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에 이태원을 왜 가? 작년이랑 똑같이 가야죠"
작년 10월 29일, 생생하게 남은 기억들
사상자 '300명' 통계 밖의 생존자들 많아
'이태원 가지 말았어야 하나' 후회도 해
"일상 살다 참사 당한 것" 말에 위로받아
찾아온 우울증 '베이비 시터·청소'로 극복
'이태원에 왜 가냐?' 참사 이태원 탓 아냐
큰 인파 몰려도 사고 안나는 것 보여줘야
마음의 준비됐을 때 경험 나누는 게 중요
■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이태원 참사 당사자 김초롱 씨
◇ 채선아> 지난해 10월 29일 여러분은 어디서 뭘 하고 계셨는지 기억하시나요? 어느덧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되어 갑니다. 서울 이태원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로 30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던 그날 이후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한 분을 모셨는데요.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에 있었던 김초롱 님 나와 계세요. 안녕하세요
◆ 김초롱> 안녕하세요.
◇ 채선아> 오늘 인터뷰 준비하면서 저희 제작진들끼리도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회의를 했는데 '10월 29일에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속보를 접했고 그때 옆에 누가 있었다, 어떤 얘기를 나눴다' 이런 걸 다들 명확하게 기억하는 거예요. 우리가 사실 어제 뭐 먹었는지도 기억 못하는데 이태원 참사가 엄청나게 큰 충격이었구나 생각이 들더라구요.
◆ 김초롱> 저는 그날 당일에는 사실 느껴지는 게 별로 없었고요. '이게 뭐지?'라는 상태로 한 2~3일 갔었어요. 이게 진짜 큰 참사였다는 걸 인지하는 데만 한 5~6개월이 걸렸으니까요. 그런데도 기억은 생생합니다. 그날의 충격이 충격인지라 저도 시간대별로 기록할 정도로 아주 생생한 날이었습니다.
◇ 채선아> 통계 밖의 생존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초롱 님 같은 경우도 희생자 통계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 밖에서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김초롱> 통계 밖의 생존자라는 건 제가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깨달았던 거였거든요. 제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나는 그 통계 안에, 그러니까 300명 사상자에도 들지 않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라는 생각 때문에 힘들었는데요. 통계에 집계된 사람만 피해자나 희생자는 아니라는 부분을 심리 상담에서 명확하게 짚어주셨어요. 그러면 저와 같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대부분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심리상담 선생님께서 이 사건을 겪고 들은 대한민국 거주자라면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통계 밖의 생존자,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짚어주셨던 게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 채선아> 따지고 보면 그때의 충격을 안고 살아가는 저 역시 생존자인 거죠. 초롱 님은 생존자라고 불리면서 1년을 보내오셨는데요. 자신이 생존자라고 불리는 것 자체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드실 때가 있다고요?
◆ 김초롱> 생존자라는 말이 사실 싫어요. 생존자라고 하면 거룩한 뭔가를 이겨내고 존재하는 사람인 것 같잖아요. 생존자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압박감이나 부담감이 너무 크다 보니까 더 용기 있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했던 순간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데 결국에는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는 말을 해야 하고 필요한 이야기고 어떻게 짐을 덜 수 있을까를 지난 1년 동안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나는 그냥 이 사건을 보고 경험한 당사자고 목격자다 이런 정도로 정의를 내려놨더니 가벼워졌어요. 자유로워졌고요. 그래서 우리 모두 큰 사건의 당사자분들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단어 선택이나 분위기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좀 들었던 것 같아요.
◇ 채선아> 생존자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이 굉장히 심했다?
◆ 김초롱> 엄청 심하죠. 예전에 일기에 '생존자는 오징어 게임처럼 내 목숨을 걸고 서바이벌 게임에 나간 최후의 1인 생존자. 내 의지가 들어간 거 아닌가?' 써놨던 일기가 좀 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요. 그냥 내 삶의 평범한 날이었고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생존자라고 불린 건 "생존해 있는 사람은 다 생존자지 뭐" 이런 흐름이었던 것 같아요.
◇ 채선아> 그러면 당사자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때 초롱 씨는 당시 현장에 있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왔다고 들었거든요.
