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스쿠터 배터리가 ‘펑’…“역시 이 나라 부품이었네” 뿔난 인도정부 [박민기의 월드버스]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3. 10. 28. 13: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도 대기오염, 국민 기대수명 5.3년 줄여
정부 ‘친환경 드라이브’에 전기스쿠터 성장
일부 업체들 중국산 부품 사용하다 적발 돼
배터리 폭발 등 사고 급증…한달새 9명 사망도
814억원 보조금 반환 요구…업체들에 직격탄
인도 뉴델리에서 한 청년이 전기스쿠터를 충전하고 있다. [사진출처=로이터 연합뉴스]
인도가 현재 겪고 있는 대기오염은 국민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입니다. 미국 시카고대 에너지정책연구소(EPIC)는 올해 공개한 대기질생명지수(AQLI) 보고서를 통해 대기오염이 인도인의 기대수명을 5.3년 줄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인도 델리 초미세먼지 농도는 지난 2019년부터 꾸준히 높아져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의 25배가 넘는 수준까지 다다랐습니다. 이에 인도 정부가 ‘207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 등 친환경 정책을 추진하면서 녹색경제를 추구하는 산업들이 급부상했습니다.

‘친환경 이동수단’으로 각광받는 전기스쿠터가 대표적입니다. 인도는 세계 최대 이륜차시장 중 하나로 지난해 인도에서 판매된 이륜차는 1586만 대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중국에 이은 두 번째이지만, 생산량을 기준으로 하면 1945만 대로 인도가 전 세계 1위입니다. 인도 정부가 전 세계 최대 친환경 녹색시장 조성을 위해 본격적인 전기스쿠터 산업 확대에 나서면서 수 많은 스타트업들이 뛰어들었습니다. 급증하는 수요에 맞춰 시장에 먼저 진입해 기반을 탄탄히 닦고 소비자들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수요가 급증한 초반에는 전기스쿠터 업체 대부분이 호황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수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대부분 업체들이 생존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일부 업체들이 전기스쿠터에 자국산 아닌 중국산 부품을 사용하다가 걸리면서 갑작스런 화재 등 소비자 안전 위험 관련 논란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이에 인도 정부는 6개 업체에 50억루피(약 814억 원)의 보조금 반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들 업체가 전기스쿠터 제작에 자국산 부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현지 규정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입니다. 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아직 미지급된 보조금 지출을 보류하는 등 추가 자금이 절실한 전기스쿠터 업체들의 목줄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도 정부의 이 같은 분노를 아주 무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인도 업체들이 제조·판매한 전기스쿠터가 폭발하는 등의 화재 사고가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차 중이거나 충전 중이던 전기스쿠터가 갑자기 폭발하면서 인도에서 지난해 9월에만 9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로 인한 국민 불안이 커지자 인도 정부는 현지 업체들이 규정에 맞는 제대로 된 부품을 사용하고 있는지 조사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실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일부 업체들이 배터리를 비롯한 부품 일부를 중국에서 수입해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인도 정부는 자국민을 상대하는 전기스쿠터 업체들이 안전을 위한 최고의 부품을 사용하지 않은 채 국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도 경찰이 폭발로 불에 탄 전기스쿠터 수십 대를 조사하고 있다. [사진 출처=로이터 연합뉴스]
성난 인도 정부가 곧바로 ‘보조금 반환 및 지급 보류’라는 강경책을 꺼내들면서 대부분의 전기스쿠터 업체들이 생존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오키나와 오토텍 등 업체들은 인도 정부가 120억루피(약 1952억 원) 규모 보조금 지급을 연기함에 따라 시장에서 점차 입지를 잃으면서 투자자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인도 전기차제조기업협회(SMEV)는 인도 내 전기스쿠터 스터트업들이 정부의 보조금 지급 보류 조치로 총 900억루피(약 1조4600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인도 내 3위 전기스쿠터 스타트업 애더에너지는 기존 주주들로부터 90억루피(약 1464억 원)를 조달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고, 2위 스타트업 TVS모터는 추가 자금 조달을 위해 미 골드만삭스그룹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장 선점을 위해 지난 2007년 남들보다 더 빨리 진입한 ‘1세대 스타트업’들은 더 힘든 상황입니다. 이미 한참 전에 선발대로 뛰어들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고군분투해 나름의 공급망을 구축해놨지만 인도 정부가 비교적 최근인 지난 2019년 갑자기 부품 현지화 규칙을 꺼내들었기 때문입니다.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따르기 위해 이미 구축해놓은 공급망을 대대적으로 재편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처럼 인도 전기스쿠터 업체들을 향한 악재가 이어지면서 이와 관련된 현지 시장은 점점 더 침체되는 상황입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도 정부에 매우 큰 타격입니다. 오는 207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표적 친환경 산업 중 하나로 떠오른 전기스쿠터 시장을 지원하고 독려해도 부족할 판에 정부가 이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인 다른 대안이 없는 만큼 수도 뉴델리를 포함한 대부분 지역이 심각한 대기오염을 겪는 인도에서 전기스쿠터 시장 확대는 필수입니다. 또 다른 ‘친환경 대표주자’로 불리는 전기자동차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인도 현지에서 상용화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기차는 가격이 전기스쿠터보다 훨씬 비싸고 충전소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 같은 이유로 인도인들은 아직 내연기관자동차에서 전기차로 갈아타지 못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 조사 결과 지난해 인도에서 판매된 승용차 약 380만 대 중 전기차는 1.3%에 불과했습니다. 현지 공급망 구축과 국내 부품 기업 육성도 중요하지만 인도 정부가 이를 위해 치르는 환경적 비용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매일 쫓기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알면 알수록 더 좋은 국제사회 소식.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 주의 가장 핫한 이슈만 골라 전해드립니다. 단 5분 투자로 그 주의 대화를 주도하는 ‘인싸’가 될 수 있습니다. 읽기만 하세요. 정리는 제가 해드릴게요. 박민기의 월드버스(World+Universe) 입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