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차별 ‘출입금지’…비트 아래 모두 평등한 곳
베를린 클럽 문화
“만지지 말고 물어보라” 지침 등
타인 존중하고 공격적 행위 대응
“서로 영감…공동체 기여하는 곳”
전시·토론회 등 소통으로 장으로도
“이곳은 안전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어떤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지난달 독일 베를린의 한 클럽을 찾아갔다. 말로만 듣던 베를린 클럽 신을 직접 보고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여기가 어떤 클럽인지 아시나요?” 밤 12시, 클럽 ‘슈부츠’(SchwuZ) 입구에서 마주친 직원이 물었다. “퀴어클럽이요.” 이곳은 게이 해방운동의 장을 마련하며 1977년부터 45년 전통을 이어온 베를린 최대 퀴어클럽이다.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이성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젊은이와 노인 구분 없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라는 얘기를 듣고 방문했다.
“맞아요. 혹시라도 클럽 안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누군가 당신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느껴지면 저희에게 알려주세요.” 그는 이곳에선 어떤 종류의 차별도 허용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차별 금지’를 강조하는 기관이나 학교에서 안내할 것만 같은 말을 클럽 문 앞에서 들으니 조금 낯설었지만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안심하고 놀아도 되겠다.’ 이 직원은 “상대방의 영역 또한 지켜달라”며 들어가도 좋다고 했다.
휠체어 타고 신나게 춤출 수 있는
15유로(약 2만1500원)를 내고, 손목에 도장을 받은 뒤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조명 아래 서로 다른 음악이 터져 나오는 방이 여러개 보였다. 그중 한 곳을 택해 들어갔다. 같은 리듬 속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느낌이 오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누가, 어떤 춤을, 어떻게 추는지는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무아지경으로 몸을 흔들고 있는데 반짝거리는 불빛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검은색 망사 셔츠를 입은 사람이 탄 휠체어가 내뿜는 빛이었다. 그는 튜닝을 한 듯한 휠체어를 타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거나, 바퀴를 굴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흥을 발산했다. 알록달록한 셔츠를 입은 어느 중년 남성은 홀로 고독하게 몸을 흔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남성과 같이 커플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뽀글뽀글한 아프로 스타일의 머리를 한 남성은 흰색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채 절제미 돋보이는 댄스를 선보였다. 바로 옆에선 짙은 화장에 진주 목걸이로 화려하게 꾸민 남성이 금색 가발을 휘날리며 격렬하게 춤을 췄다. 심장을 두드리는 비트 아래 모두가 평등했다.
베를린 클럽에서는 ‘무한한 자유’가 보장되지만 분명한 규칙이 있다. ‘타인에 대한 존중’이다. 지난 주말 찾아간 클럽 레나테 내부 벽 곳곳에는 “마음껏 즐기세요”라는 말과 함께 “존중은 궁극적인 규칙이다. 만지지 말고 물어보라”는 ‘경고’가 함께 적혀 있었다. 클럽의 ‘인식개선팀’ 이름으로 붙은 글은 “우리는 성적 자유를 위한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이곳에선 개인이 정체성, 경계선을 스스로 정의한다. 이 규칙을 위반하는 사람은 파티에서 쫓아내겠다”고 밝혀 놓았다.
베를린 클럽 대부분이 비슷한 규칙을 적용하고 있다. 일부는 좀더 적극적으로 차별 행위로 피해를 본 이들을 지원하는 인식개선팀을 꾸려놓았다. 레나테는 공식 누리집을 통해 “우리는 클럽 문화가 사회의 차별적 구조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맞서 싸우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믿는다”며 “우리는 정기적으로 차별 금지 워크숍을 진행하고 약물 남용이나 공격적 행동에 대처하기 위한 지침을 개발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낮과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해도 괜찮다’는 룰 또한 일반적이다. 몇몇 클럽은 일상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려는 이들의 ‘일탈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진 촬영 금지라는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한다. 입장과 동시에 휴대전화 앞뒤에 있는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여야 하고, 클럽 안에 들어가면 “사진을 찍지 말라. 이를 어기면 쫓겨난다”는 커다란 경고문을 볼 수 있다.
