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썰] ‘59분 대통령’ 윤석열의 한국경제 폭망 시나리오
IMF·OECD 등 잇단 경고 무시하며 경제 침몰 가속화
안녕하세요. 논썰의 이재성입니다.
한국경제라는 배가 침몰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률이 미국과 일본보다도 낮아졌다는 뉴스가 들립니다. 금리는 여전히 높은데 가계부채는 늘어만 갑니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임금은 제자리라 실질임금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국민의 고통은 커져갑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저는 이 사태의 중심에 윤석열 대통령의 ‘전지전능’하다는 착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어전회의보다도 제왕적
“전두환 전 대통령은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왜 그러느냐? 전문가에게 맡겼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이렇게 말했다가 전두환 군사정권을 찬양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이튿날 페이스북에 “전두환 독재 시절,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이 ‘경제 대통령’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전문가적 역량을 발휘했던 걸 상기시킨 것”이라고 부연합니다. 대통령이 되면 본인이 잘 모르는 경제 분야를 전문가에게 맡기겠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정말 전문가에게 맡겼을까요? 다음 대화를 보시죠. 최근 열렸던 국회 국정감사 장면입니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통령이) 어떻게 저런 말을 쓸 수가 있지 싶을 만큼 거친 언어로 장관님을 비난했다고 하는 얘기가 지금 과학기술계에 파다해요.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재정전략회의에서 여러 가지 의견들을 제가 잘 경청을 했습니다.
민형배: 거칠었던 건 사실이고요?
이종호: 그건 의원님이 그렇게 생각하셔도 저는 뭐 제가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부분이고요.
허숙정 민주당 의원: 6월에 마련된 예산안이 2% 증액된 안이 맞죠? 초기에는?
이종호 과기부 장관: 그거는 5월에, 5월 한 중순부터 하나의 안으로 검토된...
이게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습니까? 지난 6월 28일 대통령실 영빈관에서 열린 ‘2023 국가재정전략회의’를 말하는 건데요. 원래 각 부처는 매년 5월31일까지 기획재정부에 다음해 예산안을 제출합니다. 이를 토대로 기재부와 조정과 협의를 거쳐 6월 말까지 각 부처 예산 요구안을 확정합니다. 그러니까 국가재정전략회의는 일종의 사후 승인 성격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판을 엎어버립니다.
다른 부처 보고 때는 별 얘기가 없다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때부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고 합니다. “국정 기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대통령이 질타했다는 건데요. 어디서 무슨 얘길 들었는지 윤 대통령은 R&D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이 자리에서 처음 드러냅니다.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회의가 끝난 뒤 기재부는 과기부만이 아니라 다른 부처들까지 예산안을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때 주어진 시간은 단 3일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지시를 반영하느라 벼락치기로 뭉텅이 삭감이 이뤄진 것입니다. 아무런 토론도 없이 일방적인 질타와 지시로 국가 1년 예산 편성이 원점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조선시대 어전회의도 이렇게 하진 않았습니다.
정부가 미래 파괴 주도
애초 2% 증액하려고 했던 R&D 예산이 대통령의 야단을 맞고 16.6% 줄었습니다. 올해 31조원에서 25조9천억원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정부가 국가 R&D 예산을 깎은 것은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64년 이래 사실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1991년 유일하게 연구개발 예산이 줄었던 적이 있지만, 집계방식이 바뀌면서 수치상으로만 삭감된 것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도 삭감 예산안을 제출한 적이 있었는데, 국회 심의 과정에서 소폭 증액하는 쪽으로 수정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연구개발 예산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당장은 어렵지만 내일을 위한 씨앗은 남겨두자는 국민적 합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진보와 보수, 좌우를 막론하고 합의가 이뤄졌던 우리 경제의 마지막 금도를 윤석열 정부가 깨뜨린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명확히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R&D 예산 삭감은 방만한 집행이 먼저 문제가 돼서 시작한 게 아닙니다. 선후가 바뀌어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R&D 투자가 100% 깨끗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예산이 정말로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정말 그런지 확인하고, 정확히 그곳만 도려내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먼저 문제가 있다는 교시가 있었고, 이를 받들어 거의 일률적으로 잘라냈습니다. 국가가 무슨 동네 구멍가게입니까?
