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중국 복제 화가들의 눈물과 희망
사진전문 갤러리 ‘류가헌’에서 지난 22일까지 전시한 중국 대표 다큐사진가전 가운데, 유하이보(余海波)의 사진과 영상이 있다. 중국 심천(深圳)신문에서 사진기자로도 일했던 사진가는 1961년생으로 급격한 산업화 때문에 농업지역에서 인구 2천만 명이 넘는 국제도시로 변한 심천의 이주자들을 기록해 오고 있다.
이번 전시엔 서양화가들의 그림을 그리는 중국 복제 화가들이 소개되었다. 사진가는 20년간 고흐 그림을 그린 농촌 출신 자오샤오용을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 사진과 영상으로 풀어낸다. 전시된 사진들은 좁은 작업실에 빨래처럼 널려 있는 고흐의 복제그림들과 그 아래에서 윗옷을 벗고 노동에 지쳐 자는 그림 노동자들의 모습 등이 소개되었다. 무엇보다 사진가가 직접 촬영한 <중국의 반 고흐>의 영상을 보면 더 큰 감동이 밀려온다.
중국 심천의 ‘대분유화촌’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복제 그림들이 제작된다. 고흐의 ‘해바라기’나 ‘자화상’은 물론 다빈치의 ‘모나리자’, 렘브란트의 ‘야경’ 등이 수없이 복제 제작된다. 날씨가 더운지 상의를 벗고 그림을 그리는 남자들은 화가라기 보다 페인트공에 가깝다. 조금이라도 원본에서 변형하는 창의성(?)을 가미한다면 바로 “잘못 그렸잖아. 다시 그려”하는 질책이 돌아온다. 중간 상인은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와 ‘해바라기’ 수 십장을 멍석처럼 말면서 주인공에게 며칠 내로 빨리 만들어 달라고 재촉한다.
주인공 자오샤오용은 동생과 아내도 복제화가다. 중국의 시골 깡촌에서 올라와 도시에서 배운 기술이 복제그림을 그리는 것. 가난해서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한 주인공은 복제 그림 덕분에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았다. 하지만 그의 소망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고흐미술관을 찾아가서 고흐가 그린 원본 그림을 보는 것. 고흐 그림만 20년을 그린 그의 꿈에 어느 날 고흐가 찾아와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다. 주인공은 “당신과 가까워지고 있다”고 대답했지만 고흐는 말없이 사라졌다고 했다.
어느 날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무심히 색칠하던 아내가 “당신 돈이 없어서 못 갈 거야”라며 만류했지만 결국 주인공은 암스테르담에 도착한다. 그리고 거리의 기념품 가게에서 팔리는 자신의 그림 값이 중간 상인에게 넘긴 가격보다 10배 넘게 비싸게 팔리는 것을 보며 크게 실망한다.
하지만 더 큰 좌절은 미술관에 걸린 원본 그림을 본 후였다. 자신이 수도 없이 그렸던 고흐의 자화상을 보면서 말한다. “내가 그렸던 색과 다르다”고. 20년을 고흐를 보며 따라 그렸지만 고흐가 그린 진짜 그림 한 장 보다도 못한 자신의 그림들을 크게 부끄러워했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의 고향과 할머니 그리고 자신이 일하는 복제 그림 공장을 그린다. 술에 취한 주인공은 다른 복제화가들에게 말한다. “우리의 인생이 바로 우리의 예술이야.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그려야해. 지금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거지만 5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면 사람들이 우리의 그림을 우러러볼 거야”. 반 고흐가 생전에 그러했듯이.
*유튜브에 ‘China van Gogh’를 치면 1시간 20분짜리 영어자막 원본 영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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