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이태원을 살고 있어요

서혜미 기자 2023. 10. 2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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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너무나 일상적 재난… 축제장 인파, 출퇴근 지하철, 질서 정연한 공연장 등에서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는 사람들
“우리는 재난 당사자를 너무 좁게 생각한다. 사실은 모두가 당사자다.”(상민 용산에프엠(FM)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기록단 운영팀장) <한겨레21>은 이태원 참사 생존자, 상인, 주민, 참사 목격 기자, 기록활동가, 일반 시민 등 이태원을 기억하는 15명을 만나 ‘참사 이후 달라진 삶’을 들었다. —편집자 주


2023년 10월17일 10·29 이태원 참사 현장에 마련된 추모 게시판 앞에서 한 시민이 추모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여기 작은 아이가 있어요!”

2023년 10월7일 늦은 저녁,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6살·3살 자녀, 배우자와 함께 버스를 탄 직장인 김지수(34·가명)씨는 세 정거장을 지났을 무렵 다급하게 외쳤다. 세 정류장을 거치는 동안 내리는 사람보다 타는 사람이 더 많았다. 사람들이 들어차자 사람 간 간격이 좁아졌고, 키 1m가 채 되지 않는 둘째 아이는 어른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팍팍 밀리는 모습에 겁이 나” 안아 올리려 했지만, 팔을 움직일 공간이 없었다. 불안이 파도처럼 덮쳤다. 김씨는 ‘작은 아이가 있으니 밀지 말아달라’고 외쳤다. 놀란 승객들이 공간을 만들어줬고, 한 중년 여성은 “여기 와서 앉으라”며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지인이 초대해 그의 집에서 서울세계불꽃축제를 구경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겪은 일이었다.

일상에서 사건을 ‘재경험’하는 사람들

“유난스럽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이날 각별히 조심했다. 김씨는 불꽃축제가 다 끝나기 전에 지인의 집에서 나왔다. 100만 인파가 운집하리라는 예상이 나왔던 만큼 대중교통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전에 떠났다. 그런데도 여의도 일대엔 사람이 많았다. 축제 관람객이 어느 정도 빠진 뒤 집에 갈 생각으로 인근 카페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하철 9호선 샛강역 2번 출입구 쪽으로 향할수록 몰려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었지만, 지난해 군중 밀집으로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가 떠올랐다. “빨리 돌아가!”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왔던 길을 돌아 다른 출입구로 향했으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씨 가족은 샛강 생태공원으로 내려가 지하철 1호선 대방역까지 걸어서 버스를 탔다. 조심했더라도 버스 안에서 겪은 일을 피할 순 없었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간대에 여의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취재하던 기자 이수현(27·가명)씨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빨리 빠져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원래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참사 이후 그런 성향이 커졌다. 일 때문에 사람들이 밀집한 상황을 맞닥뜨릴 때면 ‘혹시 또 다른 사고가 일어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든다. ‘지옥철’로 불리는 김포도시철도(김포골드라인)의 혼잡을 취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씨는 2022년 10월29일 밤에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방향으로 뛰어갔던 과정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택시를 탔지만 교통 통제로 차량이 진입하기 어려워 이태원역과 약 1㎞ 떨어진 한강진역 부근에서 내렸다. 한껏 즐기는 사람들을 마주치자 순간 안도감이 들었다. 어쩌면 심정지 상태인 사람이 늘어난다는 보도가 잘못된 내용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3년 10월16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서울 중구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기자화견을 열어 참사 1주기 집중추모주간을 선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이씨는 그날을 후각으로 기억한다. 인파를 뚫고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향수 냄새와 사람들의 살 냄새가 뒤섞인 것 같은 냄새가 진해졌다. 우는 사람이 점차 많아졌다. 그리고 도로 위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2022년 10월30일 0시10분께부터 참사 현장을 취재한 강제희(33·가명)씨도 도로 위에 누운 사람들이 대부분 숨졌다는 걸 실감하기 어려웠다. “자기 집에 누워 있어야 할 사람들이 도로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 옆에서 산 사람들이 무너져내린 모습을 보고 비로소 사태를 인지할 수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강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 교차해서 떠오른다”고 했다.

