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감성 더한 나영석 PD의 새로운 진화

정덕현 문화 평론가 2023. 10. 2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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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소통의 신》 《콩콩팥팥》으로 다시 주목…‘잘하는 것’에 새로운 변화 더해 바뀐 환경 적응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최근 나영석 사단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해 그 변화에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tvN 《출장 소통의 신》이나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이하 《콩콩팥팥》)는 그 적응의 결과물이다.

최근 tvN에서 2부작으로 방영된 《출장 소통의 신: 서진이네 편》은 그 시작을 점심 복불복이 걸려 있는 미션으로 연다. 《서진이네》 출연자들의 '단합대회'를 콘셉트로 내세운 이 프로그램은 먼저 임원팀(이서진, 정유미, 박서준)과 인턴팀(최우식, 뷔)으로 나누어 퀴즈를 풀고, 제기차기나 청개구리 가위바위보 같은 게임을 통해 누가 먼저 도착 지점에 도착하는가로 점심을 먹는 팀과 못 먹는 팀을 가른다. 누가 봐도 익숙한 장면들이 연출된다. 바로 나영석 PD가 과거 만들었던 《1박2일》이 그것이다. 실제로 퀴즈를 풀고 먼저 출발하는 팀이 차를 골라 타고 간다는 미션 방식을 들은 정유미는 《1박2일》을 떠올리며 반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단합대회를 하기 위해 나영석 사단의 에그 이즈 커밍 연수원에 도착한 그들은 잠자리 복불복과 저녁식사를 놓고 벌이는 복불복 게임을 선보였고, 다음 날에는 제작진과 회식비를 놓고 맞붙는 한판 승부를 벌이기도 했다. 단합대회라는 콘셉트를 가져왔지만 《1박2일》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흐름이었던 것.

하지만 《출장 소통의 신》은 묘하게 다른 느낌이 더해졌다. 그건 바로 유튜브 감성이다. 이미 나영석 사단은 채널 십오야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갖가지 유튜브 방송을 시도하는 중이다. 《출장 소통의 신》이라는 제목과 이 프로그램이 콘셉트로 내세운 '단합대회' 역시 바로 이 유튜브 방송 중 하나에서 가져왔다. '소통의 신'이라는 코너에서 《서진이네》를 찍고 온 직원들을 위해 체육대회를 하는 걸 방송으로 담아냈던 것이 그 시발점이다. 나영석 PD가 침착맨 이말년을 만나 이런저런 유튜브 방송에 대한 조언을 구했을 때, 직원들을 위한 체육대회를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를 나영석 PD가 우연히 꺼냈고, 절대 하지 말라는 구독자들의 댓글에도 강행했던 이 방송이 무려 조회 수 300만을 넘긴 초대박 히트작이 되면서다. 그 후에 '소통의 신'에서는 MT 편을 내놓기도 했는데, 이를 tvN 본방송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 바로 《출장 소통의 신》이었다. 물론 '출장'이 붙은 것 역시 나영석 PD가 유튜브에서 해왔던 '출장 십오야'에서 따온 감성이 묻어난다. 기획사를 방문해 연예인들과 게임을 하는 것으로 유튜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아이템이다.

오래도록 나영석 PD와 호흡을 맞춰온 이서진은 "이게 단합이야?"라는 특유의 투덜거림으로 《출장 소통의 신》을 살려냈고, '서진이네 편'에 이은 또 다른 편을 기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완전히 새로운 걸 하기보다는 잘하는 걸 하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변주를 선택해온 나영석 PD의 진화 방식이 잘 드러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tvN 새 예능 프로그램 《콩콩팥팥》 출연진 김기방, 김우빈, 도경수, 이광수(왼쪽부터) ⓒtvN 제공

《콩콩팥팥》, 유튜브를 보는 듯한 리얼리티

마찬가지로 현재 방영되고 있는 나영석 사단의 tvN 《콩콩팥팥》 역시 익숙한 틀 위에서의 변주가 돋보이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는 콘셉트의 예능 프로그램은 이미 과거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부터 있어왔던 것들이다. 《무한도전》이 농사를 지어 수확한 작물들을 한 해 고마운 분들에게 나눠주는 시도를 한 바 있고, 《1박2일》 역시 만만찮은 농사가 복불복 벌칙으로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청춘불패》 같은 프로그램은 아예 시골에 정착해 농사를 짓는 걸그룹 아이돌들의 이야기를 담기도 했고, 나영석 PD의 《삼시세끼》에서도 출연자들이 농사짓는 모습은 빠지지 않았다.

