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숫자 뺀 맹탕 국민연금 개혁안, 이러고 文 정부 비판할 수 있나

조선일보 2023. 10. 28.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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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국민연금 종합 운영계획 발표를 마친 뒤 굳은 표정을 지으며 회견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연합뉴스

정부가 보험료율·수급개시연령·소득대체율 등에서 구체적인 수치가 빠진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았다. 연금 개혁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3대 개혁(연금·노동·교육 개혁) 중 하나인데, 정부안을 제시하면서 국민이 매달 내는 보험료율을 얼마나 더 올릴지, 언제부터 받을지, 받을 연금이 어느 수준일지 구체적인 숫자를 내놓지 않은 것이다.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맹탕’ 연금 개혁안이다.

정부가 구체적인 수치와 근거를 제시하면서 의지를 갖고 국민과 국회를 설득해도 모자랄 판인데 이런 안을 내놓았으니 내년 총선 전에 국민연금 개혁안을 입법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집권 5년 내내 국민연금 개혁을 외면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11월 복지부가 보험료를 더 내는 내용의 개혁안을 보고하자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며 걷어찼다. 그리고 마지못해 책임 회피용으로 구색을 갖춘 사지선다형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번 정부가 내놓은 안은 사지선다형보다도 더 퇴행한 맹탕이다.

그래놓고 정부가 한다는 말이 구체적인 수치는 “국회와 함께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적 논의, 공론화는 정부가 2018년부터 수백 번 반복해온 말이다. 전문가 토론회, 전국을 돌며 연 국민토론회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추가 논의가 아니라 구체적인 인상 비율 등을 정해 국민을 설득하는 것인데 그 결정을 국회에 떠넘겼다.

국민에게 부담을 더 질 것을 요구하는 개혁은 인기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연금을 이대로 두면 2055년 고갈되고, 그때부터 수령 대상자인 1990년대생이 연금을 받으려면 연금 가입자들이 수입의 30%가량을 보험료로 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개혁을 늦출수록 미래 세대가 받는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개혁은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알맹이 하나 없는 개혁안을 내놓아 전 정부와 다른 게 뭐냐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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