에 몰렸을 때 자신을 구하고 쓰러진 자가 바로 장현이었다는 사실을 량음(김윤우)을 통해 알게 된 길채는 과거 장현과 있었던 무수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러면서 장현의 사랑을 새삼 깨닫고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길채라는 한 인물의 회상신 하나로 그간 <연인>에서 벌어졌던 많은 사건들이 겹쳐지고 그것이 하나의 감정으로 뭉쳐지는 장면이다.

안은진의 연기 폭이 <연인>에서 훨씬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은 그의 눈빛 하나만 봐도 확인된다. 극 초반에 해맑다 못해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이기까지 했던 눈빛이 병자호란이 터져 그 전황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을 때나, 심양에 끌려와 갖가지 위기에 내몰리게 되었을 때 심지어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눈빛으로 바뀌는 대목이 그것이다. 안은진은 장현 앞에서 때론 토라지고 때론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때론 비장해지고 때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드러내는 길채의 감정 변화를 다채롭게 끄집어내고 있다.

물론 병자호란 상황에서 조선과 청나라를 오가는 스펙터클한 사건들이 이어지지만, <연인>의 화력이 좋은 진짜 이유는 장현과 길채 사이에 감정의 선으로 만들어진 자력에 시청자들이 몰입하게 됐기 때문이다. 시대 상황은 이들을 계속 밀어내거나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이 두 인물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자력은 강해진다. 긴긴 멀어짐의 애틋함과 짧은 가까움의 행복감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청자들은 대책 없이 <연인>에 빠져든다. 남궁민과 안은진이어서 가능해진 폭발적인 몰입감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