결코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일상 속 어떤 순간을 맞닥뜨릴 때면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생활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모인 집회·시위나 좁은 공간에 군중이 있는 모습을 보면 “호흡을 한 번 가다듬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얼마 전 공연을 보러 간 그는 안내요원들이 관람객 입장을 통제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참사를 떠올렸다. 강씨는 “이렇게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있는 모습을 보면 꼭 (참사가) 떠오른다. 그때는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이제 어디든 자연스럽게 이태원 참사 생각이 떠오를 것 같다.”

서울 대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난 군중 압사 사고는 한국 사회에 많은 상흔을 남겼다. 참사가 정부와 국가 책임이라기보다는 “단순 시민의식의 부재”(왕아무개씨)로 보는 사람이든 “정부가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고 진상 은폐에 집중한다”(김서연·24)고 보는 이든 모두 출퇴근길 지하철을 탈 때나 홍대·강남 등 번화가에서, 콘서트나 지역축제 등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이태원 참사를 떠올린다고 했다.

참사 당사자는 단지 그날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과 숨진 희생자, 그 유족으로만 한정할 수 없다. 2023년 5월부터 이태원 주민과 상인들을 대상으로 구술기록 프로젝트를 진행한 상민 용산에프엠(FM)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기록단 운영팀장은 “우리는 당사자를 너무 좁게 생각한다. 사실은 모두가 (참사의) 당사자”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대상을 잃을 때 그 대상을 사랑한 ‘나’의 일부분도 사라진다. 희생자를 떠나보낸 가족·친구·동료·지인 등은 그들이 살던 세상을 잃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숨진 건 아니었지만, 결코 이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던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다. 참사 현장에 있다가 간발의 차이로 다치지 않았던 김초롱(33)씨도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참사 이후 “형태는 없는데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 때문에 괴로웠다”며 “아끼는 사람을 잃었다면 이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참사로 인한 상실감과 아픔은 머리로 잘 이해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어쩌면 내가 희생자의 운을 가져왔다’는 연결 때문에 ‘차라리 내가 죽었다면 마음은 편했겠다’는 심정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상실감은 또 다른 관계의 상실로 이어졌다. 김씨는 참사 이후 온라인 공간에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라는 글을 연재하고, 언론 인터뷰에 응했으며, 국회 국정조사 공청회에 나섰다. 오래도록 아파하는 자신을 보고 ‘마음 아픈 사건은 맞지만, 너무 슬퍼하는 게 아니냐’는 주변의 반응이 느껴졌다.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는, 모르기 때문에 너무 쉽게 말하고 대하는 태도에 김씨는 “나만 유별난 사람 취급을 받으니 거기서 오는 외로움이 있었다”고 했다. 과각성, 불면, 공황, 알코올 의존 문제가 있었지만 가족에게도 자신이 겪는 고통을 말하지 않았다. 말할 기력조차 없었다. 무엇보다 앞서 겪은 과정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2023년 10월23일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제 보고회’에서 전수진 변호사가 정부기관별 주요 진상규명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이태원 상인 “회복에 얼마나 걸릴지”

“정말 힘들다는 이야기를 누구한테 하잖아요? 그럼 그게 본인이 이해가 안 되니까 ‘왜? 왜 그렇게 생각해?’ ‘그건 좀 아니지 않아?’라는 말로 약간 추궁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럴 게 너무 상상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저를 행복하게 하는 거였어요.” 깊은 외로움은 고립감으로, 고립감은 자책으로 이어졌다. “사회적 관계가 끊어지고 외딴섬처럼 고립된” 그는 “내가 잘못했으니 이 세상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50대 박정재(가명)씨는 참사 이후 ‘어쩌면 내 가족이 유가족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사 두 달 전인 2022년 8월, 이태원에 새 가게를 열었다. 참사가 일어난 뒤 한 달은 가게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 뒤 두 달 매출은 개점 직후의 매출과 비교했을 때 채 10%도 되지 않았다. 초기비용을 일부 회수하긴커녕 다달이 직원 인건비와 임차료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정부가 마련한 소상공인 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진짜 죽기로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하면서” 버텼다. “장사가 안되면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한 그는 “내가 두 손을 놔버리는 순간 우리 애들도 다 피해자가 된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태원은 2020년 클럽 이용객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확산하면서 한때 이곳을 찾는 사람이 급감했다. 집합 제한과 거리두기 등 강력한 방역수칙을 지키는 것이 사회규범이던 시기를 거치면서 소상공인들의 적자는 누적됐다.

