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은 늙어간다… 60세 이상 근로자 21% 넘어 사상 최고

정순우 기자 2023. 10. 2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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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다] 청년들 ‘건설업 이탈’ 갈수록 심화
저출산·고령화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줄고, 고된 일을 꺼리면서 식당·주점이나 건설 현장 인력난이 심각해지고 있다. 건설 현장에선 외국인 불법 체류자까지 고용하고, 한국인은 60세 넘은 고령자가 대부분이다. 사진은 수도권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아침 조회 모습인데 베트남·중국 등 외국인 근로자만 보인다./정순우 기자

이달 중순 찾은 수도권의 1500가구 규모 A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는 콘크리트 타설전 틀(거푸집)을 조립하는 형틀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 동(棟)에 대략 스무명 정도가 작업하고 있었는데 상주하는 한국인이라곤 감독관 한 명 뿐이었다. 감독관이 한국말로 지시하면 한국어를 알아듣는 베트남 근로자가 동료들에게 자국어로 전달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베트남 근로자 4명이 구석으로 이동해 담배를 피웠고, 조선족으로 보이는 근로자들은 개인 보온병을 들고 식당으로 걸어갔다. 현장 곳곳에는 ‘비상대피로’ ‘안전주의’ 등의 문구가 한글,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 4개 나라 언어로 쓰여 있었다. 세계적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다국어 안내판들이었다. 현장 소장은 “하루에 500명 정도 인력이 투입되는데, 80%가 외국인이고 나머지 한국인은 모두 50대 이상이며, 60대 이상이 점점 늘고 있다”며 “대한민국 아파트 공사현장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특히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건설업이 몸은 힘들지만 일용직 치고는 급여가 높은 편이어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단기간에 목돈을 쥐려는 대학생이나 취업 준비생들이 찾곤 했다. 하지만 힘든 일을 기피하는 심리가 확산하고 코로나 이후 택배, 배달 등 다른 일거리도 늘면서 건설 현장을 찾는 청년은 급감했다. 그 빈 자리를 장년층과 대다수 불법 체류자인 외국인 근로자가 메우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는 의사소통이 어렵고, 장년층은 신체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부실 시공이나 안전사고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건설현장에서 근무중인 모습./정순우 기자

◇외국인과 장년층만 남은 건설현장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건설업 근로자 209만2000명 가운데 60세 이상의 비율은 21.2%(44만3000명)다. 2013년 통계 집계 이래 최고 수치다. 반면 30대 이하 근로자의 비중은 21%였다. 10년 전인 2014년 30대 이하가 25.5%, 60세 이상 9.8%에 비하면 상전벽해다. 특히 전문성 있는 숙련공의 고령화가 심각하다. 대한전문건설협회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전문건설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능인력 평균 연령이 50세 이상인 업체가 전체의 79.5%를 차지했다. 35세 미만인 업체는 0.5%에 그쳤다.

고령 근로자가 할 수 있는 작업이 제한적인 탓에,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집계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건설현장의 외국인 근로자는 10만9865명으로 1년 전에 비해 1만6461명(17.6%)이 늘었다. 전체 현장 근로자의 14.8%다. 과거엔 조선족들이 주로 건설현장을 찾았지만 이젠 몸이 고된 골조 공정은 한국어가 서툰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근로자들이, 한국어가 되는 조선족은 중간 관리자를 맡는 경우가 많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경험 많은 30대 조선족 팀장이 60대 한국인 일용직을 데리고 일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건설 현장에 우리나라 젊은 근로자가 사라지고, 외국인 근로자가 이를 대체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 비상대피로 안내문이 한국어와 중국어, 베트남어 등 3국어로 표시돼 있다./정순우 기자

◇외국인 90%가 불법

더 큰 문제는 건설현장의 불법체류자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진다는 것이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추산한 결과, 전체 국내 외국인 건설 근로자의 90.7%에 달하는 32만108명이 불법 체류자였다.

외국인 건설 근로자는 현재 최장 4년 10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는 단순 일용직(E-9) 비자만 받을 수 있는데, 정부의 건설업 E-9 비자 쿼터는 해마다 2000~3000명에 그친다. 불법 체류자 없이는 현장을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건설사들도 외국인 근로자들의 비자를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경험이 많고 숙련도도 높아 불법 체류자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비자가 없어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심지어 일당도 높아지니 불법 체류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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