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놀라운 비전의 일본농구, KBL 사무국장단의 B.리그 연수기

점프볼 2023. 10. 2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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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정이인 한국가스공사 사무국장]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첫 해외로 가는 여정이어서 그럴까. 낯설음과 약간의 설렘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프로구단의 일원으로서, 최근 아시아의 빅마켓으로 떠오르고 있는 일본 B.리그를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기대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사무국 업무를 맡기 전 필자는 농구 팬의 입장에서 국내 몇 안 되는 농구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 B.리그와 KBL을 비교하며 KBL을 비방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래도 농구는 한국이지’, ‘일본은 적수가 안돼’, 니가 뭘 안다고 그래?’ 쏟아지는 비난 댓글에 나의 무지함을 자책하며 활동을 접기도 했다.

이번 연수를 통해 나의 인식이 틀렸으면 하는 바람, 또 한편으로는 연수라는 필수과목을 이수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스며들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한국의 농구인들은 공항 내 일본식 중식당에서 탄탄면을 맛있게 먹은 후, 일본 측 관계자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버스에 오르며 5박6일 간의 연수가 시작되었다.

B.리그의 명확한 비전과 목표
첫 번째 일정은 B.리그 관계자와의 리그 운영 전반에 관한 세미나였다. KBL은 2019년 이후 일본 B.리그와 협약을 통해 스포츠 교류를 확대해오고 있다. B.리그에 대한 첫인상은 ‘에너지’였다. 끓어올라 폭발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고요히 고압의 가스배관을 흐르는 그런 에너지 말이다.

그들은 10여 년 전부터 차근차근 혁신을 준비해왔다. 두 개로 나뉘어 있던 국내리그를 2015년에 통합해 B.리그를 출범시켰다. 개방형 리그 방식으로 B1, B2, B3의 디비전에서 41개 팀이 자유롭게 선수를 영입하고 경쟁한다. 샐러리캡도 없고, 드래프트도 없다. 구단의 운영 자율성을 극대화하여 수익성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8년이 흘렀다. 2022~2023시즌 기준 B.리그의 매출은 약 70억 엔(약 635억 원) - KBL의 약 6배, 평균관중은 3500명-KBL의 약 3배 수준으로 급성장했다. 특히 2023-2024시즌 10월 19일까지 평균 관중은 4650명으로 출범 이후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자율 경쟁을 통한 외형 확장이 성과를 거둔 것이다.

농구 월드컵에서 유럽 강호들을 꺾은 활약, 현역 NBA 리거 배출은 성과의 부수적인 파편에 불과하다. B.리그 사무국은 비전과 목표를 명확히하고 담대하게 실행해 온 것이다. 나는 아직 KBL에서 중장기 비전과 목표에 대한 얘기를 듣지 못했다. 당장 다가오는 차기 시즌 운영 목표와 추진과제라도 누군가 나에게 말해줬으면 한다.

사실 더 놀라운 점은 지금부터다. 이러한 외형적 성장과 성공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일본은 다음의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바로 ‘B-Inovation2026’이라는 혁신이었다. 기존의 B1, B2, B3를 3개 디비전으로 새롭게 나누어, 프리미어는 국적 구분 없이 최상위 레벨의 선수들이 뛰는 리그로 전환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각 디비전에 대한 라이센스 조건이다. 성적에 대한 강등제가 아니라, 아래 조건의 충족이 필수 조건이다.

B-INOVATION 2026

B. League PREMIER

특징 : 10~12개 구단, 외국선수 최대 4명(귀화 포함)
라이센스 조건 : 평균관중 4000명 이상, 12억 엔 이상 구단 수익, 전용 아레나 확보

B. League ONE
특징 : 30개 구단, 국내선수 양성
라이센스 조건 : 10억엔 이상 구단 수익

B. League Next
특징 : 8개 구단, 쿼터별 외국선수 출전
라이센스 조건 : 하부리그, 소규모 구단 운영 풀

시즌 전패를 해도 조건을 만족하면 하부로 강등되지 않는다. 가히 파격적이다. 결국 구단 운영의 궁극적 목표는 팬 확보와 수익 추구라는 뜻이다. 전용 아레나를 구축하고 관중을 유치하여 수익을 내라는 것이다. 리그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프로스포츠의 본질이다.

필자는 누구든 개인의 에너지의 총합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집중시키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리더가 할 역할이다. 일본농구의 에너지는 건강하게 흐르고 있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지난 3월 타계한 사카모토 류이치의 ‘Energy Flow’를 꺼내 들으며 한국 농구의 Flow는 어디로 향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하루였다.

