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의 기적… 귀촌 인구 늘어 행정리 승격한 증평 '까치골' [지역 소·극·장]
전원마을 인구 유입, 90% 이상이 귀농·귀촌 가구
절반이 4050, 마을 일·농사 함께 하며 이질감 극복
증평군의 적극 행정, 포용 정책도 인구증가 요인
편집자주
지역 소멸위기 극복 장면, '지역 소극장.'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넘고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를 4주에 한 번씩 토요일 상영합니다.
소멸 위기에 놓인 농촌 지역에서 인구 증가로 행정리(里)가 새로 생긴 곳이 있다. 충북 증평군 증평읍 덕상4리 이야기다. 이 마을은 지난 7월 7일 기존 덕상2리에서 분구해 어엿한 독립 행정리로 출범했다. 수년간 꾸준히 인구가 늘어 행정리 분구 기준(50가구 이상)을 넘어선 덕분이다.
덕상4리는 지역에서 ‘기적’으로 통한다. 아파트 단지나 산업단지 개발 등 인위적 요인이 아닌, 순수한 주민 증가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 마을 주민 대다수는 시골 생활이 좋다고 찾아 든 귀농ㆍ귀촌인이다.
“마을 출범일을 ‘독립기념일’로 부르면 어떨까요?”
13일 오후 찾아간 덕상4리 마을회관에서는 때마침 주민 대여섯 명이 모여 마을 일을 상의하고 있었다. 동네 입구에 세울 표지석 디자인과 문구를 놓고 갖가지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다양한 의견을 조정해 초대 이장 임승봉(58)씨가 마무리를 지었다. “표지석은 최대한 간명하게 제작하고, 출범일은 대청소 날로 정해 마을을 더 빛내는 의미 있는 날로 만듭시다.”
귀촌인, 원주민 한데 어우러져
화제는 이내 마을 자랑으로 이어졌다. 주민 조태용(61)씨는 “정남향에 3면이 야트막한 야산에 둘러싸인 풍경이 그림 같지 않냐”고 추켜세웠다. 박성미(57)씨가 “풍경도 풍경이지만, 하나같이 정이 많고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고 거들었다. 박씨는 마을 맞은편 산을 가리키며 “저기 보이는 거북이 알 모양이 풍요롭고 상서로운 곳임을 보여준다”고 풍수설을 펴기도 했다. 덕평4리는 예로부터 까치가 많아 일명 ‘까치골’로 불린다.
증평읍내에서 4㎞가량 떨어진 덕상4리는 전원주택 개발로 입주한 귀촌인과 원주민이 한데 어울려 산다. 전원주택 단지는 이 마을 출신 건축업자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어머니를 모실 집을 짓다가 개발 규모를 점차 키우면서 형성됐다. 입주민은 차츰차츰 불어났다. 10년 전인 2013년 11월 입주가 시작돼 현재 64가구가 외지에서 들어와 산다. 인근 청주뿐만 아니라 대전, 경기 의왕ㆍ안산, 경북 포항 등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을은 원주민 7가구를 합쳐 총 71가구 인구 147명으로 성장했고, 급기야 독립 행정리로 거듭났다. 이 마을의 90%가 귀촌ㆍ귀농 가구인 것이다.
이곳의 주민 구성은 퇴직자 등이 주축인 여느 전원주택 마을과는 완전 딴판이다. 연령층이 다양하고, 특히 젊은 층이 많다. 절반 이상이 40, 50대인데, 초등학교 이하 어린이도 12명이나 된다. 일반 직장인과 개인 사업가, 교사, 의사 등 직업도 다양하다.
출신 지역도 나이대도 사뭇 다르지만, 주민들은 마을 일을 함께 하면서 친해졌다. 매월 마을 대청소날에는 전 주민이 빠짐없이 동참하고 있다. 임 이장은 “서먹했던 사람들이 안길 쓸기, 가로수 가지치기 등 마을 가꾸기 작업을 함께 하며 정을 쌓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친해진 일부 주민들은 농사도 함께 짓고 있다. 마을 앞 3,300㎡의 큰 밭을 공동 경작하는 전효순(61)씨 등 4가구가 대표적이다. 초보 농군인 전씨는 “마음 맞는 네 가족이 협동농장처럼 공동 생산, 공동 분배를 하다 이젠 각자 농사지은 만큼 가져간다. 옥수수 들깨 배추 고추 무 양파 고구마 등 웬만한 작물은 다 자급자족한다”며 웃었다.
