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서 오는 거 아니에요"…故송해 단골 '3000원 국밥집' 찾는 이유

천현정 기자, 김지성 기자 2023. 10.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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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할 때 이곳을 찾아요. 3000원이라는 가격을 떠나서 마음이 채워지니까."

27일 오전 10시 박용남씨(70)는 서울 종로3가역 5번 출구에서 50m쯤 떨어진 국밥집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안원호씨(70대)도 30년째 이 국밥집을 찾고 있다.

70대 이모씨는 이 식당에서 국밥을 먹고 바로 옆 실버영화관에 가서 영화 한 편을 보는 게 낙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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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의 한 국밥집. 뚝배기 하나와 공기밥, 깍두기가 한상차림이다./사진=천현정 기자

"적적할 때 이곳을 찾아요. 3000원이라는 가격을 떠나서 마음이 채워지니까."

27일 오전 10시 박용남씨(70)는 서울 종로3가역 5번 출구에서 50m쯤 떨어진 국밥집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식당은 탑골공원 인근에서 '송해 국밥'으로 통하는 곳이다. 맛도 맛이지만 국밥 한 그릇에 3000원이라는 가격으로 유명하다.

이 식당 메뉴는 우거지 국밥 하나. 손님이 들어오면 식당 직원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큰 솥에서 국밥 한 그릇을 퍼 올리며 손님이 미처 자리에 앉기도 전에 음식을 가져다준다.

점심시간이 한두시간 남은 시각에도 국밥집 문턱이 닳도록 손님이 드나들었다. 수십년째 단골이 많은 만큼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식당 직원은 '이 아저씨는 후추 없이', '여기는 공깃밥 2개'라며 손님 기호에 맞는 주문을 넣었다.

10년째 이 식당 단골이라는 박씨는 정년 퇴직을 한 뒤에도 종종 이곳을 찾는다. 저렴한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박씨는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오는 분들이 있어 여기에 오면 외로움을 잊게 된다"며 "깔끔한 맛과 정감 가는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27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국밥집 앞에 손님들이 몰려들고 있다./사진=천현정 기자


안원호씨(70대)도 30년째 이 국밥집을 찾고 있다. 그는 "송해 선생님이 생전에 이곳을 자주 찾으실 때는 식사하러 왔다가 인사도 하고 악수도 했다"고 회상했다.

70대 이모씨는 이 식당에서 국밥을 먹고 바로 옆 실버영화관에 가서 영화 한 편을 보는 게 낙이라고 한다. 이씨는 "국밥 한 그릇 3000원, 영화 한 편 2000원, 총 5000원으로 즐기는 나만의 취미생활"이라고 웃어 보였다.

빈자리가 없을 땐 모르는 사람과 한자리에 앉아 식사를 함께하는 게 이곳의 암묵적인 약속이다. 이날도 70대 남성 2명이 식사하던 테이블에 30대 남성이 앉아 식사를 함께하며 인사를 나눴다.

이 국밥집의 유일한 메뉴인 우거지 국밥이 솥에 준비되어 있다./사진=천현정 기자


이 국밥집의 아침은 새벽 3시에 시작된다. 재료를 손질하고 첫 번째 솥을 끓이다 보면 새벽 손님들이 방문한다. 이른 아침이든 늦은 밤이든 헛걸음하는 손님이 없어야 한다는 게 이 식당의 철칙이다. 이 때문에 명절 연휴도 상관없이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직원 강모씨(70대)는 "밤새워 일하고 온 분들이나 이른 아침 출근하는 분들, 밤늦게 찾는 분들 모두 발걸음을 돌리게 할 수는 없다"며 "재료 소진으로 일찍 문을 닫는 일도 절대 없다. 언제든지 영업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냉면 1만3000원, 짜장면 7000원, 공깃밥마저 2000원을 받는 고물가 시대에 국밥 한 그릇에 3000원이라면 한 끼 식사로 저렴한 편에 속한다. 그런데도 식당 직원들은 지난 7월 국밥 가격을 기존 2500원에서 500원 인상할 때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강씨는 "500원 올리기도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다"며 "탑골공원 인근에 안타까운 분들이 많다. 여기에서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끼니를 해결했으면 하는 마음에 가격을 올리지 않고 버티고 버텼다"고 말했다.

국밥집 직원이 국을 푸고 있다./사진=천현정 기자


손님 대부분이 나이 지긋한 노인이지만 검색을 통해 식당을 찾아오는 10대들도 종종 있다. 양천구의 한 고등학교 학생 A군(17)은 "학교 체험학습으로 인사동에 왔는데 3000원짜리 국밥집이 있다고 해서 친구들과 왔다"며 "공깃밥도 2000원으로 오르는 시대에 한 끼 3000원이면 정말 퍼주는 것 아니냐"고 했다.

천현정 기자 1000chyunj@mt.co.kr 김지성 기자 so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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