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청조는 어떻게 재벌 3세 흉내를 내고, 임신을 속일 수 있었을까...풀리지 않는 의문점들
재벌 3세 씀씀이 어떻게 가능?...51조원 가짜 잔고 보여주며 투자 회유
사기 범죄로 남씨에게 선물한 벤틀리·명품…“돌려받기 힘들 것”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씨의 재혼 상대였던 전청조씨의 사기 행각이 밝혀지면서 전씨의 범행 수법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벌 3세의 혼외자를 사칭한 점이나 뉴욕에서 나고 자라 승마 선수로 활약했다는 과거 등은 전부 거짓으로 드러났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은 존재한다. 지난 며칠간 벌어졌던 이 기상천외한 사건이 대체 어떻게 가능했고, 어떤 점이 아직도 의혹으로 남는지 전문가에게 확인해 정리해 봤다.
① 트랜스젠더와의 임신?...성전환 수술 여부 자체도 의문
남씨는 여성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전씨는 뒷번호가 ‘1(남성)’과 ‘2(여성)’로 시작하는 주민등록증 두 개를 갖고 있었고, 그가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결혼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 조사 과정에서 전씨의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는 여전히 남성이 아닌 여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성전환 수술을 받더라도 법적으로 성별을 바꾸려면 수술 받은 병원 기록, 본인의 성장 환경에 대한 진술서 등 여러 서류를 해당 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또한 개인의 성별을 포함한 인적사항 등을 다루는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을 하려면 몇 달간 시간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성전환 수술을 받은 전씨가 미처 법적으로 성별을 바꾸지 못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문제는 전씨가 실제로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전씨는 지난 2020년 2건의 사기 혐의로 기소된 뒤 같은 해 12월 항소심 재판에 따라 징역 2년 3개월 선고받고 여성 교도소에 수감됐다. 출소 시점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재판부의 징역형을 고려하면 이르면 지난해 연말, 올해 초 출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조선에 따르면, 전씨는 올해 1월 비즈니스 업무와 관련해 펜싱을 배우고 싶다고 남씨에게 연락해 왔다.
이윤수 이윤수·조성완 비뇨기과 원장은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 이후) 성기를 만드는 수술은 통상 1~2달이 소요된다”며 “모양을 만드는 데만 1달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수술 후 회복 기간도 몇 달은 걸린다. 여성 교도소에 수감될 때 생물학적으로 여성이었던 전씨가 출소 후 남씨와 만나기까지 성별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설령 전씨가 성전환 수술을 한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남씨가 밝힌 것처럼 임신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남씨는 전씨와 동거하던 중 전씨가 건넨 임신 테스트기로 여러 차례 임신 여부를 확인했고, 검사 결과 모두 임신임을 알리는 두 줄이 나왔었다고 밝혔다. 이윤수 원장은 “여자가 남자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면 정자 생성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고환 이식 수술을 받으면 (이론적으로) 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실제 이뤄진 사례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전씨가 남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추정되는 임신테스트기는 ‘가짜 임신테스트기’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해외 온라인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이 임신테스트기는 수돗물에 20초 담근 뒤 꺼내면 양성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②시그니엘 살고, 벤틀리 선물하고...그 돈은 어떻게 모았나
전씨는 월세가 500만원에 달하는 시그니엘에 거주하면서 남씨에게 벤틀리와 명품 가방을 선물하고, 경호원들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유명 유튜버 구제역이 전씨로부터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자의 발언을 인용해 밝힌 바에 따르면, 전씨는 카드값 61만6000원을 갚지 못해 2019년 이후 신용불량자가 된 상태다. 전씨의 피해자는 “전씨가 ‘본인 명의 재산이 없다’면서 돈을 갚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전씨는 어떻게 재벌3세를 흉내낸 씀씀이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시그니엘에 거주하면서 전씨와 안면이 있었다는 유명 유튜버 로알남에 따르면, 전씨는 자신을 파라다이스호텔 혼외자인 재벌 3세라고 소개하면서 로알남에게 접근해 왔다. 19만명 이상 구독자를 보유한 로알남은 투자 관련 강의를 하고 있는데, 전씨는 강의에 참석해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투자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다.
로알남은 전씨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우리은행에 접속해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한 후 51조원의 예금 자산을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투자를 유도했다고 했다. 전씨가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 51조원 규모의 자산은 올해 상반기 기준 현대차(20조7777억원)가 보유한 현금보다 많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이 79조9198억원이다.
김진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잔고 위조 변조 사기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어렵지 않다”며 “사기죄로 처벌받으면 최대 징역 10년형이지만, 피해금액이 5억원을 넘어갈 경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적용으로 최대 30년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전씨 관련 사기 피해 금액은 10억원 규모로 집계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잔고 확인 시 직접 금융기관을 통해 확인하거나, 법무법인이나 공증 기관을 이용하는 게 좋다”며 “투자를 할 경우에도 1회에 걸쳐 투자금을 모두 보내기보다 나눠서 보내면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고 했다.
