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더 내고 얼마 받는지’ 없는 연금 개혁안
보건복지부는 27일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하며 “저출산·고령화 위기 속 연금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현재 9%인 보험료율을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인 보험료율 인상 수준을 내놓지는 않았다. 내년 5월까지 활동하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진행할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구체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을 뜻하는 ‘소득대체율’ 조정에 대해서도 의견을 더 수렴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 숫자를 제시하지 않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연금 재정 안정을 위해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고, 이는 결국 미래 세대에게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연금 받는 나이를 더 늦추는 것은 고령자 고용 여건이 성숙한 뒤에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60세인 법정 정년을 늦추지 않고 연금 수급 개시 연령만 높이면, 은퇴 이후 소득 공백이 생기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1998년 연금 개혁을 통해 60세인 수급 연령을 2013년부터 5년마다 한 살 늦춰 2033년까지 65세로 상향하는 방안이 현재 진행 중이다. 올해 연금 수급 연령은 63세다.
이번 연금 개혁 정부안과 관련,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의 구체적 수치가 제시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윤석열 정부가 연금 개혁을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지속 가능한 복지 제도를 구현하고 빈틈없는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려면 연금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번에 구체적인 숫자가 포함된 개혁안을 내놓지 않고 방향성만 제시한 것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국회에서 연금 개혁 법안이 처리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연금 개혁의 구체적 수치를 논의하는 연금개혁특위가 활동하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추가 논의보다 구체적 수치를 정해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이를 회피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복지부는 이날 세대별 형평을 고려해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연령 그룹에 따라 차등하는 방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가령 보험료율을 현재보다 5%포인트 올릴 경우, 보험료율 인상을 40~50대는 5년, 20~30대는 15년이나 20년에 걸쳐 올린다는 설명이다. 이스란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청년 세대를 인터뷰해보니 젊은 사람은 보험료를 많이 내는데 연금이 똑같거나 적게 받고, 기성세대는 조금 내고 많이 받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며 “세대 간 형평과 공정성을 고려해 보험료율을 차등해서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 방안을 마련했다”고 했다.
복지부는 노후 소득 보장 기능을 강화할 방안도 제시했다. 우선 노령연금 수급자의 연금액을 줄이는 제도의 폐지를 추진한다. 앞으로는 퇴직 후 재취업해 소득을 올리더라도 국민연금 수령액이 깎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금은 노령연금 수급자가 전체 가입자의 3년간 월평균 소득 이상을 벌면 연금액을 깎고 있다. 올해는 기준액은 월 286만1091원으로, 세후 소득이 이보다 많으면 노령연금이 깎이기 시작한다. 적게는 10원, 많게는 100만원 넘게 삭감한다. 감액 기간은 최장 5년이다. 국민의 수명이 길어지고 국민연금만으로 노년을 보내기 어려운 상황인데, 감액 제도로 ‘일하는 노인’이 손해를 본다는 지적이 많았다. 유족연금 지급률도 현재 가입 기간에 따라 기본 연금액의 40~60%를 받는 것을 50~60%로 높이기로 했다.
정부는 청년 세대의 출산, 군 복무에 따른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인정해주는 ‘크레디트(credit) 제도’도 개선한다. 앞으로 출산 크레디트는 첫째 자녀를 출산하는 부모부터 연금 가입 기간을 12개월씩 추가로 인정해준다. 종전엔 둘째 자녀부터 인정해줬다. 군 복무 크레디트는 인정 기간을 현행 6개월에서 복무한 전 기간으로 늘린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