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제지 주가조작에 ‘휘청’…위험관리 없는 키움증권
시세조종과 증권사
시세조종 의혹 파다한 상황서
미수거래 증거금률 40% 유지
작전 이용되고 수천억 손실 예상
‘라덕연 사태’ 겪고도 위기 반복
경제지에서 일하는 기자 후배가 쓴 칼럼을 보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라임 사태 이후 변한 게 없다’라는 제목이었다. 필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요즘 자본시장을 보면 정말 변한 게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칼럼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라임자산운용 사기극만큼 내부통제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사건도 없었다. 신한투자증권 내 연봉 1위를 자랑하던 한 본부장은 펀드 사기를 공모한 것으로 드러나 징역 8년형을 받았다. 케이비(KB)증권, 대신증권, 우리은행 등도 연루되면서 막대한 수업료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이후 변한 건 없다. 최근 메리츠증권 임직원들이 업무상 취득한 정보로 코스닥 기업 전환사채에 투자해 10억원가량 수익을 얻은 사실이 적발됐다. 미래에셋증권의 한 프라이빗뱅커는 엘비(LB)그룹 일가 자금을 관리하면서 손실 조작과 횡령을 일삼다가 구속되었다. 비엔케이(BNK)경남은행 직원의 2988억원 횡령, 하이투자증권과 하나증권, 신한투자증권 임직원의 사익 추구 투자비리 등으로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은 내부통제 미비 성토대회가 되었다.”
다른 증권사, 영풍제지 증거금률 100%로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가 얼마나 허술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또 터졌다. 영풍제지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키움증권이 보여준 모습은 위험관리 조직이 존재하는지, 위험관리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하게 한다.
키움증권은 지난 20일 고객 위탁계좌에서 무려 4943억원의 미수금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이유는 전날의 영풍제지 하한가였다. 한국거래소와 금융당국은 영풍제지가 하한가를 기록하자 거래정지 조치를 내렸다. 상장기업이 하한가를 맞는다고 거래정지 수준의 시장조치를 발동하지는 않는다. 지난 4월 이른바 ‘라덕연 주가조작 사태’가 자본시장을 강타했을 때도 8개 기업 주가가 며칠 동안 하한가를 기록한 이후에 거래가 정지됐다.
그럼 왜 영풍제지에 대해서는 전격적으로 하루 만에 거래를 막았을까. 다른 증권사에서는 왜 키움증권처럼 막대한 미수금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영풍제지는 지난해 대양금속에 인수됐다. 대양금속은 자기 돈을 거의 투입하지 않고 차입금을 동원했다. 심지어 인수 대금 중 일부는 영풍제지를 상대로 회사채(전환사채)를 발행해 마련했다. 인수되는 회사로부터 인수자금을 조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인 것이다.
영풍제지 주가는 최근 11개월간 무려 15배 이상 올랐다. 뚜렷한 이유도 없었다. 무상증자를 반영한 수정주가 기준으로 지난해 10월 2천~3천원대에 머물던 주가는 올해 8월 5만원을 넘어섰다. 10월 들어서도 4만5천원 이상을 유지했다. 어떤 이들은 주가조작 일당이 오랫동안 서서히 주가를 끌어올렸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15배 이상 상승하는 종목이 과연 몇개나 될까. 영풍제지 주가 차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시세조종 가능성을 제기해왔다. 필자 역시 몇달 동안 관련자료를 수집해놓았을 정도다.
금융당국과 검찰이 나선 것은 지난 8월 무렵으로 전해졌다. 시세조종 혐의자들을 체포했고, 이를 알게 된 남은 일당들이 지분 매도에 나서면서 지난 19일 하한가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대로 두면 혐의자들이 잔여 지분을 팔 수 있는 길을 터주는 셈이니 거래소가 일단 거래정지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증권사들은 올해 들어 영풍제지 미수거래 증거금 비율을 100%로 높였다. 증권사 대출 없이 투자자 본인의 현금으로만 주식을 살 수 있게 제한한 것이다. 영풍제지에 대해서는 시장의 소문만 있었던 게 아니다. 몇몇 유력 언론은 지난 8월 초 ‘1년간 17배 폭등한 영풍제지에 제2 라덕연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유독 키움증권만 40%를 유지했다. 일반적인 경우 미수거래 증거금 비율은 대개 20~40%다. 증거금률이 30%라면, 30만원만 있으면 증권사 대출을 끼고 주식 100만원어치를 살 수 있다. 대신 결제일(매수 시점으로부터 3거래일)까지 대출금 70만원과 이자를 납부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증권사는 계좌 내 주식을 강제매도(반대매매)해 자금을 회수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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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수수료 수익 얻고 ‘작전 놀이터’로
여타 증권사들이 영풍제지 같은 위험종목 관리를 강화할 때 키움증권은 대출 수수료 수익만 바라보고 손을 놓고 있었다. 영풍제지 작전세력 일당은 시세조종에 100여개 증권 계좌를 활용했다. 대부분 증거금률이 낮은 키움증권에 개설된 계좌였다. 라덕연 사태가 자본시장을 강타했을 때 증권회사들은 크고 작은 손실을 입었다. 이때도 내부통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시세조종 일당은 이른바 ‘시에프디’(CFD·차액결제거래)라는 장외파생상품을 활용했다. 개인투자자와 시에프디 거래를 가장 많이 한 증권사 세곳 가운데 한곳이 키움증권이었다. 특히나 이 회사는 대주주인 김익래 회장이 당시의 주식거래 때문에 검찰 조사와 압수수색까지 받았다.
라덕연 일당은 다우키움그룹의 지주사 격인 다우데이타의 주가를 오랫동안 끌어올렸다. 라덕연 사태 직후 다우데이타는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그런데 김 회장이 사태 직전 이 회사 주식을 장외대량매도(블록딜)한 사실이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손실 회피가 된 셈이다. 매도 과정에서 사전정보 취득 여부가 논란이 되었는데 아직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키움증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비난이 특히나 거센 이유가 이 때문이다. 어느 증권사보다 더욱 위험관리에 집중했어야 할 곳이 작전 놀이터가 됐다는 성토까지 나온다. 금융당국은 “올해 들어 여러차례 시세조종 사건이 터지면서 증권사들에 신용거래·미수거래 리스크 관리를 요구했는데도 키움증권은 이를 회피하였다”며 강력한 제재에 나설 태세다.
영풍제지는 지난 26일 거래가 재개되면서 바로 하한가로 직행했다. 키움증권은 반대매매에 들어갔다. 하한가가 지속되면 미수금 회수는 원활하지 않을 것이다. 가늠하기 어렵지만 증권가에서는 미수금의 50% 안팎 수준에서 키움증권의 손실이 확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신한투자증권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본부장의 라임 사기 사건 연루가 밝혀졌을 때 이 증권사 한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사업 부서에서 ‘위험관리 부서 간섭 때문에 벌 돈도 못 번다’는 불평이 나오고 시이오(CEO)가 이 사업 부서에 힘을 실어줄 때 위험관리라는 건 사라집니다. 그래서 사고가 터지는 거고요.”
돈벌이만 바라보고 달린 키움증권에 위험관리라는 것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MTN 기업경제센터장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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