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스토리] "전기료 너무 비싸" 민영화 말고 공영화하라
['제주스토리'는 제주의 여러 '1호'들을 찾아서 알려드리는 연재입니다. 단순히 '최초', '최고', '최대'라는 타이틀에만 매몰되지 않고, 그에 얽힌 역사와 맥락을 짚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그 속에 담긴 제주의 가치에 대해서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주에 처음 전깃불이 켜진 날이 혹시 언제인지 아시나요?
한국전력공사 제주본부가 지난 2004년 발간한 『제주전기 77년 제주도 전력사』에 따르면, 제주도 최초 전기 점등일은 거의 100년 전인 1926년 4월 21일로 나옵니다.
이날은 제주 최초의 전기회사인 제주전기 주식회사의 사업개시일이기도 한데요.
제주시 건입동 1285번지에 있던 당시 제주전기가 보유한 40킬로와트(kW) 내연 중유발전기에서 생산한 전기를 통해 점등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1887년 3월 6일 당시 조선에서 최초로 고종 황제 내외가 머물던 경복궁 후원 건청궁에 전깃불이 들어온 지 39년 만이었고, 에디슨이 인류 최초의 전깃불을 밝힌 지 47년 만이었습니다.
당시 처음으로 전깃불을 본 제주도민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자료 내용을 종합해보면, 처음 제주도내에서 전깃불이 들어온 곳은 당시 제주성 내 산지천을 중심으로 건입리와 일도리 일대에 자리한 일본인 거류민의 주택과 관공서, 상가였다고 합니다.
극히 일부 지역에만 한정해 불이 들어온 것인데, 불이 켜지자 주민들이 몰려들어 신기한 전등 불빛에 놀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깨비불이라며 무서워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전등불에 담뱃불을 붙이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 "전기료 너무 비싸" 민영화 말고 공영화하라!
일제강점기 당시 개인사업자가 전기를 공급하면서 전기요금 인하를 촉구하며 전기공급 사업의 공영화 운동이 일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전기사업은 사업자들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고가의 이용료를 부과하면서 원성을 샀던 것입니다.
일종의 투기의 대상으로 여겨질 정도로 이윤 추구에만 매몰된 전기사업은 1922년 당시 평양부가 평양전기주식회사로부터 운영권을 사들여 공영화에 성공했고, 이후 이러한 움직임은 대구와 부산 등으로 확산합니다.
제주에서도 보다 일찍 전깃불이 들어올 수 있었지만 수익성을 문제삼아 사업을 보류하다가 일본인들이 제주 상권에 침투한 후에야 전깃불이 공급됐습니다.
당시 한반도의 대표적인 전기사업자가 제주전기의 창업자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96~1964)였다고 합니다.
오구라는 조선에서 땅 투기로 번 돈으로 제주뿐만 아니라, 호남과 영남, 함경도에서 크게 전기 사업을 일으켰습니다. 한반도에서 도굴한 수많은 유물로 채운 오구라 컬렉션의 주인이 바로 이 인물이기도 합니다.
특히, 당시 대구에선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오구라(당시 대구 거주)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이에 오구라는 자신이 전국 각지의 소유한 회사를 합병해 이름을 바꾸는 방식으로 여론의 눈길을 돌렸다고 합니다. 그 회사의 이름이 '대흥전기'였습니다.
이 여파로 제주전기도 1936년 10월 1일 대흥전기 제주지점이란 명칭으로 합병됐고, 이듬해엔 조선총독부의 조선전기사업령에 따라 다시 남선합동전기 제주출장소로 간판을 바꾸게 됩니다. 바로 이 남선합동전기가 현재 한국전력공사의 전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해방 이후 제주의 전력사(電力史)는 부족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전기가 산업의 동맥이며 생활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인식은 상식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은 일본군수산업과 재한 일본인들 사이에서만 적용됐다고 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제주는 일본인들의 투자 기피로 수요 증가에 따른 설비투자가 전혀 이뤄지지 않다가 해방을 맞게 됩니다.
다음 편에선 해방 이후 절대적인 전력난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전국 최초로 전화(電化)사업을 마무리한 제주인들의 저력 등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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