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상승에 올라가는 '집값원가'…'PC공법' 조립식 아파트 부활할까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주택 대량 공급이 한창이던 1990년대 전후 인기를 끌었던 프리캐스트 콘크리트(Precast Concrete·PC) 공법, 이른바 '조립식 아파트'가 최근 공사비 상승 여파로 부활할지 주목된다.
◇공기단축 장점에 우후죽순 지었지만…누수·균열 '한계'
PC공법은 콘크리트 블록을 만들어 이어 붙이는 건축기법이다. 일반적인(RC·Reinforced Concrete) 현장에선 '철근배근'을 하고, 형틀목수가 콘크리트를 부을 일종의 모형인 '거푸집'을 만들면, 그대로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양생'한 뒤 튼튼하게 굳으면 거푸집을 떼어내는 작업을 거친다. 이 작업을 미리 공장에서 진행, 현장에선 이미 만들어진 PC부재((components)를 조립해 건축물을 짓는 것이다.
즉, 제조업의 개념을 건설업에 도입한 건축공법으로 볼 수 있다. 주로 교량 등 토목공사에 적용하는데, 공사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1980년대부터 아파트 건축에도 적용됐다. PC공법이 적용된 가장 유명한 아파트로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1988년 준공된 5500가구 규모 올림픽선수기자촌 단지가 있다. 서울 노원구에 1999년 준공된 1600가구 규모 태강아파트는 단지 바로 앞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방학할 때 공사했는데 개학하니 '뚝딱' 지어진 아파트'로 회자되기도 했다.
콘크리트 블록을 조각조각 이어 붙이다 보니 건물 외관상으로도 실선이 보인다. 이는 시간이 흘러 공법의 한계로 드러났는데, 건물이 노후되면서 누수와 균열이 필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한 대형 시공사의 건축 부문 관계자는 "당시에는 공기와 비용도 줄이고 꽤 혁신적인 공법으로 각광받았는데 이후 '실패'로 판명 나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라고 귀띔했다.
아파트값이 고공행진하던 2020~2021년 투자자들 사이에선 PC공법 아파트가 구조안전성이 떨어져 안전진단 통과 가능성이 높아 재건축이 상대적으로 빠를 수 있다며 '인기 투자처'로 꼽혔던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다.
◇인건비 상승·기후변화 대응해 '선진기술'로 부활
그런 PC공법이 다시 주목받는 건 인건비 상승 및 기후변화 이슈가 날로 불거지는 최근이 돼서다. 건설·건축은 본래 노동집약적 산업인 만큼 인건비 상승은 공사비 증가의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 측면에서도 PC공법은 현장 소음과 분진을 줄일 수 있어 비교적 친환경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날씨와 계절 변화에서 자유롭게 건축할 수도 있다. 예컨대 평균 기온 4도·최저 0도 이하에 콘크리트를 치는 '한중 타설'시엔 굳는 속도가 느려져 강도 확보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한여름철 '서중 타설'은 수화반응 시 열 발생으로 수분이 지나치게 빨리 증발해 건조·수축으로 인한 균열 발생 위험이 있다. 비 오는 날도 빗물이 섞일 수 있어 원칙상 타설 금지다.
이 같은 이유로 PC공법은 미래 시대 건축문화의 화두인 OSC(Off Site Construction, 탈현장 건축)와도 맞닿아 있다.
이미 싱가포르에서는 선진화된 PC공법을 적용한 초고층 아파트를 짓고, 이를 확대하고 있다. 도심에 위치한 최고 50층 7개동 1848가구 규모 아파트 피나클 듀스톤(Pinnacle@Duxton)은 2011년 지어졌고, 이후 2019년 준공된 애비뉴 사우스 레지던스는 56층 높이다.
특히 사우스레지던스에는 PC공법 중에서도 가장 발전된 형태인 'PPVC(Prefabricated Prefinished Volumetric Construction)'를 사용했다. 스트레이트타임스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올해 7월 6번째 PC부재 복합공장(ICPH) 문을 열었는데, 이 공장은 현존하는 모든 종류의 주거용 PC부재 제작이 가능하고 연간 생산용량이 10만 입방미터에 달한다. 도심고밀개발과 건설분야 자동화·디지털화를 위해 PC공법을 확대한다는 게 싱가포르 정부와 현지 건설업계의 방침이다.
◇'모듈러'로 20년 만에 '돌아온' 조립식 아파트, 과거 한계 극복할까
국내에서는 공공이 업계와 합심해 포문을 열었다. 지난 7월 입주한 13층 1개동 106가구 규모 아파트 '용인영덕 경기행복주택'이 그 시작이다. 이 아파트는 정확히는 '모듈러(Prefabrication) 공법'을 적용한 것이다. 모듈러 공법은 PC공법보다 좀더 많은 공정을 공장에서 작업하는 건데, 퍼센티지에 따라 다르지만 거칠게 단순화하면 집을 하나 만들어서 층층이 쌓아 올리는 식이다. 발주처인 경기주택도시공사(GH)와 시공사인 현대에지니어링 설명에 따르면 기본 골조뿐만 아니라 욕실 등 70% 이상의 공정을 충북 진천 공장에서 만든 뒤 현장에서 조립해 지었다.
GS건설이 모듈러 주택 전문 다회사 자이가이스트(XiGEIST)를 설립해 일본이나 유럽식 모듈러 단독주택 시장에 도전장을 내고, DL이앤씨가 모듈러 유닛을 단순히 적재하는 데서 나아가 상하부를 끼워서 결합할 수 있는 구조물을 개발해 낸 것도 향후 '조립식 아파트'가 부활할 시대를 대비해온 노력의 일환이다. GS건설은 현재 영국 런던에서 모듈러 공법으로 23층 높이 호텔을 짓고 있고, DL이앤씨는 한국주택도시공사(LH)의 '타운형 모듈러 단독주택'을 건설 중이다.
서울시 한 관계자(건축 부문)는 "최근 아파트 공사비가 오르는 데는 인건비 비중이 큰데, PC공법이 과거의 한계를 극복하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 시공사 관계자는 "과거 PC공법 아파트 실패 이후에도 건설사들이 모듈러 기술을 계속 개발해 온 만큼 나중엔 다시 각광받게 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기술적 한계 극복뿐만 아니라, 부자재 공장에 대한 대규모 투자, 이미 굳어져버린 '조립식=낮은 안전성'의 사회적 인식 개선 등도 업계 관계자들이 뽑은 과제다.
모듈러 기술을 비용 절감 등 산업적 가치로만 접근하기보단,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홍재승 연세대 건축공학과 겸임교수(플랫/폼 아키텍츠 소장)는 "아파트에선 개개인이 원하는 거실의 크기나 공간 배치 차별화에 모듈러 기술을 이용할 수도 있고, 근린생활시설에선 상업시설의 임차인이 바뀔 때마다 그 사용 목적에 따라 모듈러 기술로 손쉽게 변화를 줄 수도 있다"면서 "기술, 투자 비용, 사회적 인식 개선 등 문제를 극복한 뒤엔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건축의 다양성 확장 측면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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