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옥 한 채와 신발 두짝 – 100년 전 하이퍼인플레이션을 표현한 사진[청계천 옆 사진관]

변영욱 기자 2023. 10. 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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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사진 No. 41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을 통해 오늘의 사진을 생각해보는 [백년사진]입니다. 이번 주 선택한 사진은 1923년 10월 26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사진입니다.
멋진 단독 주택 앞에 누군가 구두 한 켤레를 들고 있는 사진입니다.

1923년 10월 16일자 동아일보.

카메라로부터 떨어진 거리가 같은데 포커스가 둘 다 정확하게 맞아있다는 점에서 실제 찍은 사진이 아닌 합성 사진 또는 그래픽 이미지로 판단됩니다. 내용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폭락 또 폭락되는 독일 마르크의 시세
독일 돈은 연일 자꾸 떨어져서 25일에 포착된 백림전보에는 영국 돈 한 파운드에 (일본 돈 약 십원) 대하여 독일 돈 사천억 마크의 시세를 보였다고 한다. 속담에 호왈백만이라더니 독일 마크야 말로 백만쯤은 당초에 돈값에도 가지 못하는 참혹한 형편이다. 이 사진은 전쟁 전의 물가와 전쟁 후 ‘마크’ 시세가 폭락된 후의 물가를 비교한 그림이니 즉 지금 구쓰 한켜레 사는 돈을 가지면 전쟁 전에 이런 양옥 한 채를 살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도 이제는 벌써 옛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은 구두 한 켤레 값을 가지면 전쟁 전 에는 그러한 양옥을 두서너채나 사고도 남았을 것이다.

▶ 1920년대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가 폭락한 것을 표현한 사진임을 알 수 있습니다. 1919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은 복구 비용 마련을 위해 돈을 무한대로 인쇄해 뿌리는 통화 공급 정책을 폈습니다. 이로 인해 독일은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는데 특이 1923년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가장 심각한 사례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경제 역사책에 나오는 100년 전 상황을 한국 신문에서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는지를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영국 1파운드와 독일 4천억 마르크화가 교환될 정도로 독일 마르크의 가치가 폭락했고, 그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사진이 이용된 것입니다. 전쟁 전 물가가 정상일 때 집 한 채를 살 수 있던 돈이 전쟁 후 구두 한 켤레 밖에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설명을 사진이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화려한 그래픽 이미지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당시로서는 꽤나 특별한 ‘시각물’이 아니었을까요?

▶신문사에서 일하는 사진기자와 편집자, 그래픽 디자이너 등은 독자들에게 뉴스와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고민합니다. 뉴스 중에서 제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분야가 금융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름값이 오르고, 아파트 전세거래 금액이 내리고, 증시가 폭등하고, 기준 금리가 동결되는 등 돈과 관련된 뉴스는 매일 신문의 주요 지면에 자리 잡습니다. 우리의 삶은 좌지우지 하는 뉴스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사회, 문화, 국제뉴스 등의 분야는 표현의 방식이 구체적으로 떠오르지만 경제 중에서 돈과 관련된 뉴스는 사진으로 잘 표현되지 않습니다. 매일 비슷한 모양의 주유소 가격표 사진과, 부동산 중개업소 호가판, 외환 딜링룸 표정 등이 반복되어 지면에 실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식상한 사진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인류 전체를 통틀어 금융을 매일매일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진가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미국의 증권거래소 사진도 자세히 보면, 매번 비슷한 딜러의 분주한 모습이 실립니다. 현장이 없고, 그나마 기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몇 군데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신문에서 경제 뉴스가 주목을 받고, 지면을 크게 할애 받기 시작한 것은 IMF 이후입니다. 종합 일간지의 경우 그 때부터 아예 경제 섹션을 발행해오고 있습니다. 처음 경제 섹션이 만들어진 직후, 신문사에서는 지면에 실을 사진이 없어 아주 곤혹이었습니다. 경제 관료들의 회의 모습과 발표 모습이라도 실었지만 중년의 남성 공무원 사진은 금방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주식 거래를 하기 위해 명동의 객장을 찾은 투자자들의 모습을 찍기도 했지만, 초상권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찍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지금의 금융 현장은, 몇몇 은행과 증권거래소 등에서 지수판과 그래프를 크게 화면에 띄우는 형식으로 만들어 놓아 사진기자들이 ‘뉴스를 시각화’하는데 크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가 동향이나 신제품을 출시하는 업체의 홍보 담당자들이 아이디어를 짜내어 사진 연출을 하고 있어 지면이 단조롭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른바 유통사진이 저널리즘이냐는 질문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 신문에 실리는 모델과 제품이 함께 등장하는 사진이 보도사진의 교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유형의 사진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지면에 등장하지 않는 형식이기도 합니다. 텍스트만 있는 지면을 독자에게 보일 수는 없고, 경제라는 현상이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제한적이라 불가피하게 발전된 사진 형태인 것이죠.

▶오늘은 100년 전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표현한 사진을 보면서 지금의 금융과 경제 관련 사진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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