과학기술계는 충격과 혼돈에 빠졌습니다. 예산이 끊겨서 연구용 컴퓨터가 멈춰서는가 하면, 진행 중이던 연구도 돈이 없어서 접어야 할 판입니다. 정부 계획대로 상대평가를 통해 20%를 의무 구조조정하는 방식으로 R&D 투자를 진행하면, 앞으로 연구과제는 단기 성과 위주로 재편될 수밖에 없습니다. 민간이 감당하기 힘든 장기 대형 연구과제는 사라지게 됩니다. 오늘날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미국의 인터넷과 반도체 산업이 미국 정부의 R&D 투자에 의해 가능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전 세계인이 백신을 맞을 수 있게 해준 m-RNA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전자를 컴퓨터로 코딩하겠다는 황당한 아이디어를 미국 정부가 수십년간 막대한 예산을 쏟아가며 지원해 줬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지금 먹여 살리는 반도체나 배터리 같은 산업도 정부의 지원과 대학의 연구 네트워크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루아침에 세금을 축내는 카르텔로 낙인찍힌 과학 인재들은 벌써 떠났거나 떠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망국적인 의대 블랙홀로 이공계 우수 인재들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데, 우리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해온 인재와 기술을 걷어차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 규모가 극적으로 줄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앞장서 우리 경제의 미래를 파괴하는 매국적인 행위입니다.
경제 축소 가속화하는 정부
우리 경제는 쪼그라드는 중입니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일본에 역전당할 거라는 뉴스는 이미 보셨을 겁니다. 올해는 외환위기·금융위기와 같은 외부 충격이 없는 상태에서 1%대 성장률을 기록하는 최초의 해가 될 것입니다. 수출은 11개월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10월 들어 반등을 예상하는데, 지난해 10월부터 수출이 감소한 기저효과가 반영된 것입니다. 무역수지는 15개월째 적자를 내다 지난 6월부터 흑자로 돌아섰지만, 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서 나타나는 불황형 흑자입니다.
모든 것이 줄어들고 있는데 잠재성장률이라고 줄어들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잠재성장률은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노동·자본 등 모든 생산요소를 동원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입니다. 경제의 기초 체력을 보여주는 지수 같은 건데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하는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사상 처음 1%대로 추락했습니다. 올해 1.9%, 내년 1.7%입니다. 2014년 3.4%에서 불과 10년 만에 반토막 나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두배 이상 높은 미국보다도 내년 잠재성장률이 낮아지게 됩니다. 미국은 올해 1.8%로 한국보다 낮지만, 내년엔 1.9%로 한국보다 높습니다. 우리 경제의 체력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는 겁니다. 이제 막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는데, 이렇게 저성장의 나락으로 추락하면 다시 중진국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제가 저성장으로 떨어질 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재정을 투입해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특히 인구 감소와 생산성 하락으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거의 유일한 방안은 연구개발(R&D) 투자입니다. 미래 산업 발굴을 통해 시장을 선점하거나 생산요소의 효율을 높이는 일은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 혁신과 동의어나 마찬가지입니다. 쉬운 과제는 아니지만, 인구 문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조기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정부가 돈이 없습니다. 올해 60조원에 가까운 세금이 예상보다 덜 걷히는 사상 최대의 세수 펑크 사태가 예고된 상태입니다. 세수 펑크의 원인은 정부의 공격적인 부자 감세와 경기 예측 실패입니다. 부자 감세는 잘못된 우파 이념에서 비롯한 것이고, 경기 예측 실패는 정부가 무능하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위주의 법인세 감세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도 없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대선 때는 감추고 있다가 당선되자마자 법인세 감세를 강행해서 세수 펑크를 자초했습니다. 올해 1분기와 2분기 실질 GDP(국내총생산)의 정부 기여도는 각각 -0.3%포인트와 -0.5%포인트였습니다. 정부 재정이 GDP를 깎아 먹고 있는 겁니다. 다른 건 다 줄이면서 검찰을 비롯한 수사 및 정보기관의 특활비와 대통령실의 해외순방 예산은 늘렸습니다. 후안무치합니다.
