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 내부 감사 중 돌연 압수수색당한 오너… 지금 태광그룹에 무슨 일이

노자운 기자 2023. 10.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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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News1 박세연 기자

지난 24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자택과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에 위치한 태광그룹 경영협의회 사무실이 경찰에 압수수색 당했다. 경찰이 파악한 혐의는 20억원대 횡령 및 배임. 경기 용인의 태광컨트리클럽(CC)까지 강제수사 대상이 됐다. 이 전 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나온 지 불과 두 달 만의 일이다.

이번 압수수색은 태광그룹이 이 전 회장 주도로 대대적 특별 감사를 진행하던 중 갑자기 실시됐다. 이 전 회장은 특수통 검사 출신 변호사들로 구성된 법무법인 로백스를 선임, 전 계열사 임원진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압수수색에 외부에선 경찰이 이 전 회장의 숨겨진 불법행위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태광그룹 내부에서는 이 전 회장이 진행 중인 사내 특별감사를 방해하기 위해 누군가 경찰에 일부 의혹을 제보하며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금 태광그룹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이호진 전 회장 공백기간 태광그룹 실세였던 K씨

이번 사태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전직 고위 임원인 K씨 등 태광그룹을 둘러싼 복잡한 역학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K씨는 태광그룹 전임 경영진 출신이다. 이 전 회장이 재판을 받고 형을 사는 동안 그룹 내에서 실질적 ‘1인자’ 노릇을 하다 최근 특별감사 과정에서 퇴사했다. 태광그룹 안팎에선 이번에 이 전 회장의 혐의가 경찰에 제보된 과정에 K가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K씨는 대형 건설회사 기획조정실장 출신으로, 2007년 무렵 태광그룹에 합류했다. 이 전 회장은 2010년부터 주요 계열사 지분의 편법 증여 혐의로 서울 서부지검에서 수사를 받았고, 이듬해 법정구속됐다. 과거 건설회사에서 기업 오너의 옥바라지 경험이 있었던 K는 이 전 회장의 곁을 지키며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K씨는 2014년 무렵 태광 경영기획실장에 임명되며 사내 실력자로 떠올랐다. 이 전 회장은 2011년 기소된 후 병보석 상태로 오랜 기간 재판을 받다 2019년에야 징역 3년형을 확정받았기에 정상적인 출근이 불가능했고, 경영 공백이 불가피했다. 이 공백을 채우며 그룹 경영의 정점에 선 인물이 K씨였다.

이 전 회장의 장기 경영공백을 우려한 오너 일가는 2018년 이 전 회장의 매형인 허승조 전 GS리테일 부회장을 경영협의회 의장으로 추대했다. 허 부회장은 ‘정도경영위원회’를 만들고 고위 검사 출신 인사를 위원장에 임명했다. 이 과정에서 K씨는 고문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K씨는 2022년 2월 경영협의회를 통해 다시 경영에 복귀했다. 이후 모든 계열사의 홍보실과 법무실, 감사실 등 주요 부서들이 경영협의회 직속 체제로 운영됐다. K씨는 의장으로서 이들을 모두 아우르며 그룹 전체의 중요 사항을 결정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이 2010년 검찰 수사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고 이선애 여사)가 실제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어머니를 불신하게 되면서 K씨를 중용했다”며 “이후 K씨가 사실상 그룹을 좌지우지하게 됐다”고 전했다.

◇ ‘롯데홈쇼핑 사건’ 계기로 오너 신뢰 잃어

K씨 자신도 법적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다. 2010년에는 휘슬링락 골프장 회원권을 사서 계열사에 비싸게 되파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2020년에는 티시스의 김치와 와인을 태광 계열사 및 직원 등에 강매해 논란이 됐다.

이 전 회장이 K씨를 불신하게 된 데는 롯데홈쇼핑 사건이 계기가 됐다. 올해 7월, 롯데홈쇼핑은 이사회에서 서울 양평동 사옥을 롯데지주 및 롯데웰푸드로부터 2039억원에 매입하기로 한 안건을 의결했다. 롯데홈쇼핑 2대주주인 태광그룹 이사회는 사옥 매입에 모두 찬성했는데, 당시 이사회 멤버들이 K씨 측근들로 알려졌다. 태광그룹은 뒤늦게 당시 롯데홈쇼핑의 사옥 매입이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롯데그룹의 자금 조달 필요에 의해 추진된 것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중요한 사안이 이 전 회장에게 보고도 되지 않은 채 의결된 것을 보면서 K씨에 대한 전 회장의 불신은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 전 회장이 사면된 후 태광그룹은 롯데홈쇼핑 이사회의 결정을 번복하고 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9월 초부터 최근까지 진행돼 온 특별 감사에서도 이 문제를 면밀히 들여다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K씨와 측근들의 비리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호진 회장, 사내 특별 감사 지속 의지

태광그룹은 최근 경찰이 수사 중인 횡령·배임 의혹에 대해 “이 전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전 경영진의 전횡과 비리 행위가 이 전 회장의 배임·횡령 의혹으로 둔갑해 경찰에 제보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해당 혐의가 이 전 회장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에는 태광그룹 내부 감사에서 적발된 전임 경영진의 비리 사실도 일부 기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달여 간의 감사를 통해 일부 전임 경영진의 비리 혐의가 확인돼 이르면 다음 달 고소·고발을 준비하고 있던 중 경찰이 돌연 압수수색에 나선 것이다. 감사 결과는 태광그룹 내에서도 일부 관계자들만 알고 있어 어떤 경위로 경찰에 제보 형태로 흘러 들어갔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찰이 적용한 혐의는 크게 세 가지인데, 모두 2013~2018년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2013~2015년 사이에 집중됐다고 한다. 이 전 회장이 구속집행정지로 나와 재판을 받고 있던 시기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데다 (기업 회장치고) 혐의 내용이 명확지 않은 사건은 검찰이 수사할 만한 성격이 아니기에, 경찰에 제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태광그룹 안팎에선 이번 압수수색이 사내 특별 감사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은 경찰 수사와 관계없이 특별감사를 계획대로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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