전원주택 단지라지만 이 마을이 획일적인 것은 아니다. 가옥마다 집 구조와 외형이 다 다르고 특히 집집마다 독특한 정원을 꾸며 놓았다. 마을 발전에는 똘똘 뭉치면서 각자의 개성은 살렸으니 ‘따로 또 같이’ 사는 셈이다.
잊을 수 없는 날… 2023년 8월 19일
마을이 활기를 띠는 데는 증평군의 적극 행정이 뒷받침이 됐다. 귀농ㆍ귀촌인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군은 전담 소통창구를 개설, 맞춤형 시책을 펴는 중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이재영 군수가 직접 마을을 찾았고, 이때 상수도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주민들은 각자 지하수를 파서 이용했는데, 석회질이 다량 섞인 수질이 문제였다. 당장 증평군이 움직였고, 각 가정을 잇는 상수관로 공사가 발주됐다.
덕상4리 주민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수도꼭지가 열린 지난 8월 19일이라고 한다. 이날 거행된 상수도 통수식에는 군수와 군의회 의장, 지역구 국회의원 등 주요 인사와 지역 주민들이 한데 어울려 한마당 잔치를 벌였다. 앞서 주민들이 요구한 마을길 아스콘 포장은 행정리 출범 전에 완공됐다. 마을진입로 반사경 설치, 과속방지턱 보수 등 안전시설은 이보다 먼저 개선했다.
증평군의 포용적인 상생 정책도 외지인의 유입을 이끈 한 요인이다. 충북 중부권 중심에 자리한 증평군은 인접한 다른 지자체 주민에게도 증평 주민과 동일한 복지 혜택을 베풀고 있다. 증평군립도서관 회원 가입을 개방했고, 콘도 골프장 루지체험장을 갖춘 벨포레 리조트와 좌구산 휴양랜드 등 유명 관광시설 사용료를 할인해 준다. 수영장, 풋살경기장 등 체육시설 이용료도 증평 주민과 똑같이 받는다. 이런 혜택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괴산군 사리ㆍ청안면, 음성군 원남면, 진천군 초평면 등 증평군과 경계를 맞댄 타 지역 주민 모두가 누릴 수 있다. 김성준 증평군청 주무관은 “개방적이고 주변을 포용하는 우리 군의 시책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장기적으로 인구 유입 효과를 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 2003년 3만1,581명이던 증평군 인구는 꾸준히 상승해 2021년 3만7,393명으로 정점을 찍었고, 작년까지 3만7,262명을 유지하고 있다.
'자연을 품은 마을' 기록
덕상4리는 약 10년에 걸친 귀농ㆍ귀촌과 행정리 출범 과정을 차곡차곡 담아 최근 기록집을 냈다. 전원주택 단지가 독립 마을로 승격한 과정을 널리 알리고 마을의 역사로 남기기 위해서다. ‘자연을 품은 마을’이란 제목의 책자엔 첫 외지인 입주부터 주민자치회 구성, 통수식 장면까지 마을 형성 전 과정을 소상히 실었다. 윷놀이, 천렵, 썰매타기 등을 함께 즐기며 이웃사랑을 키워가는 모습도 담았다.
기록집을 집필한 민병붕(62)씨는 “지역 소멸 시대에 역으로 성장한 귀촌 마을과 활력 넘치는 ‘새 마을’ 주민의 노력과 열정을 알리고 싶었다”고 발간 취지를 밝혔다. ‘증평기록가’로도 활동 중인 그는 “덕상4리는 순수한 귀촌만으로 행정리가 된 충북 1호 마을”이라며 “마을의 변화상을 담은 기록집을 계속 발간해 소중한 지역 문화자산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임 이장은 마을 생성 과정을 퍼즐 맞추기에 빗댔다.
“텅 빈 터에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둥지를 튼 모습이 마치 퍼즐 조각을 채워가는 것 같았어요. 이제 ‘덕상4리’라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으니 그 작품이 아름답고 오래갈 수 있도록 모두가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증평=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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