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하나엔 무덤이 된다… 하마스 ‘악마의 땅굴’ 500㎞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세력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21일째를 맞은 가운데 하마스를 궤멸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26일(현지 시각) “지상 작전이 거의 임박했으며 조건이 무르익는 대로 시작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앞서 25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지상전) 작전 개시 시점이 전쟁 내각과 군 참모부와의 합의에 따라 결정됐다”며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이 곧 개시될 예정임을 시사했다.
국제사회의 숙고(熟考) 요청에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 의지를 거듭 밝히자 관련국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미군은 중동 지역 미군 기지에 대한 방공 시스템 긴급 강화에 나섰다. 지상전이 시작될 경우 미군 기지에 대한 중동 이슬람 무장 세력의 보복 공격이 거세질 수 있어서다. 한편 하마스와 그 후원국 이란은 지난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 때 납치한 인질 석방을 위한 협상안을 내놨다.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이날 “하마스는 (납치한) 민간인을 이란을 통해 풀어줄 준비가 됐다”며 그 조건으로 팔레스타인인 죄수 6000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인질 석방 협상을 내세워 지상전 개시를 늦추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마스와 이란은 전일 러시아에 대표단을 파견해 외교적 도움도 청하고 나섰다.
친(親)팔레스타인 중동 국가들은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시작하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마스를 지원해온 이란은 지난 14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 공격을 하면 이란은 이에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카타르·이집트 등 아랍권 9국도 26일 외무장관 공동성명을 통해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가자지구 내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막대한 민간인 인명 피해를 피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유럽 등 서방국가 역시 같은 이유로 이스라엘의 지상전 개시를 만류해 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및 미 정부는 하마스에 먼저 공격당한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인정한다면서도 연일 ‘신중한 접근’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영국·프랑스·유럽연합(EU) 등도 “참사는 피해야 한다”며 이스라엘에 절제를 요청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지상전 강행 방침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결국 가자지구 북부 외곽부터 진입해 건물 하나하나를 수색·파괴해 가며 전진해 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방식으로 지상전이 전개될 경우 “가자지구는 ‘악마의 놀이터(devil’s playground)’로 변할 것”이라며 “이번 전투가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시가전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마스가 수년에 걸쳐 가자지구를 자신에게 유리한 거대한 ‘요새’이자 ‘덫’으로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의 수도 역할을 하는 가자시티는 20㎢의 넓이에 인구 70만명이 거주했다.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다. 그렇다 보니 다른 아랍 도시에 비해 큰 건물이 많다. 건물 하나하나가 지상군의 진격을 막는 대형 장애물이자 진지 역할을 하는 시가전에서 이스라엘 측에 크게 불리한 요소다. 지형지물을 이스라엘군보다 하마스가 훨씬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특히 하마스가 이스라엘에서 납치한 인질과 더불어 가자시티 내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앞세워 전투를 벌일 경우 민간인 사상자가 늘어날 위험이 크다. 이스라엘군은 이 같은 부담을 줄이려 지난 2주간 가자지구 북부의 민간인에게 남부로 대피하라고 요청해 왔다. 하지만 하마스는 가자시티에 민간인 약 3만~9만명을 억지로 남겨 놓았다고 NYT는 추정했다.
하마스가 가자지구 지하에 파놓은 총연장 500~800㎞의 땅굴도 큰 위험 요소다. 이 땅굴은 하마스의 무기고 겸 벙커이자 건물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통로로 활용된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 현지 매체들은 “하마스는 민간인을 방패 삼아 이스라엘군의 전진을 막고, 땅굴을 이용해 저격수를 건물 곳곳에 이동시켜 거리의 이스라엘군에 3차원적 공격을 쏟아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 거리와 건물 곳곳에 부비 트랩(인간을 겨냥한 폭발물 함정)도 설치 중이라고 알려졌다.
2014년 가자지구 전투를 지휘했던 전 이스라엘군 고위 장교는 “과거 경험을 바탕 삼아 무인기(드론)와 땅굴 정찰 로봇 등을 이용해 미리 위협 요소를 제거하고, 빈 건물을 파악해 무너뜨리는 등 차근차근 (가자지구를) 공략해 나갈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군인과 민간인, 아군과 적군의 구분도 쉽지 않은 정글 같은 환경에서 인명 손실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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