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수학] 떠오르는 젊은 일타강사 안가람의 성공 비법
요새 대치동 학원가엔 90년대생 젊은 강사가 뜨고 있습니다. 입시제도가 시시각각 변하는 와중 트렌드에 민감한 ‘알파세대’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는데 그중 안가람 시대인재 수학 강사는 수강생에게 수준 높은 수학 문제와 기발한 풀잇법을 제공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 비결이 수학자를 꿈꾸며 영재학교를 나와 석사 때까지 수학을 공부한 경력에 있다고 합니다.
○ 피 터지게 공부했던 영재학교 시절
Q. 학창시절 수학자를 꿈꿨다고 들었어요.
A "네, 전 초등학생 때 쇼트트랙 선수였는데요. 그러다 4학년 때 학교에서 수학 시험을 쳤는데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처음 수학 학원을 갔어요. 제가 문제를 이해하는 모습을 본 학원 선생님이 “수학에 재능이 있다”고 부모님께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5학년 때 제가 살던 대구의 영재교육원 2곳의 입학시험을 쳤는데 모두 붙으면서 ‘나 수학 좀 하나?’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죠. 저의 재능을 누군가 알아봐주고 교육해주니 상승 효과가 났던 것 같아요. 인정을 받으니까 저도 수학을 너무 좋아하게 돼서 수학자를 열망했습니다. "
Q. 2007년에 한국과학영재학교(한과영)에 입학합니다.
A "당시 한과영 1기 수석 졸업생 김현근 씨의 이야기를 담은 책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 없다'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때 한과영을 처음 알게 됐어요. 알아보니 영재학교는 교육과정에 얽매이지 않고 학생 스스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더라고요. 한과영에선 제가 좋아하는 수학을 마음껏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영재학교 시험은 대부분 서술형이기 때문에 뭐든 많이 읽고 쓰면서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글 쓰는 능력 자체를 기르자는 생각이었어요."
Q. 한과영에 입학했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이 궁금해요.
A. ‘이런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때는 영재학교가 한과영 하나밖에 없을 때라 전국에서 난다긴다 하는 학생들이 몰렸거든요. 한국수학올림피아드 수상자가 발표되면 금상 수상자가 다 저희 학교 친구들이었어요.
동기 중에 국제수학올림피아드 금메달 수상자도 2명이나 있었고요. 그래서 매 시험마다 ‘피 터지게’ 공부했습니다. 잠을 충분히 자본 날이 거의 없어요. 그 덕에 높은 등수로 졸업했는데요. 쟁쟁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제가 수학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수학자란 꿈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Q. 한과영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A "자율성이죠. 대학처럼 수강신청을 해서 학생이 직접 시간표를 짜고 수업을 들어요. 만약 부모님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학원을 다녔다면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죠. 저는 초중생 때 부모님이 두 분 다 일을 하셔서 어디든 저를 데려다 준 사람이 없었어요.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제겐 딱 맞았습니다.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에요. 시간이 지난 지금, 한과영 시절은 친구들 덕에 낭만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밤을 꼴딱 새우며 기숙사에서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수학 문제를 풀어도 지치지 않았어요. 모두 뜨거웠거든요. 저뿐 아니라 모두 공부를 향한 열정이 있어서 나약해지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졸업하고 10년 후에 동창회가 처음 열렸는데 동기가 144명 중 100명이나 모였어요. 비슷한 이공계 업계에 있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라 이야기만 나눠도 큰 의지가 됐습니다."
Q. 한과영 시절 수학에 관해 가졌던 고민이 있다면요.
A "한과영에서 대학 수학을 맛보면서 살짝 겁이 났어요. 배우는 내용 대부분이 200, 300년 전부터 활발히 연구가 됐던 거라 과연 내가 이보다 더 발전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죠. 그래도 당시엔 대학에 가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의심을 거두고 열심히 공부했어요."
○ 수학자 꿈꾸며 KAIST 선택하다
Q. 2010년 KAIST 수리과학과에 입학했습니다.
A. "수시모집에서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와 KAIST 수리과학과에 붙었는데요. 수학이 너무 좋아서 KAIST를 선택했습니다. 수학자가 되려면 빨리 전공을 정해서 수학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KAIST가 연구 중심 학교이기도 하고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KAIST를 선택할 것 같아요."
Q. 대학 생활이 궁금합니다.
A. "딱 2가지로 요약돼요. KAIST 응원단 ‘엘카’와 수학이에요. 입학식 때 응원단 공연을 보고 너무 멋있어서 응원단에 덜컥 지원했어요. 3학년 땐 단장까지 했죠. 직업이 응원단원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1년에 공연을 30개 이상 뛰었어요.
전국치어리딩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 KAIST 응원단이 우승을 한 게 이례적인 일이라 화제가 됐어요. 하나에 빠지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최선을 다했죠. 수학 공부도 수리과학과 차석으로 졸업할 만큼 열심히 했어요."
Q. 대학생 때 했던 가장 큰 고민이 뭔가요.
A. "‘과연 내가 수학자를 하며 먹고 살 수 있을까?’였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했던 고민이 이제 현실이 된 거예요. 기초 학문 연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모두 겪는 고민이죠. 수학을 해서 밥벌이를 하려면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실을 만큼 ‘새로운 가치’를 만들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좋아하는 학문이라도 내 삶이 영위돼야 계속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수학자가 되지 못하고 다른 진로를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금융공학과 산업공학을 부전공했습니다. 먼 미래를 내다보며 다양한 길을 생각해보는 태도도 중요한 것 같아요."
