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투더투데이] 원스어펀어타임 인 대구-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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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교동은 원래 향교가 있던 곳이라는 의미로 향교동이라고도 불렸습니다.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교동시장이 형성됐고, 보따리 무역을 통한 수입품과 미군 부대에서 나온 군수품 등을 살 수 있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정식 수입되지 않았던 '일제' 전자제품이나 컴퓨터 부품 등을 구할 수 있었고 귀금속에서 구제 옷까지 '없는 게 없는' 곳으로 호황을 누렸지만, 2천년대 들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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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교동은 원래 향교가 있던 곳이라는 의미로 향교동이라고도 불렸습니다.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교동시장이 형성됐고, 보따리 무역을 통한 수입품과 미군 부대에서 나온 군수품 등을 살 수 있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정식 수입되지 않았던 '일제' 전자제품이나 컴퓨터 부품 등을 구할 수 있었고 귀금속에서 구제 옷까지 '없는 게 없는' 곳으로 호황을 누렸지만, 2천년대 들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듭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시 젊은 층이 찾는 '핫플'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1978년과 1982년, 1983년 대구 교동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영상편집 윤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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