참사 이후 박씨의 사회적 활동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질 새가 없었다. 그는 “장사가 안되면 개인 시간도 없어지고, 개인 시간이 사라지면 사회생활이 안 된다”며 “가게에 시간을 더 할애하다보니 가족이나 주변 사람을 챙기기도 힘들어진다”고 했다. 이태원 상인 모임을 제외하고 “사회적 교류를 다 끊고 가게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가게를 살려야 자신과 가정을 살릴 수 있었다. 한동안 가족과 함께 외식하는 일도, 퇴근 뒤 집에서 저녁을 먹는 일도 거의 없었다. 집에 있는 게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한두 달 전부터 예전 매출의 60∼70% 수준으로 돌아왔지만, 박씨는 “그동안 누적된, 곪았던 것이 너무 깊기 때문에 이겨내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축제가 이태원에서 갖는 의미는

참사 이전에 김서연(24)씨는 이태원 일대를 자주 찾았다. “좋아하는 비건 식당이 많고, 동네가 주는 자유롭고 따뜻한 분위기가 좋아서”였다.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분장사)인 동은진(23)씨도 이태원의 그런 분위기를 좋아했다. 동씨는 해마다 10월 말 무렵 이태원에 3∼4일간 머물며 특수분장 일을 하곤 했다. 축제 기간 분장은 빠질 수 없는 묘미였고, 사람들은 이태원에 와서 특수분장을 받으며 축제를 즐겼다.

동씨는 “일하러 간 목적이 크긴 했지만 그 안에서 늘 재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분장을 받는 손님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즐거웠다. 동씨에게 핫팩을 주거나 간식을 나눠주는 손님도, 또 분장을 받은 뒤 놀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찾아와 ‘오늘 덕분에 즐겁게 놀았다’는 말을 해주는 손님도 있었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으로 “정말 재밌었다”는 디엠(DM)이 오기도 했다. 이태원의 핼러윈 축제는 다른 지역 축제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특별한 축제였다. 동씨는 “불안하고 불완전한 부분은 고치되, 이 문화 자체가 안 좋은 기억으로 남고 사라지는 걸 정말로 원치 않는다”고 했다.

2023년 10월17일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모습. 김진수 선임기자

상민 기록단 운영팀장은 “기록단원이 만난 한 주민은 3대째 이태원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며 이 주민의 말을 소개했다. “핼러윈 축제 주간이면 이태원 일대는 미국에서처럼 집집이 사탕 바구니가 걸리고, 그분의 가족은 늘 핼러윈 축제에 참여해왔다”는 것이다. 핼러윈 축제는 단지 일부 젊은이가 클럽을 중심으로 노는 문화가 아니었다. 그 지역 안에서는 마을 공동체가 즐기는 축제였다.

구술기록에 참여한 또 다른 상인은 “여긴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면서도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상인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여기서 오래 장사한 분들은 다들 예전 자신의 기억을 친구들, 동생들에게 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태원 지역에서 먼저 놀았던 ‘선배’로서 이곳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문화를 ‘후배’에게 물려주는 역할을 하고, 그 역시 “어른들이 놀던 공간을 우리가 이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민 팀장은 “‘매출 회복’이 ‘일상 회복’의 전부일 수는 없다”며 “매출 회복이라는 말은 이분들의 ‘문화 재생산’ 역할을 간과하는 것이라 본다”고 했다.