◆ 김초롱> 네. 그때는 그게 가까스로인지도 몰랐고요. '정말 운이 좋았다' 정도로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정말 위험했고 발도 둥둥 떠 있었고 앞뒤로 압박이 심해져서 숨을 몇 초간 못 쉰 것도 맞는데요. 그때는 그렇게 위험한 것을 인지를 못하잖아요. 그래서 가까스로 내가 살아남았다는 생각은 이후에 심리 상담 받으면서 깨달은 거고요.
◇ 채선아> 그날 이후 그날의 상황이 정확히 어땠는지 그다음에 내가 어떻게 극복해 갔는지 글을 쓰면서 이야기를 전해오셨거든요. 글 쓰는 그 과정 자체로 치유가 되었나요?
◆ 김초롱> 참사 이후 일주일은 저도 상황이 정리가 안 됐는데요. 언론에서도 정리가 안 된 듯 한 상황이었고요. 그런데 아무것도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뭔가를 깎아내리고 혐오하고 잘못한 사람이 없는데 잘못한 사람을 일반 시민들 속에서 찾아내고 이런 분위기가 저를 약간 억울하게 만들었고 화가 많이 나게 했던 것 같아요.
◇ 채선아> 그때 기억이 나요. 누가 "밀어 밀어" 라고 하지 않았냐, 그 사람 누구냐 찾아내라! 이런 얘기가 있었죠.
◆ 김초롱>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서 사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답답함과 분노를 표출하니까 당시 전화 상담을 해주시던 분이 '(초롱 씨는) 원래 글을 쓰시던 분이니까 글로 뭔가를 해소해라. 그게 일기여도 좋고 연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연재를 해도 좋으니 뭐라도 해라' 포털에 개인 일기 있잖아요. 그것도 추천해 주셨었어요. 그중에서 우리나라에서 큰 규모에 속하는 비공개 커뮤니티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죠.
◇ 채선아> 글을 쓰면서 치유가 되기 시작한 건데 제가 하나하나 읽어보니까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중에서도 소개해 드리고 싶은 부분이 초롱 씨가 상담 선생님한테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아무래도 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라고 말을 하고 상담 선생님의 답변이 굉장히 인상적이더라고요.
◆ 김초롱> 아직도 기억나요. 너무 후회했거든요. 그날 그냥 안 갔으면 내가 겪지 않았을 텐데.. 욕도 많이 먹었고요. 그때 선생님께서 '아니다. 거기 간 게 잘못한 게 아니라 어딜 가든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집에 잘 돌아올 수 있는 사회가 당연한 거다. 놀다가 죽은 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했을 뿐이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게 상담을 받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시초였어요. 마음이 확 열렸어요.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사실 그게 맞는 것 같은 거예요. 그전에는 그렇게 생각해 봐야겠다는 노력, 메커니즘이 아예 없었던 것 같아요.
◇ 채선아> 그 마음으로 초롱 씨의 글을 공유했더니 사람들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어요.
◆ 김초롱> 네. 정말로 '자고 일어났더니 내 글이 유명해져 있었다' 그 반응이 맞았고요. 비공개 커뮤니티를 시작으로 했지만 다른 여타 커뮤니티로 퍼져 나가면서 조회 수가 50만 뷰가 넘어갔고 댓글도 몇천 개씩 달렸어요. 아직도 힘들면 찾아서 들어가 보는 댓글이 있어요. '단순히 뭔가를 밝히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나조차도 몰랐던 무의식중에 잠재됐던 내 편견들이 하나하나 다 깨부서져 가는 것 같다.' 그러니까 '현장은 이랬구나. 뉴스가 전부가 아니구나. 현장을 갔다 온 사람이 아니면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겠다' 이런 반응들이 저를 많이 위로해 줬어요.
◇ 채선아> 그분들도 위로받으셨을 것 같아요. 본인도 몰라서 비난했던 것이고 알게 되니까 거기에 대한 이해가 늘고 내 편견이 부서지면서 어떤 상황인지 알겠다는 마음을 댓글로 표현을 해 주신 건데. 초롱 님이 글을 쓰시면서 1년 동안 일상을 살아내셨잖아요. 그런데 참사의 상처를 회복해 가는 과정 중에 그동안 해 오지 않았던 전혀 다른 일을 하면서 극복을 해오셨더라고요.