③실명 그대로 쓴 전청조…이름은 왜 바꾸지 않았나
지난 23일 남씨와 전씨의 결혼을 알리는 기사가 나간 뒤 수많은 의혹과 주장이 쏟아졌다. 뉴욕에서 나고 자랐다는 전씨가 사실은 인천 강화도에서 중학교를 다녔다는 주장,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주장, 사기 전과로 감옥에 다녀왔다는 주장 등이었다. 이는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전씨를 둘러싸고 단시간에 이렇게 많은 정보가 모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전청조’가 좀처럼 보기 힘든 독특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씨는 왜 언론과의 인터뷰를 할 때도 가명을 쓰지 않았을까.
서초동 한 형사법 전문 변호사는 “범죄 경력이나 전과가 있을 경우 개명 심사 절차를 넘기 힘들 것”이라면서도 “언론을 통해 자신의 얼굴과 이름까지 공개한 것을 보면 사기 행각에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세금 미납과 같은 이력 역시 개명 불허 사유에 해당한다.
실제 전씨는 사기 행각에 언론에 알려진 남씨와의 관계를 활용했다. 남씨의 조카, 지인 등에게도 접근해 투자금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다. 유튜버 로알남 강의 수강생들에게도 이런 친분을 적극적으로 과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전씨가 개명 절차를 밟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개명에는 2~3개월이 소요된다. 과거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16년 한국으로 망명한 뒤 추적을 피하기 위해 태구민이라는 가명을 썼었다. 이후 2020년 2월 4·15 총선 출마를 계기로 원래 이름을 쓰려고 개명 신청했지만, 3개월 이상 시간이 걸려 태구민으로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④왕진진 이어 전청조까지...왜 다들 파라다이스 혼외자 사칭하나?
전씨는 본인이 국내외에서 카지노·호텔을 운영하는 파라다이스 그룹의 혼외자라고 주장했다. 파라다이스의 혼외자를 사칭한 이는 전씨가 처음이 아니다. 아티스트 낸시랭의 전 배우자이자, 사기·횡령과 배우자 폭행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받은 왕진진씨 역시 파라다이스 그룹 혼외자를 사칭했다. 앞서 지난 2003년 배우 김상중씨 역시 파라다이스 창업주 자녀를 사칭한 여성과 결혼 계획을 발표했다가 파혼하기도 했다. 왜 이들은 그 많은 그룹 중에서 파라다이스그룹을 찍었을까.
전씨와 왕씨(본명 전준주)의 경우, 파라다이스 오너가의 성이 ‘전’씨라는 점을 악용했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현재 파라다이스는 국내 카지노 대부로 불리는 고(故) 전락원 창업주의 장남인 전필립 회장이 이끌고 있다.
또한 카지노 사업 특성상 외부에 자산 및 경영 상황이 외부에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점을 사기꾼들이 노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 낸시랭 이혼소송을 맡았던 손수호 변호사는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파라다이스 그룹 혼외자 사칭은 굉장히 고전적인 수법이다. 사기꾼들이 많이 활용하고 있다. 호텔업, 또 카지노업이다보니 다른 유명 재벌가에 비해선 정보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파라다이스 그룹은 지난 26일 “전청조씨가 혼외자라고 주장하는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면서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악의적 비방, 인신공격 등 게시글에 대해 엄중하게 법적 대응할 방침임을 분명히 밝힌다”는 입장문을 냈다.
⑤전청조가 선물한 벤틀리·명품들…남현희는 돌려줘야 할까
남씨는 지난 몇 달간 자신의 SNS에 전씨로부터 받은 선물들을 과시해 왔다. 수십만원대의 헤드폰부터 수백만원짜리 명품 가방과 3억원 안팎의 고가차 ‘벤틀리’ 등이다. 하루 1200만원에 달하는 풀빌라를 이용하는 사진도 올렸다. 전씨에게 이별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진 26일 전후로 남씨는 전씨의 흔적을 SNS에서 모두 지운 상태다.
문제는 전씨가 사기를 통해 여러 사람에게 뜯어낸 돈으로 남씨에게 고가의 물품을 선물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남씨는 사기 행각을 통해 받은 선물을 전부 토해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씨가 실제로 사기행각으로 마련한 돈을 가지고 남씨에게 선물했다고 해도, 피해자들이 이를 돌려받기는 힘들 것이라고 추정한다. 관건은 ‘수사기관에서 남씨와 전씨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다.
형사 사건 전문인 최주필 법무법인 메리트 변호사는 “(남씨가 전씨의 사기 행위를) 알았거나, 중과실로 받았는지가 쟁점이 될 것”이라며 “남씨가 사기 행위를 몰랐다고 하면 돌려받기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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