연고지가 곧 팬이다
두 번째 주요 일정은 일본 프로팀과의 워크샵이었다. B.리그를 대표하는 최고 인기팀 치바 제츠와 전통적 강호인 가와사키 브레이브 썬더스 사무국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 구단의 대표적 특징은 강력한 연고지 기반의 팀 운영이다.

치바 제츠는 최근 12시즌 중 9회 우승, 일본 최초 1억엔 플레이어 토가시 유키 등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를 보유한 구단으로, 지난 시즌 25억엔(약 227억)의 연매출을 달성했다. 그중 스폰서 수입이 75%를 차지하며 320개의 메인 스폰서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 지역기업의 비율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가와사키의 상황도 비슷했다. 구단고유의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브랜딩하여 지역 밀착형 홍보를 하고 있었다. 단순 현금/현물 후원이 아니라, 지역기업과 공동 ESG활동을 하고 그 혜택을 팬들에게 환원하는 방식이었다. 출범한지 2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연고지 정착이 진행 중인 KBL의 상황이 아쉽게만 느껴지는 부분이다. 연고지가 곧 팬이다. 연고지에 팬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정치에서 ‘민심은 천심’이라고 한다. 팬심도 마찬가지이다. 팬심이 민심이고, 그게 바로 하늘의 뜻이다. 하늘에 맡기고 가만있으란 말이 아니다. 지역 팬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을 끌어 모으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참고로 가와사키팀의 유튜브 구독자는 15만4000명으로 B.리그팀 중 1위인데, 이 수치는 인구수 대비로 보면 더욱 도드라진다. 가와사키시의 인구가 154만 명인 걸 감안하면 주민 10명당 1명이 지역 농구팀의 구독자라고 볼 수 있다(치바 제츠 구독자수 12만 4000명/도쿄인구 1억2570만 명).

반면에 KBL의 구독자가 10만6000명에 머무르고 있는걸 보면, 가와사키팀의 연고지 정착 마케팅이 얼마나 큰 효과를 가져왔는지 알 수 있다. 지역과의 신뢰는 바닥부터 쌓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부러우면 지는건데…
세 번째 일정은 연수의 백미였던 오키나와 아레나에서 열린 FIBA 월드컵 개막전이다. 오키나와 아레나는 아시아 최초로 지어진 소위 ‘NBA식 농구전용 아레나’다. 지난 시즌 EASL 경기를 통해 국내 팬들에게도 소개되어 부러움을 샀던 경기장이다. 약 1만명 수용이 가능한 관람석, 어디서나 시야가 확보되는 육각형의 경기장 구조, 통유리의 스위트룸을 보니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이질감도 들었다.

앞서 얘기했던 많은 이슈는 사실, 이런 아레나를 건설하면 대부분 해결된다. 최신식 아레나가 있으면 쉽게 팬들을 모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생각하기보다는 주어진 현실에서 개선 할 점들을 실천해 가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부럽기만 해서 아레나 얘기는 여기서 줄이려고 한다. 언젠가 동아시아 슈퍼리그(EASL)에서 승부를 겨룰 날을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프로농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소회를 밝히면서 연수기를 마치고자 한다. 어떤 업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업역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르고, 유행이 바뀌다 보면 일의 행위 또는 명칭은 변함이 없는데 그 일의 업역, 즉 소속되는 곳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프로농구는 당연히 스포츠라는 영역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프로농구는 ‘쇼비지니스’로 업역을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내공연장 무대 위에 내리치는 음악과 조명, 이벤트, 주인공은 선수들이다. 모든 요소들이 한데 어울려 2시간의 완벽한 공연을 하는 것이다. NBA, B.리그는 이미 발상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업역을 새롭게 바라볼 때, 경기장은 콘서트장이 되고, 패션쇼의 무대가 되고 갤러리의 아뜰리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쇼비즈니스는 다시 한번 공간 비즈니스로 점차 진화되고 확대되어 가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가야만 한국 프로농구가 한 걸음 더 도약할 수 있다.

요즘 MZ세대 유행어 중에 ‘탕진잼’이란 용어가 있다. ‘탕진’과 ‘재미’를 줄여서 합친 신조어로, 경제 불황과 취업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젊은 세대가 적은 금액으로 최대한의 만족을 얻기 위해 사용 가능한 돈을 모두 쓴다는 뜻이다.

그렇다. 탕진도 해봐야 소중함도 알고, 반성한다. 하지만, 때로는 알지못했던 가치를 발견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도있다. 어느 때보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오프시즌을 보내고 2023-2024시즌의 개막이 다가왔다. 선수들이 흘린 땀의무게와 열정을 알기에 많은 팬들이 농구장을 찾아와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탕진잼'을 몸소 실천해주시길 감히 부탁드린다.

더불어 나에게 이 연수의 기회와 그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신 KBL 관계자분들과 농구팬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사진_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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