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동산 대책 실효성 없다”
● 원희룡 “부동산 시장 비상사태”
● 수요↑ 공급↓ 정부 ‘최악’ 상황
● 공급 확대 정책 좋지만 체감하기엔…
● “효과 당장 기대하기 어렵다”
8월 정부가 국내 부동산시장에서 주택 공급 흐름에 비상이 걸렸다고 선언했다. 초기 비상을 걸어야 하는, 즉 정부가 나서야 할 정도로 이상 신호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허가·착공 등 주택공급 관련 선행 지표가 급감해 수년 뒤 공급 절벽에 따른 집값 폭등 우려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주택공급과 관련해 별도로 정책 방향을 밝힌 것은 1년 만이다. 현 정부는 지난해 8월 이른바 8·16 대책을 통해 향후 5년간 27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은 바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 집값이 급등한 원인 중 하나로 주택공급 부족이 꼽혔던 만큼 충분한 공급으로 시장을 안정화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수요 느는데 공급 줄고…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주택 경기 흐름이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 정권 초 내놨던 청사진을 제대로 실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지난해 하반기 급격한 금리인상 등으로 주택 경기가 빠르게 침체하며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전 정부와는 다르게 주택공급 중요성이 확연하게 줄었다. 일각에서는 되레 대규모 주택공급이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윤석열 정부도 이를 의식한 듯 주택공급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밝히며 대신 시장 연착륙을 위한 규제 완화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러한 움직임이 시장에 반영되면서 올해 들어선 분위기가 다시 한번 바뀌었다. 수요가 되살아났다.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청약 시장에 수요자가 몰렸고 이후 기존 주택시장 역시 거래가 늘며 가격 반등 흐름이 나타났다.
부동산 리서치 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전국 평균 청약 경쟁률은 11대 1을 기록하며 1분기 5.1대 1보다 두 배 이상 올랐다. 지난해 3분기(4.2대 1)와 4분기(4대 1)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한 자릿수 경쟁률에 그쳤으나 3분기 만에 두 자릿수를 회복했다.
공공주택·민간 지원 늘리는 新대책
정부는 주택공급 대책을 내놓은 지 1년 만에 보완책을 내놔야만 했다. 9월 26일 내놓은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이다. 이번 방안엔 공공부문의 경우 기존 계획보다 주택공급을 더욱 늘리고, 민간 부문에서는 건설사 등이 공급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정부는 우선 공공주택 공급 물량을 추가로 5만5000가구 늘리는 계획을 내놨다. 3기 신도시 경우 기존엔 17만6000가구를 지을 계획이었는데, 3만 가구를 더해 총 20만6000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 용적률이나 자족 용지 등을 조정해 공급을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민간 부문 대책에선 건설업체들의 자금난을 해소해 주는 방안이 가장 눈에 띈다. 우선 정상 사업장이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주택금융공사(HF) 등 정책금융기관의 부동산 PF 대출 보증 규모를 기존 15조 원에서 25조 원으로 확대한다. 시중금리가 높아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사업자의 경우 공적 기관 보증을 통해 금리를 낮출 수 있다. PF 보증 한도도 전체 사업비의 50%에서 70%로 확대한다.
또 연립·다세대, 오피스텔 등 비(非)아파트를 건설할 경우 1년간 7500만 원까지 연 3.5%의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한다. 공공택지 전매제한을 1년간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과 기존 정비사업의 공사비 분쟁을 줄일 수 있도록 해 사업 속도를 높이는 대책도 함께 내놨다.
시장에서는 애초 정부가 내놓은 임기 내 270만 가구 공급이 다소 무리한 계획이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주택공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간사업의 경우 변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정부가 공급 위축을 빠르게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선 점에 대해서는 긍정 평가가 나온다.
"정부 대책? 역부족!"
원희룡 장관 역시 이와 관련해 "과거 공급이 충분하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정부 당국이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며 "위기의식을 갖고 압도적 정책을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 지난 정권에서는 주택공급량이 부족해 집값 상승을 초래한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공급량이 충분하다며 규제 위주 정책을 이어갔다. 결국 정권 후반기에는 "주택공급 부족 현상이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며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선 바 있다.물론 정부가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고 해서 민간 건설사들이 다시 주택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미지수다. 정부의 움직임이 주택사업의 수익성을 높여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일부 규제를 풀어주고 PF 지원을 강화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이번 대책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해소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그간의 경영 기조를 당장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집을 지었다가 미분양이 나면 결국 그 손해를 떠안는 것은 건설사"라며 "여전히 건설업계에서는 PF발 도미노 부도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주택사업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향후 주택공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1년 만에 다시 주택공급 계획을 내놓은 까닭이 이러한 불안 심리를 완화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각에서 인허가·착공 실적 부진 등으로 앞으로 2~3년 후 주택공급이 부족하리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며 이번 대책을 마련한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급 확대에 대한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실효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이번 대책에는 수요자들이 앞으로 주택 공급이 확대될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할 만한 내용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며 "신도시 물량을 3만 가구 늘리겠다는 내용이나 건설사들의 부동산 PF 대출을 지원하겠다는 내용 등은 수요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책이 앞으로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경우 되레 부작용만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주택공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점이 근거다. 메시지만 강조되고 주택공급 지표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시장 불안감만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효과 미지수, 결과로 증명해야"
규제 완화로 분양가만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번 대책엔 정부가 정비사업장의 공사비 증액 기준을 마련해 분쟁을 줄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안이 담겼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 팀장은 "공공 도심복합사업 분양가상한제 배제와 민간의 공사비 증액 기준 마련 등으로 전반적 공사비 상승이 불가피해 보인다"며 "분양가 상승이 예견되는 만큼 미래 신축 주택을 선점하기 위한 청약 열기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 역시 "결국 공사비를 늘리고 공급 금융 규제도 완화해 줘 주택 공급을 빠르게 확대하겠다는 방안"이라며 "이에 따라 분양 가격이 상승하고, (기존) 주택 가격 상승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도 이런 점을 의식해 이번 방안에 주택 가격을 자극하거나 불필요한 투자 수요를 진작하는 방안은 최대한 뺐다고 밝혔다. 원희룡 장관은 "이번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은 사업성 악화나 규제, 금융의 일시적 막힘 때문에 못 가고 있는 부분, 엉켜 있는 부분을 풀어서 시장의 동력을 정상적으로 가동하는 게 목표"라며 "주택 가격을 자극하거나 수요를 진작하는 정책은 아예 검토 대상에서 뺐다"고 강조했다. 대대적 규제 완화와 공급 방안을 내놓자니 자칫 시장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다소 보수적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이번 대책은 소리는 요란했지만 당장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지는 못할 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가 계획을 차질 없이 시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된다. 김인만 소장은 "결국 공급자들이 주택을 차질 없이 공급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라며 "대책 발표로 인한 효과를 당장 기대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정부가 이를 제대로 실행해 좋은 성적표를 가져와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나원식 비즈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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