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도 더 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어느 곳에도 민생은 없었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대부분의 (언론) 매체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이라는 제목으로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분리 벽의 반대편, 철조망 반대편에 있는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전쟁은 결코 그들의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이스라엘 이웃국가인 요르단의 라니아 알 압둘라 왕비는 지난 25일(현지시각) 미국 방송 CNN의 크리스틴 아만푸어와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스라엘과 전쟁은 "75년 동안 있던 이야기"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 정파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70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갈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양측 간 갈등에는 역사적 배경뿐만 아니라 양측의 내부 정치적 상황, 아랍권 전체의 정치 지형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 왔다.
최근 출간된 <최소한의 중동 수업>의 저자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책에서 이들의 갈등에 다양한 요인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내부 상황을 분석했다.
장 센터장은 "팔레스타인과 공존을 주장하는 중도와 진보 연합은 극우 민족주의의 안보 포퓰리즘 폭주를 막지 못한 채 분열돼 있다"며 "이스라엘 사회 양극화에는 중도와 진보 진영의 쇠락이라는 배경이 있다"고 해석했다.
팔레스타인의 내부 상황 역시 만만치 않다. 팔레스타인은 서안 지역을 통치하는 파타흐와 가자 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로 세력이 나뉘어져 있는데, 장 센터장에 따르면 파타흐는 "해외 원조금 배분을 둘러싼 부패 네트워크의 축"으로 악명이 높다. 하마스는 1973년 조지된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였다가 이후 무장 투쟁을 하는 세력으로 전개됐다.
양측은 각각이 통치하는 지역에서 반대세력을 탄압하고 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지도층의 부패를 팔레스타인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답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어느 곳에도 민생 정치는 없다"는 것이 장 센터장의 평가다.
이같은 내부 분석을 통해서 사안을 관찰해보면, 양측 간 충돌 원인을 단순히 그동안 축적되어온 반목과 대립 탓으로만 돌릴 수 없게 된다. 장 센터장의 표현에 따르면 "국가는 한 목소리를 내는 단일 행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 어디서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기에 대응하려면 한 나라의 결정이 내부의 복잡하고 격렬한 권력 투쟁을 뚫고 나온 손익계산의 역동적 결과라는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며 중동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 또 주요 행위국가인 튀르키예, 아직도 내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시리아 등의 현재 모습을 외부 상황뿐만 아니라 내부 정치적 상황 등도 함께 고려하여 분석한다.
예를 들어 장 센터장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최근 엄청난 변화를 보이는 데 대해 "2010년대 중반에서 이어진 저유가 시대가 촉발한 재정위기"가 원인으로 작용했다면서도 "카라반 부모 세대로부터 벗어나려는 MZ세대의 요구"도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소개한다.
즉 "2000년대 초반 미국이 첨단 공법을 이용해 셰일에서 원유를 생산하는 '셰일 혁명'을 일으키면서 외부 충격에 속수무책으로 취약한 자원 부국의 저주"가 이들을 변화시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35세 이하 청년 세대가 종교, 가족, 공동체, 민족대신 개인 의사, 실용주의, 민주주의, 세계화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며 내부 구성원들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장 센터장은 "튀르키예의 21세기 술탄이라 불리는 에르도안 대통령과 그 1인 체제에서 분투하는 반정부 야권 연합, 반미 구호 아래 핵 개발도 불사하는 이란 보수파와 정상국가 회귀가 목표인 개혁파의 충돌을 둘러싼 역동성"을 살펴야 "역내외 이해관계 구도가 정확히 나온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개입 역시 "공화당과 민주당의 다른 계산법을 주목해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장 센터장의 조언이다.
그가 중동의 국가들을 '사회 화답력'과 '법 집행력'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분류한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장 센터장은 사회 화답력에 대해 "사회 화답력이 높은 국가는 시민의 요구에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응하며 복지 정책에 힘쓴다"고 정의했다.
'법 집행력'은 "특권층의 압박과 회유에 굴하지 않고 정책을 추진"하며 "이러한 자율성을 확보한 관료 덕분에 공적 영역의 부정부패 정도는 낮고 공공기관의 신뢰도는 높다"는 것과 관련한 개념이다.
이에 따라 국가들의 분류가 가능한데, 사회 화답력과 법 집행력이 모두 높다고 해서 1인당 국민 총소득이 높은 것만은 아니며, 인간개발지수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러한 지표를 통해 '중동은 역사적으로 권위주의적 경향을 보였다', '이슬람은 중동 민주주의의 핵심 걸림돌이다', '아랍의 친서구 자유주의자는 민주화의 핵심 세력이다'라는 기존의 통념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장 센터장은 지적한다.
그는 "논리적 접근법의 출발이자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써 이들 명제의 진의를 백분율로 나타내보는 연습이 유용하다"라며 책 곳곳에서 "통념"을 다루면서 중동이 이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했다.
물론 중동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과 근대 중동의 설립 과정을 고려했을 때, 중동의 많은 국가들을 서구식의 '민주주의'적 관점으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문제제기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자가 규정한 위 두 가지 개념은 이념적인 민주주의 확립을 넘어 실제 민생에도 직접적 영향을 주는 중요한 사안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또 종교나 인종, 민족이 주요 분류 기준이 되는 중동 분석에서 다소 다른 시각으로 중동을 알아보는 기회가 된다는 점 역시 분명해 보인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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