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에도 식당에도... 일할 사람이 없다

이미지 기자 2023. 10. 2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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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선 호출벨 눌러도 감감무소식… 건설현장선 외국인 근로자도 모자라
2023년 10월 25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의 한 식당에서 홀 직원 및 알바 주방 직원을 구인하는 공고가 붙어있다./고운호 기자

지난 14일 점심시간 서울 광화문의 한 냉면 집. 손님들이 식탁 위에 있는 직원 호출용 벨을 눌러대며 “서비스가 왜 이렇게 엉망이냐”고 불만을 쏟아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점심때인데 주문 받을 종업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냉면 집은 최근 종업원 8명 중 3명이 그만뒀는데 아직 새 직원을 구하지 못했다. 가족까지 동원했지만, 손님이 몰리는 점심 때는 감당이 안 된다.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초밥 집. 점심에 방을 예약한 손님 넷이 코스 요리를 주문하자 종업원은 “룸에선 단품 요리만 가능하다”고 했다. 일손이 없어 품목이 많은 코스 요리를 룸까지 나를 수 없다는 것이다. 주인 A씨는 “코스 요리 값이 더 비싸지만 일손이 없어 주문을 못 받는 것”이라고 했다.

국내 음식점·주점을 비롯한 서비스업, 전국 건설 현장에서 일할 사람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3D 업종’에서 주로 인력난을 겪었다면, 최근엔 한때 호황을 누린 서비스업과 자영업에서도 심각한 구인난이다. 건설 현장에선 의사 소통이 쉽지 않은 외국인만 보이고,그나마 한국인은 대부분 60대 이상이다.’자원은 없어도 있는 건 사람뿐’이라던 한국 산업 현장이 저출산과 고령화 늪에 빠져들며 ‘사람이 없다’는 아우성으로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아파트 공사 현장엔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 - 저출산·고령화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줄고, 고된 일을 꺼리면서 식당·주점이나 건설 현장 인력난이 심각해지고 있다. 건설 현장에선 외국인 불법 체류자까지 고용하고, 한국인은 60세 넘은 고령자가 대부분이다. 사진은 수도권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조회 모습인데 상당수가 베트남·중국 등 외국인 근로자다. /정순우 기자

일할 사람 부족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숙박 및 음식점업에서 부족한 인력은 5만6000명이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상반기(1만2000명)의 4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홀 서빙처럼 상당 시간을 서서 일해야 하는 업무를 꺼리는 이가 늘어난 데다, 단기간만 일하고 쉬면서 실업급여만 받아가는 얌체 실업자가 늘어난 탓도 크다.

서울 무교동의 한 일본식 술집. 가게 문엔 ‘인력 부족으로 점심 영업을 일시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이 가게는 지난달부터 저녁에만 장사한다. 본래는 낮에 직장인을 대상으로 돈가스와 카레 등 식사를 팔았지만 일할 종업원을 구할 수가 없어 낮 장사를 포기했다. 홀 서빙 종업원보다 상대적으로 월급을 많이 받는 주방 직원 구하기도 어렵다. 대전의 한 식당은 지난 6월부터 ‘고용이 어려워 부득이하게 영업시간을 단축하게 됐다’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김치찌개, 오리 주물럭 등을 내놓던 점심 장사를 접었다. 손님이 많이 찾는 인기 메뉴인 녹두전은 요리하는 데 손이 많이 가 이젠 팔지 않는다.

이처럼 식당은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영업시간을 줄이거나, 파는 음식 가짓수를 줄이고 있다. 직원을 구하지 못해 종업원 없이 홀로 일하는 자영업자는 계속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올해 3분기 435만5000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433만5000명)보다 2만 명 늘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3분기(414만1000명)보다는 21만4000명 증가했다.

그래픽=이철원

◇사라지는 ‘24시간 영업’

서울 명동이나 을지로처럼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서도 평일 밤늦게까지 장사하는 식당은 점점 줄고, ‘24시간 영업’ 식당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기 수원의 한 해장국 집은 아직도 간판과 명함에는 ‘24시간 영업’이라는 문구가 선명하지만, 지금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만 영업한다. 24시간 영업하는 대표 업종인 편의점도 최근엔 심야 영업을 포기하는 곳이 적지 않다. 보통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근무하는 종업원에겐 야간 수당으로 1.5배 일당을 줘야 해 비싼 인건비도 부담이지만 시급을 아무리 올려줘도 아예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당의 한 편의점 사장은 “낮엔 아르바이트생을 겨우 구해 쓰고 있지만, 저녁부터 새벽까진 남편과 내가 돌아가며 지킨다”고 했다.

일손 부족을 무인·자동화로 메우는 곳은 계속 늘어난다. 서울 잠실의 한 치킨 집은 식탁에서 손님이 태블릿PC로 주문·결제하면 로봇이 치킨만 가져다 준다. 접시나 포크는 손님이 손수 챙겨야 한다. 올해 9월 나온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사업체 비율이 가장 높은 업종은 숙박·음식점(20%)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이철원

◇일할 사람은 다 어디로 갔나

일할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전문가들은 인력 부족의 가장 주요 원인으로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노동 인구 감소를 꼽는다. 우리나라의 만 15~64세 생산 가능 인구는 올해 3637만명에서 2030년이면 3381만명, 2040년에는 2852만명으로 줄어든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올해 70.5%에서 2040년이면 56.8%로 떨어진다.

일할 수 있는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 일을 할 수 있는데 일하지 않는 사람도 늘고 있다. 3년 이상 장기 미취업자 중 고용이나 훈련·교육을 모두 받지 않는 구직 단념자인 ‘니트(NEET)족’ 비율은 2020년 20% 대에 머물렀지만, 작년에는 37.4%로 높아졌다. 일할 생각이 없는 젊은이가 점점 증가한다는 의미다.

퍼주기식 실업급여가 일할 의욕을 떨어뜨리고, 인력 부족을 일으키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업급여는 6개월 일하고 그만두면 받을 수 있고, 특히 하한액이 꾸준히 올라 월 184만7040원까지 높아졌다. 이는 최저임금(201만원)의 92% 수준으로, 세금을 감안한 실수령액 기준으로 하면 일해서 받는 최저임금보다 일하지 않고 받는 실업급여가 더 많다. 경총은 “구직급여를 받기 위해 채워야 하는 기간이 너무 짧아, 일하다 그만두고 구직 급여를 반복적으로 받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있다”며 실업급여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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