《콩콩팥팥》은 어찌 보면 2014년 첫 방영됐던 《삼시세끼》 정선 편에서 세끼를 챙겨 먹기 위해 제작진에게 빚을 지고 그걸 탕감하기 위해 옥수수를 수확하던 그 설정을 뒤집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세끼보다 농사에 더 포커스가 맞춰진 《콩콩팥팥》은 농사의 힘겨움과 보람을 주로 담아내면서 간간이 끼니를 챙겨 먹는 방식의 예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콩콩팥팥》의 이 평이해 보이는 콘셉트를 색다르게 만드는 건 판타지보다는 리얼함이 더 강조된 유튜브 감성 덕분이다. 미리 준비된 농막 하나 없이 500평 농지를 '초록'으로 바꿔놓으라는 게 프로그램의 유일한 미션인 《콩콩팥팥》은 농사의 농 자도 잘 알지 못하는 출연자들을 무작정 그 텅 빈 농지 앞에 세워놓는다. 결국 뭘 심어야 하고, 또 심기 위해 씨앗은 어디서 사야 하며, 농지를 개간해 씨앗을 심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스스로 알아나가야 하는 상황들이 펼쳐진다.

생초보들의 농사 경험이라는 리얼함이 밑그림을 세워놓지만, 그 위에 이광수 같은 날고 기는 예능 프로가 상황마다 만들어내는 웃음과 함께하는 찐친들인 김기방, 김우빈, 도경수와의 케미가 예능의 맛을 더해 준다. 무엇보다 농사를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압권은 역시 실제 작물이 자라는 걸 발견해 간다는 리얼함이 주는 남다른 감흥에서 나온다. 여름에 시작했지만 점점 가을로 기울어가며 수확하게 되는 순간, 소소하게 시작했던 프로그램은 의외로 강력한 한 방을 보여줄 기회를 잡게 된다. 유튜브를 통해 경험했던 찐 리얼 체험이 주는 감흥을 나영석 사단은 마치 《인간극장》을 연출하는 듯 흔들리는 카메라와 소박한 영상을 통해 더해 준다.

사실 나영석 PD가 구독자 585만 명에 달하는 유튜브 채널 십오야가 '만성 적자'라고 얘기했을 때 필자는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유튜브에서 방송을 내고 있지만 기존 방송과 다름없는 제작진이 투입되고 연예인들이 출연하면서 광고 수익을 내도 대부분 지출로 나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최근 나영석 사단이 있는 에그 이즈 커밍은 제작의 가성비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tvN 제공

제작의 가성비와 예능 새 트렌드의 접점

《콩콩팥팥》의 경우 나영석 PD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참여할 정도로 제작진 규모가 축소됐다. 카메라맨을 따로 두는 게 아니라 PD와 작가가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인데, 이것은 다름 아닌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방식이다. 제작진의 규모를 축소함으로써 제작비를 현실화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런 흐름은 이미 《이서진의 뉴욕뉴욕2》를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4년 만에 돌아온 이 프로그램에서 이서진은 확 줄어든 제작진을 보고는 "더 다운그레이드됐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뉴욕에서 찍는 이 방송에 제작진과 출연자를 모두 포함해 단 7명이 투입됐으니 나오게 된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제작진 규모를 축소하고 PD와 작가가 직접 카메라를 드는 이 방식은 가성비 콘텐츠를 위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유튜브 방식을 가져온 것이기도 하다. 이제 카메라의 성능이 어느 정도 평준화돼 가고 있고, 그래서 어느 정도의 영상 퀄리티는 담보된 상황이다. 그래서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활동이 가능해진 것이니 말이다. 여기에 다소 흔들려도 현장감이 훨씬 느껴지는 영상들은 그래서 이 시대의 좀 더 리얼해진 영상 트렌드를 반영해 낸다. 이미 예능의 트렌드가 기성 플랫폼에서 유튜브 같은 새로운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있는 현실을 떠올려보면 나영석 사단이 찾아낸 이 지점은, 가성비와 트렌드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향후 예능 제작이 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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