◆ 김초롱> 이번에 연재 글을 바탕으로 지난 1년간을 엮은 책이 나왔는데 책에 나온 내용이에요. 그런데 사실은 참사 트라우마가 가고 나니까 우울증이 시작됐어요. 우울증이 오니까 사람이 정상적인 사이클로 생활이 안 되고 친구들하고 놀 수도 없어요. 마음이 너무 아픈 사람은 친구들과 수다 떨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에너지가 떨어지고 이 친구가 말하는 걸 잘 이해 못하겠고 저 멀리 딴 세상 속에 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주말에는 일을 안 하잖아요. 평일에만 일하고 주말에 시간이 많이 남는데.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지루함이에요. 일상이 다 지루해요. 모든 게 다 공감이 안 되니까. 그래서 내 본업 말고 다른 걸 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결국엔 정답은 인간인 것 같아요. 인간한테 뭔가 정답을 찾았던 과정이었어요.
그때 베이비시터를 구한다는 동네 기반 커뮤니티 글을 봤어요. 딱 3시간, 지금 당장 그리고 옆 아파트였는데요. 토요일 정오였거든요. 그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나는 사는 이유를 찾지 못해서 죽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상태였는데 살아있는 존재가 너무 감동이라는 게, 그 당시 마음이 아팠던 저한테는 굉장히 큰 충격이었어요.
얘가 막 아무것도 안 하고 밥만 먹고 응가만 하고 잠만 자는데 '살아있는 건 감동스러운 거구나' 그리고 이 아이가 내년에는 어떤 모습일까 걸어 다니는 거 보고 싶고 얘가 말하는 거 보고 싶고 이러다 보니까 다시 새 생명을 부여받은 느낌으로 저도 잘 살고 싶어지고요. 아이의 미래가 기대됐어요. 나의 미래는 기대가 안 되는데 얘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거예요. 그리고 얘가 저한테 희망처럼 느껴졌고요.
그리고 단기 아르바이트로 숙박시설 청소를 했어요. '이번 주 주말 정오에 1시간 또는 2시간 도와주실 분' 그때도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청소가 인간의 정신 상태에 굉장히 유익하다는 걸 처음 느껴봤어요. 숙박업이니까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오거든요. 특히 외국인들. 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그냥 갖고 있던 일상이 누군가한테는 경험해 보고 싶은 여행의 묘미여서 한국을 찾아온다. 그거 구경한 게 아기 처음 봤을 때처럼 재밌는 포인트였고 재미를 느끼니까 살고 싶어지는 거예요.
◇ 채선아> 재미라는 감정이 생겼네요. 그동안 우울증이라는 게 감정이 없으니까 하루가 지루한 거잖아요. 그런데 아이를 보면서 미래를 궁금해하게 되고 새로운 외국인을 보면서 우리의 문화를 새롭게 보네 이런 감정이 생기는 거죠.
◆ 김초롱> 저한텐 중요했던 것 같아요. 원래 우리가 잘 먹던 음식이었는데 숙소에 잔해들이 쌓여 있으니까 '이게 그렇게 맛있나?' 이러면서 한 번 더 먹게 됐어요. 국가를 초월해서 20대 친구들은 한국에 놀러 오면 옛날부터 오래된 아이스크림 베스트셀러, 아빠가 좋아하는 밤, 팥 들어가는 아이스크림 있잖아요. 그걸 그렇게 먹어요. 이렇게 저의 일상이 아닌 것들을 하면서 굉장히 많은 걸 극복하고 많은 걸 깨달았던 것 같아요.
◇ 채선아> 뭔가 살고 싶게 하는 다양한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10월이 됐잖아요. 10월 29일이 이태원 참사 1주기인데요. 최근에 이태원 거리를 다시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 김초롱> 네. 10월을 맞이해서 계절이 변해서 느껴지는 것도 달라서 이태원을 다녀왔고요. 그런데 너무 짠한 게 여전히 내가 사랑하던 그 모습 그대로 이태원이 남아 있더라고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상권이 완전히 무너져서 힘든 시기를 보내셨다고 들었는데 여름 지나면서부터 참사 이전의 상권으로 회복했다는 기사를 보긴 봤거든요. 오랜만에 갔는데 여전히 사랑하는 그 동네 그 모습 그대로여서 이제 다행이다 싶은 마음도 좀 들었고요.
