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루아를 알 수 없는 한국 커피의 비애 [박영순의 커피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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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커피 생두 생산국이 됐다.
전남 고흥의 한 커피 농장이 대기업에 판매한 생두가 가공돼 최근 인천공항 내 커피전문점의 메뉴에 '한국커피'로 올랐다.
외화가 대량 유출되는 커피 부문에서, 한국커피가 당장 수입대체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
기후온난화로 한국에서도 특정 지역부터 커피를 노지 재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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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커피 생두 생산국이 됐다. 전남 고흥의 한 커피 농장이 대기업에 판매한 생두가 가공돼 최근 인천공항 내 커피전문점의 메뉴에 ‘한국커피’로 올랐다. ‘브루드 커피’ 한 잔이 7000원, 볶은 원두 100g짜리 한 봉이 1만5000원에 각각 판매되고 있다. 언뜻 가격경쟁력이 있어 보이기도 해서 반갑기는 한데 영 개운치 않다.
그러나 커피는 열매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 들어 있는 씨앗만을 가려내야 하는 것이므로 생산량이 10분의 1로 줄어든다. 2021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커피 생두는 많아야 8.6t 정도이다. 한 해에 수입하는 커피 생두의 양과 비교하면 0.0043%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1년에 생산되는 커피 생두의 양(1억6500만t)과 견주면, 한국커피의 존재감은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에서 개미 한 마리가 차지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을 만큼 미약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한국커피만이 갖는 특성, 즉 테루아(Terroir)를 세계 시장에 인상 지우는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세계적으로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커피생두를 상품화한 사례를 한국 외에는 찾기 힘들다. 희소성의 가치가 크다. 기후온난화로 한국에서도 특정 지역부터 커피를 노지 재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미래의 잠재적인 커피 대량 생산국으로서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구환경 보호를 위해 커피를 나무에서 수확하지 않고 실험실에서 만들어내는 산업이 커지면서, 과학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우리도 소위 ‘빈리스 커피’(Beanless coffee)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
커피 생산국으로 첫발을 내딛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훗날 한국의 커피 재배자들이 지날 길을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고흥커피를 내다 판 방식을 보면 아쉽다. 한국커피만을 팔면 가격이 너무 오르기 때문인지 이문이 별로 남지 않아서인지 콜롬비아와 파푸아뉴기니 커피를 섞었다. 현재로써는 국내에서 생두 1㎏을 생산하는 데 적어도 30만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고흥커피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표시하지 않은 것은 문제다. 생산량 부족을 ‘희소성의 가치’로 승화시킨 하와이 코나는 10% 이상 자신들의 커피가 섞이면 ‘하와이 코나 커피’라고 표기할 수 있도록 규칙을 정해 지키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커피라고 자랑하는 제품에 고흥커피가 몇 % 들어갔는지 밝히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한국커피를 얼마나 섞었는지 밝히지 않고 고흥의 테루아를 운운하며 광고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첫발이 투명하지 않아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 영영 새 길을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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