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 고철 물량 잠긴다···철강 빅3 스크랩戰 시작 [biz-플러스]

박호현 기자 2023. 10. 2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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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탄소철강 핵심 스크랩 내재화 시작
포스코, 계열사와 '직거래' 추진
현대제철도 관계사 수거량 확대
스크랩 기반 전기로 생산 제품들
용광로 대비 탄소배출 25% 수준
불황에 수입량도 줄어 경쟁 심화
[서울경제]

우량 고철(스크랩) 확보를 위한 철강 업계의 물밑 경쟁이 본격 시작됐다. 포스코와 현대제철(004020) 등 국내 주요 철강사들은 계열사나 대형 거래처, 협력사를 통해 우량 스크랩 직거래를 늘리며 스크랩 독점 거래 체제를 위한 내재화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에서 나오는 스크랩 물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수입 스크랩 역시 각국의 수출제한 조치로 고철은 갈수록 귀한 몸이 되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460860) 등 철강 ‘빅3’는 계열사나 협력사에 공급한 강재에서 발생하는 스크랩의 직거래를 확대하고 있다.

포스코는 최근 포스코그룹 계열사에서 나오는 스크랩 현황을 조사하고 이를 포스코로 수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포스코그룹 건설 부문 계열사인 포스코이앤씨의 공사 현장에서 나오는 스크랩을 직접 수거해 포스코로 공급하는 식이다. 다만 포스코 관계자는 “현황 조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대제철도 관계사인 현대차그룹의 자동차 생산 공정에서 나오는 스크랩을 수거하는 양을 늘리고 있다. 동국제강 역시 국내 주요 조선사에 공급한 후판에서 발생한 스크랩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입찰에 뛰어들고 있다.

스크랩은 전기로의 주 원료로 철근이나 형강과 같은 제품을 만든다. 특히 주요 철강사들이 저탄소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전기로를 속속 도입하면서 스크랩은 점점 부족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당초 스크랩 거래는 건설 현장이나 제조업에서 나오는 스크랩을 수거 업체가 거둬가 분류해 다시 철강사에 공급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자동차 공장이나 조선소에서 나오는 우량 스크랩을 확보하기 위해 계열사와 협력사·납품처로 직접 찾아가 직거래하는 방식으로 거래 형태가 바뀌고 있다.

글로벌 각국의 환경 규제로 스크랩이 더 많이 필요한데 국내에서 유통되는 스크랩은 정체·감소 추세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스크랩 구입 물량은 1725만 톤으로 전년 대비 7% 쪼그라들었다. 자가 발생도 505만 톤으로 11% 감소했다. 수입도 2.2% 줄어든 466만 톤을 기록했다. 현대제철의 한 관계자는 “철강 업계에서도 탄소 중립이 시작되는데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상용화되기 전까지 전기로를 써야 한다”며 “스크랩 수급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에 (각 철강사들도)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각 철강사들은 스크랩 내재화에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현대제철은 범(凡)현대가인 HD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에서 나오는 스크랩(고철)을 사실상 전량 회수하기 시작했다. 현대제철이 HD한국조선해양 계열 조선소에 후판을 공급하고 선박 건조 이후 남은 스크랩을 다시 사들이는 것이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통상 HD현대중공업 규모의 조선소에는 월 3000톤 안팎의 스크랩이 발생한다”며 “여기서 나온 우수한 생철 스크랩을 현대제철이 사실상 독점적으로 가져오는 셈”이라고 말했다.

현대제철은 그동안 그룹 관계사인 현대차와 기아 공장에서 나오는 스크랩을 회수했는데 이제 1차·2차 협력사에서 나오는 스크랩까지 확보하는 추세다. 이른바 스크랩 내재화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현대제철은 내년 충남 당진 공장 내 150톤 규모 전기로를 재가동하기로 했다. 스크랩은 전기로에 들어가 제품으로 다시 만들어진다.