◇ 채선아> 다행인데 한편으로는 다녀오셨다는 말을 듣고 누군가는 "참사를 겪고도 거기를 또 가?" 혹은 "설마 핼러윈 때 이번에도 누가 이태원을 가겠어? 거기 가면 안 되지 거기 가면 잘못된 거지"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으실 것 같거든요.
◆ 김초롱> 그런데 이것도 우리 사이의 일상에 퍼져 있는 편견 같은 건데요. 참사와 이태원 지역은 분리해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태원 지역에서 어쩌다가 참사가 발생한 거지 이태원이기 때문에 참사가 발생한 게 아니거든요. 정확한 명칭으로는 이태원 참사가 아니라 10.29 참사라는 명칭이 더 맞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니까 참사는 우리 모두가 겪는 아픔인데 왜 모든 경제적 피해나 마음의 상처는 이태원에 살고 이태원이 일상인 특히 상인 분들이 타격을 입어야 하는지 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태원, 그러니까 10.29 참사를 제대로 기리기 위해서는 안전 대책이나 우리 사회가 진짜로 안전한가,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를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는 방식으로 기려야지. '이번에 이태원에 누가 왔나 온 사람 욕해야지.' 이거는 절대 옳지 않은 반응이고요. 차라리 작년만큼 똑같은 인원의 사람이 가서 "이만큼 사람이 똑같이 왔는데 올해에는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하고 보여주는 게 제대로 기리는 거죠. 그리고 진짜로 안 가면 이태원 상인 분들 또 한 번 타격을 입으실 거예요.
◇ 채선아> 그분들도 생존자죠.
◆ 김초롱> 어떤 사람의 일상과 생존은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존과 참사는 분리해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하고요. 그래서 제가 작년에 "저는 이태원에 내년에도 또 갈 겁니다. 멋들어지게 분장도 할 거고 소비도 열심히 할 거예요" 라는 얘기를 했던 게 그런 맥락이었던 것 같아요.
◇ 채선아> 이태원 참사를 직접적으로 겪은 사람들 혹은 우리가 생존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방법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초롱 씨 같은 당사자분들한테 우리가 어떻게 위로를 건네야 할까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 김초롱> 우리가 위로하지 못하는 사회예요. 위로를 받아본 적도 없고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무 말을 안 하거나 외면하는 방식 딱 2개로 하시거든요.
◇ 채선아> 혹은 가장 쉬운 게 비난이죠.
◆ 김초롱> 그렇죠. 비난과 외면은 사실 쉬워요. 내가 맞닿아 있고 싶지 않으면 바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외면하거나 비난하거나인데 이것들은 결국 나를 위해서도 좋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서라도 이 참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건 늘 너무 어려운데요. 정면으로 마주해야 극복이 가능하고 그다음에 발전과 성장이 있기 때문에 남을 욕하거나 회피하거나 잊어버리려고 묻어두거나 이런 것보다는 잘 기리고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위로하는 게 가장 좋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 채선아> 댓글에 **님이 "사실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말하기가 어려워서 침묵하게 되기도 해요. 괜히 제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무섭기도 하고요"라고 하셨는데요. 그래서 말을 더 못하는 것 같기도 해요. 저도 아까 첫 만남 때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까, 어떤 첫마디가 괜찮을까 이런 고민을 하긴 했거든요.
◆ 김초롱> 그냥 인사만 따뜻하게 해 주시는 것도 위로가 돼요. 먼저 누가 다가와 주시면 그게 위로가 돼요.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것도 도움이 돼요. 먼저 인사해 주시는데 '뭐라고 얹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멘트가 훨씬 와닿는 것 같아요.