클럽마다 공식·비공식적인 복장 규정이 있다. 유명 클럽인 베르크하인은 검정색 옷이 환영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반드시 잘 차려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베르크하인 앞에서 1시간 넘게 줄을 섰을 때, 티셔츠에 후줄근한 트레이닝 바지, 펑퍼짐한 점퍼에 운동화 등 각양각색의 클러버들이 적지 않았다. 또다른 인기 클럽 시시포스에서는 등산복으로 보이는 주황색 바람막이 차림을 하고도 당당히 입장에 성공한 이도 있었다.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뉴스레터’를 쳐보세요.
☞한겨레신문 정기구독. 검색창에 ‘한겨레 하니누리’를 쳐보세요.
“이름난 곳 말고 음악 취향 맞춰서”
이러한 베를린 클럽 문화 이면에는 어떤 철학이 있을까. 베를린 클럽 문화를 지원하고 종사자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단체인 ‘베를린 클럽 위원회’ 대변인 루츠 라이히센링은 한겨레에 “베를린 클럽은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문화’”라며 “히트곡 40위권 차트 같은 주류 문화에는 반대되는 하위문화, 틈새 문화로서 특정 음악 장르에 공통적으로 관심이 있는 그룹이나 특정한 성적 취향, 동일한 정치철학,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클럽 문 앞을 지키는 경비원(바운서)이 입장을 허락한 사람은 더 이상 손님이 아니라 “클럽 신의 일원이자 가족”이 된다. 라이히센링은 “클럽은 파티에 와서 그냥 서서 두리번거리거나 사람들을 구경하는 ‘손님’은 원하지 않는다”며 “파티에 참여한다는 것은 자신의 캐릭터, 지식, 네트워크 등으로 서로에게 영감을 주면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테마파크에 가서 다음 놀이기구를 타려고 줄을 서는 ‘소비’ 행위와 정반대의 개념”이라고 했다. 베를린 클럽들은 단순히 노는 공간을 넘어 연극, 콘서트, 전시, 상영, 낭독, 토론회 등 다양한 소통의 장도 제공한다. 생계유지를 위해 입장료를 받고 술을 팔지만, 수익 극대화가 목표는 아니다. 베를린 클럽 이용료가 여전히 다른 나라, 지역보다 저렴한 이유다.
베를린 클럽 문화를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까. 라이히센링은 “이름난 클럽 앞에 길게 줄을 서는 대신 좋아하는 디제이가 공연하는 곳, 음악 취향이 맞는 곳을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전혀 알려지지 않은 클럽에 가보는 건 어떨까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게 될 겁니다. 그들이 여러분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다음 클럽으로 데려갈지도 몰라요.”
*베를린 특파원 임기 만료로 ‘이유 있는 유럽’ 연재는 당분간 쉽니다.
베를린/글·사진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의원 입 틀어막고 질질 끌어낸 대통령실…“국민 모독”
- “전쟁 결심한 김정은” 어떻게 대응할까 [아침햇발]
- 국힘, 윤 대통령에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 건의하기로
- 검찰, 조국·임종석 정조준…‘울산시장 선거개입’ 재기수사 명령
- 김동연 “반도체 산업 전력에 원전 필수? 윤 대통령 무식한 소리”
- 민주, ‘이재명 1㎝ 열상’ 문자 작성한 총리실 공무원 고발
- ‘떡볶이 방지법’이 뭐길래…개혁신당, 6호 정강정책으로
- 공수처, ‘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 김계환 사령관 압수수색
- 두 개의 조선, 불변의 주적…‘김정은 선언’ 읽는 5개의 물음표
- 클린스만호, 요르단 잡아 ‘16강 확정’ ‘경고 세탁’ 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