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한반도톡] 경제보다 국방…김정은식 '올인 외교', 中보다 러에 집중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북한이 코로나19로 걸어 잠갔던 국경의 문을 열고 외교를 본격화하면서 러시아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에 전통적 우방인 중국과는 소원한 관계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지난달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은 이달 18일 평양을 방문해 최선희 외무상과 정상회담 후속조치를 논의했다.
이에 앞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지난 7월 북한의 전승절을 맞아 평양을 방문했고 김 위원장은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모든 일정을 쇼이구 장관과 함께했다.
다음 달에는 평양에서 무역·경제·과학·기술 협력을 위한 정부간 위원회 제10차 회의 개최도 예정돼 있다.
반면 국경은 열렸지만 북중간 외교관계는 비교적 조용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올해 7월 전승절 행사를 계기로 평양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면서 중국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자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국회부의장 격)인 리훙중(李鴻忠)을 단장으로 하는 당 및 정부대표단을 파견했다.
하지만 당시 행사에서 김 위원장의 관심과 애정은 중국 대표단보다는 러시아 쇼이구 국방장관에게 쏠렸다.
또 지난달에는 중국 항저우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려 북한 선수단이 참가했지만, 개·폐막식에 북한 대표단은 참석하지 않았다. 선수단 단장으로 참여한 김일국 체육상이 유일한 고위급 인사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당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별도 대표단을 이끌고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면담한 것과 비교된다.
북한은 2018년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면서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을 대표단으로 보낸 사례가 있다.
지난 18일 베이징에서는 제3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이 열렸는데 북한은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다. 특히 올해는 일대일로 발표 10주년으로 중국은 행사에 공을 들였고 푸틴 대통령은 직접 참석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북한은 2017년 5월과 2019년 4월 열린 1∼2회 포럼에는 김영재 대외경제상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보냈다. 포럼에 처음으로 불참한 셈이다.
최근에는 중국이 코로나19로 국경이 폐쇄되면서 발이 묶였던 유학생이나 식당 종합원 등 중국 체류 북한인 전체의 송환을 요구해 북한이 불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고려항공 여객기를 베이징에 보내고 단둥에서 북한 사람들을 실은 버스가 대규모로 신의주를 향하는 것도 이런 중국 요구에 따른 것이라는 후문이다. 또 최근 중국에 수용 중이던 탈북자의 대규모 북송도 이런 중국 측 요구의 연장선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러시아와 밀착하고 중국과는 다소 소원한 관계를 이어가는 북한의 외교 행태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의 외교 스타일이 다변화나 다각화보다는 한 국가에만 집중하는 '올인형'이기 때문이다.
2018년 북한이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영변 핵시설의 폐기를 담은 합의를 한 것도 결국 국제사회 제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을 통해 북미관계의 획기적 변화를 이뤄야만 한다는 판단 속에 미국으로 가는 길을 여는데 올인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남쪽의 정권교체와 이를 통해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화하는 상황에서 국방력 강화가 절실하고 경제강국의 위치에 오른 중국을 통해 경제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러시아를 통해 군사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외교노선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협력을 통해 두 차례 실패한 군사정찰위성의 안정적 발사를 위한 로켓기술 등 전략무기기술 협력도 가능하겠지만, 남북간 비대칭적인 재래식 군사력의 보완도 노릴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로 전략무기체계를 갖춰가고 있지만 전투기나 레이더망, 요격미사일 등 방공망이 부실한데 이런 부분을 러시아의 도움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은 지상전으로 장기간 이어지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의 전쟁양상을 지켜보며 재래식 무기의 중요성을 더 강하게 느낄 것"이라며 "북러간 협력이 재래식 전력에서도 강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도 당분간 북한의 외교 움직임을 관망하는 태도를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안보 부처 전직 고위당국자는 "미국과 전략적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은 북한, 러시아와 외교관계를 이어가면서도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대국이라는 입장도 중요하다"며 "북러간 군사협력이 강화하는 상황과 연결되는데 부담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외교적으로 미국과 대립하는 북한, 러시아뿐 아니라 중동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고 있지만, 대국이라는 국제사회에서의 위치를 만들기 위해서 국제사회의 반발을 사고 있는 이슈들과는 거리를 둘 것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중국보다는 러시아와 관계를 풀어가는 북한 김정은식 올인 외교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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