◇ 채선아> 솔직한 마음을 덧대서 인사를 반갑게 해 주시면 된다는 팁이었고 *** 님은 "놀다 죽은 사람 이 얘기를 똑똑히 들은 적이 있어요. 사고 난 주 다음 월요일에 현장에 갔었는데 뒤에 서 계시던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현장에 갔던 사람들의 잘못이 아닌데"
◆ 김초롱> 현장에 갔던 사람들은 잘못이 없습니다. 우리가 마트에 가거나 또는 일상을 보내러 쇼핑몰에 가는 거랑 똑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일하고 이번 주말은 기억에 남게 보내야지 이런 마음으로 갔던 거라서 놀다 죽었다는 말은 말도 안 되는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 채선아> 그렇게 생각이 정립되기까지 진짜 오래 걸리셨을 것 같아요.
◆ 김초롱> 맞아요. 그 시간이 지나야만 반드시 해결되는 것들이 좀 있는 것 같은데요. 편견에 대한 건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런 생각을 저도 초반에 안 했던 게 아니거든요. 저도 대한민국 사람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노는 것보다는 공부하고 성실하게 사는 게 더 좋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라는 사람이어서 저도 자연스럽게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 편견 깨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고 이 편견을 정리해서 글로 쓰거나 메시지를 내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렸죠.
◇ 채선아> 그래서 처음에 이 사건을 접하고 간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게 잘못이라기보다 그다음에 여러 뉴스와 상황을 접한 다음에 내 편견을 깨는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참사를 겪은 다음에 사람들 마음속에도 변화가 생긴 것 같은 게요. 우리가 처음으로 일상을 살다가 압사의 공포에 시달리기 시작했어요. 특히 지하철 출퇴근 시간에 엄청 사람이 많잖아요. "밀어 밀어"하고 다 끼여서 타거든요. 그런데 참사가 벌어진 이후에는 그런 일들이 좀 사라졌어요.
◆ 김초롱> 제가 계속 인터뷰를 하면서 지난 1년간 변한 게 없다는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냐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거든요. 저도 변한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최근에 무슨 일 있었냐면 시민사회는 변했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시민사회와 시민의식은 확실히 변했어요.
저희 집 근처에 어떤 대학교가 있는데 대학교 축제 때 무대가 있잖아요. 무대 뒤에 엄청 큰 스크린에 '1번 군중 밀집 시 사고가 났을 경우 대피해야 하는 수칙' 이렇게 학생 자치회에서 스크린에 계속 띄우더라고요. 거기도 펜스가 있고 사람들이 몰리잖아요. 가수가 무대가 끝나고 준비 시간에 사회자도 계속 안내 방송을 하니까 사람들도 위험을 감지한 거예요. 작년 참사로 인해서 그리고 자기들이 주최하는 이 행사에서 누군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명확하게 있는 거죠. 그래서 시민사회는 확실히 변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하철에서도 마찬가지고요.
◇ 채선아> 저는 얘기 들으면서 또 생각났던 게 얼마 전에 불꽃 축제했잖아요. 그때도 사람이 몇 만 명이 몰렸다는 얘기가 나와서 '어떡해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아' 하면서 동시에 드는 생각이 '제발 사고만 나지 마라' 사고를 대비해서 안전 요원을 몇 명 늘린다는 기사도 계속 났었거든요. 그러니까 사람이 몰리는 장소에 가지 말자가 아니라 몰리면 우리가 대비하고 인식하고 자각하고 사람들이 밀집했을 때 위험하다는 걸 느끼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 김초롱> 그리고 이제는 안내 방송이 나오면 사람들이 조용해져요. 그러니까 집중하겠다는 거죠. 저는 이런 작은 부분들에서 "지난 1년간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사회다"라고 말한 것들을 후회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시민사회는 확실히 변했고 성숙해졌다고 꼭 말하고 싶어요.
◇ 채선아> 이제는 관리의 영역, 정책의 영역이죠. 참사 때 동생이 사망한 누나 얘기가 책에 말미에 나오는데요.
◆ 김초롱> 마지막 문장이에요.
