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상 방해해도 ‘멀쩡한’ 사업주 [세상에 이런 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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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퀴즈.
다음 중 가장 무겁게 처벌받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부정한 방법으로 산재보상을 받은 노동자 A. 산재 발생 사실을 은폐한 사장 B. 산재보상을 위한 재해조사를 방해한 사장 C. 답은 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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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퀴즈. 다음 중 가장 무겁게 처벌받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부정한 방법으로 산재보상을 받은 노동자 A. 산재 발생 사실을 은폐한 사장 B. 산재보상을 위한 재해조사를 방해한 사장 C. 답은 A다. 최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산재보험법 제127조 3항). B는 최대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고(산업안전보건법 제170조 3호), C에게는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전부다(산재보험법 제129조 3항 4호). 말하자면, 부정한 방법으로 산재보상을 받은 노동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산재보상을 받지 못하게 한 사장보다 훨씬 무겁게 처벌받는 셈이다. 이게 정당한가.
재영씨(가명)는 굴삭기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여러 종류의 분진과 가스가 노출되는 공장이었다. 특히 유기용제가 많이 쓰였다. 그러다 전신경화증에 걸렸다. 피부나 혈관, 내부 장기가 굳어버리는 희귀질환이다. 유기용제는 전신경화증의 발병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산재보험법 시행령 [별표 3]).
하지만 근로복지공단과 서울행정법원은 재영씨의 병이 산업재해(업무상질병)가 아니라고 했다. 업무 중 유기용제에 노출된 수준이 높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사업주의 진술이 크게 작용했다. 사업주는 “사무직 사원으로 현장 업무는 하지 않았다”라고 했고, 따라서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일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러한 진술은 거짓이었다. 재영씨는 원래 현장 작업자들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작업자 중 한 명이 갑자기 퇴사해 그의 일까지 맡게 되었다. 재영씨와 현장 작업자들은 당연히 현장 인력이 곧 충원될 거라 기대했지만, 회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재영씨가 임시로 맡았던 현장 업무는 그의 전담 업무가 되었다. 그렇게 2년여가 흘렀다.
자연히 재영씨의 업무가 과중해졌다. 기존 현장 작업자보다 현장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았다. 1주 평균 69시간을 일하기도 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에게만 보호구가 지급되지 않은 것이다. 다른 작업자들에게는 필터가 달린 방독 혹은 방진 마스크가 지급되었지만, 재영씨는 ‘관리직’이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다행히 서울고등법원은 이러한 사정들을 살폈다. 사업주 진술에 의존하지 않고, 그가 실제 무슨 일을 했는지 신중하게 들여다보았다. 그가 적정한 보호구(마스크)도 착용하지 못한 채 현장에 상주하며 근무했고, 심각한 과로에도 시달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지난 9월, 재영씨의 전신경화증은 산재보험법상 업무상질병이 맞다고 판결했다.
부정수급 신고만 독려하는 근로복지공단
공단과 1심 법원의 잘못된 판단을 2심 법원이 바로잡아준 것은 참 다행이었다. 하지만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로서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사업주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았듯, 재영씨의 업무에 대한 사업주의 거짓말을 ‘산재보상을 위한 조사 방해’로 보더라도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뿐이다. 그런데 지금껏 업무상질병 사건에서 작업환경에 대해 거짓말하는 사업주를 숱하게 보았지만, 이러한 과태료조차 부과되는 것을 본 적 없다. 거짓말했다가 들통이 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계속 거짓말을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 부정수급 문제에 유독 관심이 많다. 지난 4월에도 부정수급 신고 강조 기간을 별도로 운영하며 “국민 여러분의 관심과 적극적인 신고를 당부드린다”라고 했다. 공단이 산재 은폐 신고를 당부하거나 사업주의 조사 방해를 엄단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본 기억이 없다. 아픈 노동자들은 여전히 한참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다.
임자운 (변호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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