R&D 투자가 희생양이 된 이유도 막대한 세수 결손으로 정부 곳간이 비었기 때문입니다. 지지 기반에 잘 보이려고 부자감세를 했고, 그 대가로 경제가 쪼그라들었습니다. 그래서 미래를 위해 투자할 돈이 없어졌고, 그 후과는 더 쪼그라든 경제로 돌아올 겁니다. 잘못된 우파적 경제관이 가져온 비극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 선택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유승민 전 의원의 IMF 위기 경고
“지금 자칫 잘못하면 IMF 위기 비슷한 위기가 가계부채나 기업부채에서 터질 수 있다. 대통령은 이제까지 경제라는 게 그냥 땜빵식으로 한 것이다. 부총리부터 모든 경제 민생 관련 부처의 장관들 저는 싹 교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부총리가 됐든 경제부처 장관이 됐든 자기가 콩밭에 마음이 가 있으면 제대로 책임 있게 정책을 하겠느냐. 내년 4월에 총선에 나가서 좋은 지역구 받아가지고 될 생각만 하면 어떻게 경제가 되겠나.” (유승민 전 의원, 10월19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유승민 전 의원의 말처럼 IMF 위기까지 거론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국경제에 대한 경고음이 주로 외부에서 나오고 있고, 그걸 한국 정부가 극구 부인하는 건 IMF 사태 당시를 닮았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김영삼 정부 경제관료와 언론들은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며 위기 같은 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지금도 비슷합니다. 잇따라 쏟아지는 국외 기관의 한국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에 대해 정부는 무시하거나 의미를 축소하기 바쁩니다. 지난 10월 18일 IMF가 내놓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 전망 보고서’에 대한 정부 반응이 대표적입니다. IMF는 이 보고서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과 함께 세계 주요 국가에서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까지 이어지면 한국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며, 국내총생산(GDP)이 1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IMF 당시 6.7% 감소했는데도 그 엄청난 고통을 겪었는데, 10%라니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기재부는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해당 분석은 과거 대중 수출 비중이 계속 높아지던 2000∼2021년을 대상으로 해 한국의 디리스킹 영향을 과대 추정했을 가능성이 크며 해석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대책을 내놓지는 않고 평가절하만 하고 있습니다.
위기 신호 무시 행태가 닮았다
지난 10월11일 IMF가 내년 한국 경제 전망을 2.4%에서 2.2%로 하향 조정했는데도 정부의 표정은 해맑습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선진국 대비해서 리바운드를 크게 보는구나. 한국은 굉장히 이례적으로 높게 봤네, 요 부분도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년 성장률의 경우 다른 선진국들보다 한국이 높다는 점을 강조한 건데요. IMF가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7월보다 하향 조정한 것은 정부의 ‘상저하고’ 전망과 괴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엉뚱한 답변을 한 것입니다. IMF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다섯 차례나 하향 조정했지만, 한국을 제외한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주요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일제히 올렸습니다. 더구나 한국이 주요 선진국보다 성장률이 높은 것은 원래 당연한 일입니다. 이례적으로 낮아져 있는 현재를 기준으로 낙관적 전망을 부각하는 건 국민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벌거벗은 임금님과 딸랑이들
정부가 이렇게 낙관적 전망을 늘어놓는 이유가 뭘까요? 저는 대통령님 듣기 좋은 얘기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괜히 안 좋은 얘기라도 했다가는 또 불같이 화를 낼 테니까요. 장관 목이 달아나는 것은 물론이고, 내년 총선 공천도 받지 못하게 될 겁니다. 이렇게 장관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상처가 곪아도 아프다고 말을 못 합니다.
위기 신호를 무시하고 낙관론을 강요하는 정부의 이런 태도는 희망 고문이어서도 문제지만, 필요한 대책을 하지 않는 알리바이가 되기도 한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마침 세수 펑크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으니 윤석열 정부로선 일석이조인 셈입니다. 망해가는 경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겁니다. 정말 이분들이 한국경제를 폭망시키려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내각 총사퇴를 주장했는데요. 장관들은 어차피 내년 총선 나가려고 그만둘 채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딸랑이 장관들 바꾼다고 정책이 바뀔까요? 윤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또 다른 붕어빵들로 채울 테니까요.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 이후에도 윤 대통령이 바뀔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조선일보조차 ‘59분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지면에 실을 정도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 시간 동안 혼자 59분을 떠드는 대통령과 받아적기 바쁜 딸랑이 국무위원들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이율배반, 갈팡질팡, 엇박자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은 이율배반과 자가당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말로는 서민을 위한다면서 부자감세를 강행했고, 건전재정을 한다면서 역대급 세수 펑크로 재정적자를 키우고 있습니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금감원장은 은행 창구지도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을 사실상 무력화했고, 고금리와 고물가에 국민 허리가 휘는데 무리한 집값 떠받치기로 가계부채를 키웠습니다.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자신들도 모르는 상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진정한 거짓말 고수는 자기 자신도 속인다고 합니다. 이 정부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지금까지 논썰이었습니다.
기획·출연 이재성 논설위원 san@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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