◇ 채선아> 누나분이 그 얘기를 했어요. '죄책감이 전염된다'는 거예요. 핼러윈은 이태원이라고 추천했던 친구들이 있는데 그 동생 친구들이 동생 사망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낀다는 거예요. 내가 추천했는데 "내가 거기라고 하지 말 걸 그랬으면 괜찮았을까?" 이런 죄책감을 갖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 상황을 접하면서 이 누나 분이 하신 말씀이 "10월을 어떻게 견디나 싶어 벌써 가슴이 먹먹해"라고 하셨는데 관련자들도 시민들도 10월은 굉장히 힘든 달인 것 같아요. 이제 1주기기 때문에
◆ 김초롱> 공기가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지고 그때가 자연스럽게 풍경으로 변해요. 자연스럽게 그때로 가 있는 것 같고 그때 감정이 올라오고 감정도 계속 슬퍼지고. 그런데 매년 그럴 것 같아요. 10월이 되면. 이건 저뿐만이 아니라 유가족분들은 다 그러실 텐데 아마 가슴에 피멍이 든 채로 그 멍이 안 나으실 것 같아요. 아주 극복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좀 옅어지게끔 할 수 있는 건 이야기를 걸고 우리가 계속 자꾸 변하자고 이야기하고 이런 방송도 많이 보시는 것도 많이 도움이 되실 것 같아요.
◇ 채선아> 저는 왠지 10월만 되면 초롱 씨를 여기저기서 부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 김초롱> 매년 소환되는 거죠.
◇ 채선아> 매년 10월에 찬 바람 불기 시작하면 그런데 그때마다 어떤 힘으로 인터뷰에 응하시는지도 궁금했어요.
◆ 김초롱> 아까 그 질문을 받고 저도 곰곰이 생각해 봤거든요. 그런데 대단하게 뭔가 애쓰면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어떤 순간을 지나고 나니까 자연스러운 환경이 됐는데요. 용기를 한번 크게 내보면 내가 서 있는 배경이나 시선이나 내가 느끼는 풍경이 확 달라져요. 그리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게 정말 보입니다. 너무너무 아파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희망을 갖고 이렇게 하면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가르쳐주는 사람들도 계세요. 그걸 목격했는데 어떻게 외면해요
이건 저만 그런 건 아니에요. 아마 아나운서님도 그렇고 여기 댓글 써주시는 분들도 그럴 텐데 다 저처럼 용기를 한번 내봤는데 그전에 못 봤던 걸 보잖아요. 외면은 못 해서 계속 쭉 앞으로 가는 건데 가다 보면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려요. 개인으로도 성장하고 사회적으로도 성장한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에 애쓰고 내가 힘든데 억지로 나오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 채선아> 그날을 이야기하는 거 자체가 아직도 어려워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거든요. 그 당시에 자녀들한테 엄마들 전화가 엄청 왔어요. "너 혹시 그날 갔어? 너 어디 있었어? 왜 전화를 안 받아?" 이렇게 다들 걱정하셔서 한편으로는 걱정할까 봐 내가 그날 거기에 있었다고 말도 못 하고 지내는 분들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 분들한테 한 말씀해 주시겠어요?
◆ 김초롱> 뭔가 용기를 내고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하고 적극적으로 액션을 취하는 것만 애도가 아닌 것 같아요. 마음으로 또는 이렇게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있으면 잘 봐주시고 작은 행동 있잖아요. 이런 데 나왔을 때 '좋아요' 하나. 그런 것만으로도 리액션이고 반응이에요. 다 힘이 되니까 누군가는 그런 존재만으로도 힘을 받는다는 걸 꼭 알아두시고 얘기하지 않으셔도 되니까 이런 방송이나 여타 다른 글이나 다른 분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어려운 기억이지만 회복하시고 위로받으시고 종국에는 행복으로 가는 어떤 무언가를 맞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채선아> 전 초롱 씨의 기사를 읽어보라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상담 일기를 쓰셨는데 제가 마치 상담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전화할 용기도 없다.', '입 밖으로 그날의 기억을 꺼내기도 어렵다.' 이런 분들은 대신해서 초롱 씨 상담 선생님의 이야기로 위로받으셔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고요. **님이 댓글에 "단단하고 건강해지신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라고 해 주셨습니다. 오늘 정말 단단한 초롱 씨와 얘기 나눠봤습니다.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초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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