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예술 반세기... 실로 그리다 ‘이신자 회고전’ [전시리뷰]
예술로 재탄생… 섬유미술 새지평
그녀의 삶 따라 변천사 고스란히
韓정서 ‘십장생’ 현대 기법으로 표현
“실로 그림을 그립니다. 50년대에는 실과 바늘로 기존 틀에서 벗어나는 작업을 했고, 60년대부터는 염색과 직조를 병행하며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임했습니다.”
내면의 기억과 풍경들을 ‘짜고, 엮고, 감아내며’ 손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태피스트리’라는 개념이 없었던 50여년 전, 이신자는 실을 뽑고, 엮는 거칠지만 대담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나가 불모지였던 한국 섬유예술의 새 지평을 열었다.
반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그의 섬유예술 작품 90여점과 아카이브 30여점을 한 데 모은 전시 ‘이신자, 실로 그리다’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다. ‘1세대 섬유예술가’ 이신자의 대규모 회고전에선 그의 삶의 궤를 함께 한 한국 섬유예술의 발자취와 변천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실과 천을 다루는 일이 오래도록 여성의 몫이자 가사 노동으로 치부돼왔던 것에서 벗어나 섬유예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주로 자수·염색·매듭·직조 등이 독립적인 섬유미술로 작동하던 1950~60년대에 이신자는 천 위에 밑그림을 그리고 크레스파스를 칠하거나, 자수와 염색을 하나의 화면에 담아 섬유미술의 폭과 깊이를 확장했다.
이신자의 초기작인 ‘장생도’는 사슴, 학, 거북 등 가장 한국적인 정서인 십장생을 현대적인 기법으로 표현했다. 면을 촘촘히 메워가는 전통의 자수 방식에서 벗어나 실의 꼬임과 풀림을 응용하고, 천을 오려 붙이는 ‘아플리케’ 방식으로 작품의 입체감을 살렸다.
특히 1980년대 초 남편과 사별한 이신자는 ‘기구 Ⅰ’, ‘메아리’, ‘화합 Ⅰ’ 등에서 보이듯 강렬한 붉은색과 검은색의 대비를 통해 상실감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했다.
1980년대 후반엔 곡선 형태를 띤 직조의 모양이 직선으로 변하고 푸른색이 더해져 차분함 속에서 강렬한 힘을 드러냈다. 전시장 한가운데 원형으로 자리한 초대형 작품 ‘한강, 서울의 맥’은 63빌딩 등 당시 서울의 전경을 19m 길이로 구현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한 폭의 산수화처럼 보이지만 날실과 씨실의 교차로 건물과 나무 한 그루도 놓치지 않고 입체감을 부여했다. 당시 작가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태피스트리에 금속을 고정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자연을 관조할 수 있는 하나의 창으로 금속 프레임을 배치해 3차원 세계를 구성, 자연에 대한 확장된 시각을 제공했다. ‘산의 정기’, ‘지평을 열며’ 등은 절제된 도상과 화면 분할, 강렬한 선의 반복으로 구상과 비구상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김진우씨(38)는 “작품의 뒤를 보면 색색의 실들이 매듭지어 지거나 꼬이면서 또 하나의 작품을 이뤄 신기했다”며 “실로 짠 그림이라는 ‘태피스트리’를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섬유예술가의 예술 여정을 되돌아볼 수 있어 전시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지난 9월22일 개막한 전시는 내년 2월18일까지 이어진다.
김보람 기자 kbr13@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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