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특별법이 ‘야만적 기구’ 낳는다고? [이태원 참사 1주기]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태원 특별법)’은 8월3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에서 가결됐다. 지난 4월20일 야 4당(민주당·정의당·진보당·기본소득당) 의원 183명이 공동 발의한 이 법안은 6월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신속처리 대상(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국회법상 패스트트랙 법안은 본회의 처리까지 최장 330일(상임위)이 걸린다. 소관 상임위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90일, 본회의 60일이다. 소관 상임위인 행안위 문턱을 8월31일 넘었으니, 늦어도 내년 2월에는 본회의 표결에 부칠 수 있게 됐다. 4월 총선 전에 처리된다는 이야기다.
이태원 특별법의 목적은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피해자 권리 보장이다. 우선 법안은 이 참사를 ‘재난관리 책임기관들이 예방, 참사 대응 및 수습 등 전방위적 관리 및 대처를 하지 못해 발생한 사회적 재난’이라고 규정한다. 제안 이유에 ‘참사 이후에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부적절하거나 부실한 조처의 문제가 제기됐다. 그러나 현재까지 재난관리 책임기관들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적었다. 이 포괄적 조사를 하기 위한 법이 이태원 특별법이다.
행정안전부는 이태원 특별법 제정에 반대한다. 8월31일 행안위에 출석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이태원 참사의 진상이 경찰 수사와 국정조사 등을 통해서 규명이 되었고 피해자와 유가족 지원 등은 특별법이 없어도 현재 진행되고 있으므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지 않다.” 국민의힘도 입장이 같다. 이날 행안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법안 처리에 반발해 단체로 퇴장했다. 결국 이태원 특별법은 야당 소속 의원들만 재석한 가운데 처리됐다.
국민의힘은 이태원 특별법의 수단과 목적 모두에 문제를 제기한다. 특별법의 목적인 ‘진상규명’은 이미 달성됐다는 게 국민의힘 인식이다. 지난 7월13일 국민의힘 행안위 소속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불순한 의도로 만든 이태원 특별법은 정쟁만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회 국정조사로 (이태원 참사) 진상이 규명됐고 책임 소재가 있는 이들에 대한 사법 당국의 재판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법안의 숨은 목적은 “법안에 반대하면 참사와 유가족의 아픔을 외면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당리당략”이라고 국민의힘은 본다.
8월31일 행안위에서는 진상규명의 수단이 과도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국민의힘 김웅 의원은 법안이 규정한 특조위(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야만적인 기구”라고 말했다. 특조위가 “조사 외에 영장 청구도 사실상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원 기능까지 한다”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특조위를 수사와 재판을 함께 하는 “규문주의(糾問主義) 기구”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보기에 정당한 목적과 적절한 수단을 갖추지 않은 이 법은 ‘세월호 특별법의 반복’이다. 권성동 의원은 8월31일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9번에 걸쳐 국정조사, 특조위 조사, 특검 수사했다. 새로운 진상이 밝혀진 게 있나? 검찰 수사 이상으로 새로운 원인을 밝혀낸 게 없다. 오히려 사회적 갈등과 불신만 증폭시켜 왔다.”
이재근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이태원 특별법TF 간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는 특별법 원안 작성 과정에 관여했다. 시민대책회의는 이 사건 진상규명이 완료됐다고 보지 않는다. 진상조사에 참여한 개인이나 개별 기관의 탓만은 아니다. 그 과정이 수사기관 중심으로 이루어진 데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이 간사는 말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큰 권한과 독립성을 갖춘 특조위가 필요하다는 게 특별법에 담긴 논리다.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부터 정부는 진상규명을 수사로 처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책임을 물을 대상을 경찰로 한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지난해 11월7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경찰은) 정보 역량도 뛰어난데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나? (중략) 사고를 예방하는 경찰 업무에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진 경찰 수사에 대해 ‘윗선’의 책임을 충분히 물었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지난 1월13일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피의자 24명을 입건했다. 특수본은 행안부·서울시·경찰청·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에 대해서 “구체적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보고 수사를 종결했다.
법안 통과 이후에도 여러 난관 남아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제 식구를 감싼 결과일까. 이재근 간사는 수사라는 '문법' 자체의 한계를 말했다. “수사는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지, 이 사람을 사법처리 할지’에 집중한다. 그러나 사회적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려면 더 큰 구조적 원인을 살펴야 한다.” 수사는 법에 따라 처벌 대상을 정하는 과정이다. 법 위반 여부를 살피는 과정에 들어가면 실무자에게 책임이 집중되기 쉽다. 그래서 이재근 간사는 “경찰청이나 서울시, 행안부에서 왜 당일 인파를 관리하는 대책을 내놓지 않았는지 등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는 ‘조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참사 재발 방지책은 실무자 처벌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특별법상 특조위 권한이 유례 없이 강하다는 비판도 사실과 거리가 있다. 특별법 원안에서 징역 등 형벌에 처한다고 정했던 동행명령 위반, 허위자료 제출 벌칙은 행안위 수정을 거치며 과태료 부과로 완화됐다. 세월호 진상규명법과 비슷한 수준이다. ‘영장 청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특별법 제31조는 특조위가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수사기관에 의뢰할 수 있다’고 적는다. 이 ‘의뢰가 조사에 필요’한지 판단하는 것은 수사기관의 몫이다. 특검 요구 또한 국회에 의결을 요청하는 과정을 거친다.
만약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과정의 아쉬움이 반복된다면 오히려 특조위의 약한 권한 탓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윤복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이태원참사 TF 단장은 “아직 통과되지 않은 법을 두고 세월호 (특별법) 수준과 견주는 것은 부적절하다”라면서도, “세월호 진상규명 과정의 문제점이 반복될 우려는 남는다”라고 말했다. 형사처벌 조항이 빠졌기에 “정부기관에서 자료를 주지 않으면 조사 기구로서는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특조위 인적 구성도 난관이다. 원안에서는 특조위원 17명을 ‘추천위원회’가 임명하도록 했는데, 수정안은 특조위원을 11명으로 줄이고 국회 추천 9명(국회의장 1명, 여당 4명, 야당 4명), 유가족 단체 추천 2명으로 바꾸었다. 국민의힘은 여당 몫이 부족해 불공정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윤 단장은 “적은 수라도 조사를 방해하는 위원이 나올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10월16일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기자회견을 열어 특별법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요구했다. 남인순 민주당 이태원참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올해 안에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법사위와 본회의가 남았지만 이태원 특별법은 야 4당의 수적 우위로 제21대 국회 내에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법안 처리는 첫걸음일 뿐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려면 험난한 관문 여럿을 통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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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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