1위 철강사 포스코도 스크랩 확보를 위한 속도전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는 2026년과 2027년 각각 광양제철소(300톤), 포항제철소(300톤)에 전기로를 신규 가동할 계획을 세웠다. 포스코는 여기에 6000억 원을 투자해 전기로 생산 체제를 가동하고 2050년까지 고로→전기로→수소환원제철용 유동환원로로 전환한다는 장기적 계획을 세웠다. KG스틸의 160톤 규모 전기로를 인수한 영국의 리버티스틸도 2025년 재가동할 계획이다.

포스코그룹 계열사에서 나오는 스크랩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포스코는 대형 거래선에서 나오는 스크랩까지 수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포스코가 강재를 공급하고 여기서 나온 생철을 다시 포스코가 회수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포스코에서만 생산하는 강종이 많다 보니 포스코의 제안을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기로에서 형강·철근 등을 생산하는 동국제강도 국내 주요 조선소나 대형 제조 업체에서 나오는 스크랩을 구매하기 위해 정식 입찰을 시작하고 있다.

스크랩 기반으로 전기로에서 나오는 제품은 고로(용광로)에 비해 탄소 배출량이 25% 수준에 그친다. 기존 고로 기반 제철 산업은 탄소를 줄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 1위 산업인 철강 업계가 전기로를 속속 도입하고 전기로에 들어가는 스크랩 확보를 위해 본격적인 경쟁을 하는 이유다.

스크랩 분류 설비 투자와 외부 공급망도 강화하고 있다. 업계 2위 현대제철은 최근 포항 공장 내 스크랩 선별 라인을 설치했고 순차적으로 당진과 인천 공장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스크랩 공급 업체들에 대한 간접 투자도 시작하고 있다. 일부 스크랩 업체들은 슈레더(Shredder)라는 가공 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슈레더는 뒤섞인 스크랩을 분류·가공하는 설비다. 설치 비용만 적게는 수십 억 원이 들 정도로 고가의 장비다. 현대제철은 이 설비를 설치하기 위해 자금을 대여하고 스크랩 물량을 다시 받는 식으로 거래를 하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도 2025년까지 200억 원을 투자해 전국 각지에 스크랩 수집 기지를 설립하기로 했다. 연간 50만 톤 규모의 스크랩을 포스코에 공급하는 조달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포스코인터 역시 지난해 총 4개의 스크랩 수집 기지를 구축하고 올 하반기까지 추가로 4기를 신규 설립할 예정이다. 포스코인터는 또 전국 각지의 중소 스크랩 업체에 최신 장비를 임대하고 고품질 스크랩을 수집해 가공한 뒤 포스코로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대형사의 우량 스크랩 내재화와 공급망 강화로 앞으로 스크랩 물량 부족 현상도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장이 새로 지어지거나 신규 건설이 있어야 스크랩이 증가한다. 호황에 스크랩이 더 발생하는 셈인데 최근 경기 침체로 스크랩 공급 자체가 줄어들고 수입 역시 감소하는 추세다. 국내 자동차나 조선 산업 내 생산이 늘어나고 있지만 스크랩의 주요 원천 시장 중 하나인 건설 시장 침체가 계속되면서 스크랩 공급 능력 역시 역부족이다. 여기에다 전 세계 각국도 저탄소 철강을 위해 스크랩 확보에 열을 올려 수입도 녹록지 않다. 유럽연합(EU)이 스크랩 수출을 규제하는 폐기물 선적규정(WSR) 개정안을 채택한 데 이어 일본 철강 업계도 스크랩 내수 유통 가격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 해외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다.

스크랩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수입 비중이 가장 높은 일본 스크랩 업계에서는 수출을 억제하기 위해 내수 가격을 수출 가격 이상으로 유지하는 기조가 뚜렷하다”며 “신일본제철 등 주요 일본 고로사들이 계획된 탄소 중립 정책을 그대로 이행할 경우 2030년 일본은 스크랩 순수입국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고 말했다.

박호현 기자 green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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