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박근혜와 윤석열 그리고 박정희 부활
박정희가 부활했다. 자신의 심복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사라진 그는 어떻게 부활한 것일까. 벌써 44년이 흘렀다. 1979년 10월 26일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됐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자신의 측근에게 피살되면서 박정희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독재자의 말로가 그러하듯 박정희 역시 종신 대통령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지만, 그 끝은 비극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딸 박근혜가 남았다.
박근혜는 12살부터 청와대에서 살았다. 23세가 되던 1974년부터는 어머니 육영수 여사 대신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죽음으로 16년만에 청와대에서 나온 그는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은둔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1997년 11월,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치활동에 나서겠다는 신호탄이었다. 그의 정치적 자산은 아버지 박정희였다.
예상대로 1998년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마침대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됐다.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의혹이 불거지면서 여론은 악화됐고, 결국 국회 탄핵소추에 이어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헌정사장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44년 만에 박정희의 부활을 알린 것은 지난 2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 박정희 대통령 추도식이었다. 추도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루어내신 바로 이 산업화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튼튼한 기반이 됐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내가 대통령으로 일해보니 박정희 대통령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었는지 절실히 느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1980년부터 매년 개최된 추도식에 참석한 첫 현직 대통령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고 박정희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로 전기가 필요한 여권에서는 이들의 재회를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윤 대통령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높은 평가는 보수층의 공감을 얻고 있다. 유족 대표로 인사말을 한 박 전 대통령도 “지금 우리 앞에는 여러 어려움이 놓여 있다”라면서 “저도 우리 정부와 국민께서 잘 극복해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화답했다. 박 전 대통령의 ‘우리’라는 언급이 주는 뉘앙스가 예사롭지 않다.
이를 두고 정치권은 보수 통합을 위한 행보로 평가하고 있다.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일단 보수진영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라 ‘박정희’를 매개로 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보수진영의 결집에 나선 것은 향후 중도확장 전략을 위한 사전 포석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 독재자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부정적 이미지보다는, 산업화를 이룬 대통령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박근혜·윤석열이라는 전·현직 대통령의 연대감을 보여준 것도 보수층의 안정감을 높이데 한몫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앞으로는 민생 행보와 인적 개편을 통한 중도층 공략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윤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의 악연은 사라지지 않는다. 윤 대통령에 의해 박 전 대통령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그럼에도 ‘우파(보수)대통합’이라고 반기는 것이 보수층이다. 이는 정치 양극화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윤 대통령의 박정희 추도식 참석과 박근혜와의 재회가 보수층의 결집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정치 양극화는 반대층의 반발감을 높여 서로를 향한 적대감만 높아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통합을 위해 추도식에 참석했다고 하지만, 분열을 조장했다는 역설을 낳고 있는 것이다.
결국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 사회는 같은 현상, 같은 얘기라고 하더라도 진영에 따라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다. 대통령이 모든 주장을 품어야 하는 이유다. 내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 아니라, 최소한 중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반대편 국민도 받아들일 수 있다. 적어도 적개심은 감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그렇게 하는데 인색했다. 대통령이 정치공학적으로 국민을 대하게 되면, 국민은 분열되고 미래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번 윤 대통령의 박정희 추도식 참석으로 보수층 결집에 어느 정도 성공한 듯보인다. 박정희의 딸이자, 자신이 감옥에 넣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연대감을 확인한 현장이기도 했다. 추도식 자리에서 한 윤 대통령의 추도사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박정희 대통령의 ‘하면 된다’는 정신은 우리 국민에게 자신감과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셨다. 세계적인 복합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박 대통령의 정신과 위업을 다시 새기고, 이를 발판으로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드디어 박정희가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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