Q. 석박사과정 내내 교수를 꿈꾸며 금융 수학을 공부했는데요. 어떤 계기로 학원 강사가 되신 건가요.
A.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치면 제가 이 분야에서 1등은 아니더라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서요. 대학 수학을 공부해보니 개인의 역량에 따라 성과가 천차만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입시 수학’을 가르쳐보니 학생들의 타고난 역량에 관계 없이 제가 노력하고 끌어준 만큼 성과가 나는 경험을 했어요.
석사 과정 1년 차였던 2014년 고등학교 후배들의 내신 과외를 했는데 11명 중 6명의 성적이 확 올라 학생들 사이에서 제 이름이 소문난 적이 있어요.
당시 저처럼 영재학교 출신 강사가 영재학교 학생을 가르치는 경우는 없었어요. 제가 졸업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내신 공부를 했던 기억과 관련 자료를 갖고 있어 학생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제가 노력하면 수학을 통해 학생이 꿈을 이루도록 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러다 2015년 대치동 학원가에서 강사 제안이 와서 학원 일을 처음 시작했어요. 2021년까지 대학원에서 계속 공부했는데 점점 교수가 될 자신이 없어져서 전업으로 잘할 수 있는 학원 강사를 하기로 결심했어요."
○ 드라마 '일타스캔들' 치열쌤 판서의 주인공
올해 초 수학 일타 강사의 삶을 소재로 한 드라마 ‘일타스캔들’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나온 문제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아 인터넷에서 문제에 도전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요. 일타스캔들의 모든 수학 문제를 안 강사가 냈습니다.
Q. 주인공 최치열의 화려한 판서를 직접 쓰셨다고요.
A. "몇몇 장면은요. 드라마에 수학 수업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최치열 역을 맡은 배우 정경호씨가 분필을 처음 써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배우가 분필을 잘 쓸 수 있도록 두 달 가량 연습을 도와주고 촬영장을 방문해서 판서에 오류가 있는지 찾아내고 직접 판서를 하기도 했어요."
Q. 드라마에 등장하는 문제와 풀이도 직접 제공했나요.
A. "그렇죠. 저작권 때문에 드라마에 아무 문제나 쓸 수 없거든요. 제공한 문제는 대부분 제가 수업에서 사용하는 교재에 있는 거예요. 교재 연구와 강의에 조언해주는 30여 명의 연구팀과 제가 만든 문제라 자부심이 있습니다."
Q. 자문 과정은 어땠나요.
A. "많은 강의 스케줄을 소화하며 촬영장에 가야 했기 때문에 촬영 내내 무척 바빴어요. 그래도 새로운 경험이라 재밌게 했습니다.
정경호 배우가 집에 칠판을 사다 놓고 제가 쓴 판서에 계속 덧대어 쓰고 통째로 판서를 외우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했어요. 그런 연습 끝에 훌륭하게 수학 수업 장면을 연기해내는 모습을 보자, 제자가 성공한 모습을 본 것처럼 뿌듯했어요."
“지식이 아니라 행동을 가르쳐요”
Q. 지금까지 가르친 학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는.
A. "대학생 때 만난 과외 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학생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는데, 수학을 무척 잘했어요. 제가 가르쳐줄 게 거의 없어 과외를 그만두려고 했어요. 하지만 학생 부모님께서 부탁하셔서 2년 동안 과외를 했는데 뭐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서 수업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수업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었으면 했죠. 그래서 문제를 새로 만들기도 하고 문제 풀이도 항상 3, 4개씩 준비해서 알려주며 폭넓은 방식으로 풀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오늘날 수업 준비를 하는 제 방식과 태도가 그때 만들어졌어요."
Q. 대학에서 배운 수학이 지금 일을 하는 데 도움이됐나요.
A. "학문으로서의 수학과 입시에서의 수학은 완전히 달라서 지식적인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수학을 공부하며 사고하는 힘을 엄청나게 길렀습니다.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다음 단계를 추론하고 해결 방법을 고안해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기르는 데 수학이 가장 도움이 되거든요. 지금껏 수학을 통해 쌓은 이 힘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왔습니다."
Q. 강사님만의 강의 비결이 있다면요.
A. "저는 지식이 아니라 행동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지식 전달만 하는 강의는 AI에 대체될 수 있고,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한 문제를 풀 때 어떤 단계를 거치고 행동을 취해서 문제를 풀지에 관한 알고리듬을 알려줍니다.
입시수학은 시험 범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변별력을 위해 높은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도 나오기 때문이에요. 학생들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알고리듬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길 바랍니다. "
Q. 킬러 문제에 대해 정부가 새로운 방침을 내놨어요.
A. "상위권의 경우 자만하다가 시험에서 계산 실수로 낭패를 보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요. 수능에서 킬러 문제를 없앤다는 정부의 방침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실수로 인해 문제를 틀릴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러니 더욱 더 겸손한 마음으로 매일 문제를 풀어보며 결정적일 때 실수하지 않도록 연마하면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킬러 문제가 있든 없든 평소 수학 문제를 풀 때 다양한 풀잇법을 오래 고민하고 풀어봤다면 어떤 시험에서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Q.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A.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수학 점수를 잘 받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바라요. 수험생들은 정말 바빠요. 저는 수학만 공부하면 되지만, 학생들은 수학을 비롯해 언어, 영어, 탐구영역 등 공부할 과목이 많잖아요. 그 바쁜 시간을 쪼개 제 수업을 듣는 만큼 ‘시간의 가치’를 선물하고 싶어요.
돈이 아깝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재수생 반에는 절실한 마음으로 공부하는 학생이 많아서 더욱 어깨가 무겁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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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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