이태원이라는 장소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참사 당사자의 범위는 넓어진다. ‘모두가 참사 당사자’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이곳에서만 느끼고 얻을 수 있었던 자유와 문화, 안녕감 등을 상실한 이들도 이 참사의 당사자다. 상민 팀장은 “참사 당사자는 너무나 많지만, 그 많은 당사자의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상인과 주민, 이태원을 자주 찾는 청년·드래그 아티스트·클럽 디제이(DJ)·외국인 등 이태원에 애정이 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구술기록을 시작한 이유다. 무엇보다 참사 당사자를 희생자와 그 유족으로만 보는 시각은 “유가족에게만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일”처럼 느껴졌다.

“연결된 사람이 곳곳에 있다는 감각”

참사 1년, 참사의 많은 당사자가 이태원이라는 장소와 참사 이후를 보는 마음은 제각각 다르고 복잡하다. 참사 현장을 취재했던 강제희씨는 한동안 이태원을 의식적으로 멀리하다 2023년 8∼9월 “약간 도전하는 마음으로” 이태원에 놀러 갔다. 취재 때문에 온 적은 있었지만, 이전처럼 이태원에 놀러 간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대학생 최휘주(27)씨는 참사 뒤 종종 이태원을 일부러 찾으면서 추모객들이 붙여놓은 쪽지를 읽고 희생자들을 떠올린다. “잊지 않는 게 살아남은 사람의 예의이고 의무가 아닐까”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이태원에 있는 식당이나 가게에는 들르지 않는다. 최씨는 “거기에서 뭔가 밥을 먹는다거나 술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좀 꺼려져서 아예 그런 생각이 안 든다”고 말했다.

김미경(62)씨는 2022년 12월 중순부터 자신이 속한 시민단체 회원과 번갈아가며 차 봉사를 한다. 녹사평역 시민분향소가 서울광장으로 이전하자 그도 함께 왔다. 유족이나 방문객에게 차·커피·물 등을 제공하고, 분향소 앞에서 욕설하거나 시비 거는 행인을 제지한다. 유족이 눈물을 흘릴 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는 유족을) 한 번 안아주고 차 한 잔 드리는 것 정도”다. 그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3∼4년은 봉사할 생각”이라고 했다.

김초롱씨가 이태원 참사 이후 약 1년의 시간을 담은 책

반면 연초까지만 해도 이태원을 자주 찾은 김서연씨는 “이태원에 가면 화도 나고 속상한 마음이 들어” 최근 이곳에 잘 가지 않는다. 이태원 상권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자주 갔지만 진척되지 않는 사안에 답답함을 느낀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통과되지도 않고 정부의 책임 회피가 계속되는데, 이태원에 가면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직접 마주하고 떠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통받는 당사자들은 다른 참사의 당사자와 연이 닿을 때 큰 위안을 받았다. 박정재씨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다시 찾은 손님들이 건넨 위로의 말이었다. 그들은 ‘상인에게는 잘못이 없다’ ‘너무 죄책감 갖지 마시라’ ‘열심히 버티고 이제까지 버텨줘서 정말 감사하다’ 같은 말을 했다. 무엇보다 그날 그 현장에, 그 상황에 있었던 사람이나 박씨의 가게에 들렀던 사람들이 ‘평생을 여기 못 올 거라고 생각했다. 이해가 안 되지만 오게 됐는데, 주말에 사람이 많은 걸 보니 마음이 너무 편해진다’는 말에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김초롱씨는 ‘연결감’ 덕분에 지난 1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친구, 상담사, 주치의뿐 아니라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회 구성원들의 응원이 주는 힘이 컸다. 그는 참사 뒤 자신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를 담은 책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아몬드 펴냄)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참사 이후 글을 연재하면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분들이 ‘언제 어디서나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남겨주셨거든요. 제 마음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저와 연결된 사람이 눈에 보이진 않지만 곳곳에 있다는 감각이요.” 달리 표현하면 고통에 빠진 사람을 혼자 두지 않고 함께하겠다는 연대 의식이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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