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에 막힌 핼러윈 참사 안전 법안, 1건밖에 통과 안됐다
작년 핼러윈 참사 이후 여야(與野)는 안전 대책 법안 48건을 경쟁적으로 발의했지만, 본회의 통과는 1건에 그친 것으로 27일 나타났다. 48건 중엔 재난 관련 중점 법안인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 개정안만 35건이었는데, 이 중 절반가량은 중복 발의돼 폐기됐고 나머지 17건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정치권은 참사 직후 안전을 위한 입법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정쟁에만 몰두하고 실제 대책 마련에는 손을 놓은 것이다.
본지가 이날 국회에 제출된 핼러윈 참사 관련 법안을 국회 의안 정보 시스템으로 확인한 결과, 발의된 법안 48건 중 본회의를 통과한 건 단 한 건이었다. 나머지 법안은 상임위에 계류 중이거나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재난안전법 35건 중 34건은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거나 폐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과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각각 올해 1월과 7월 재난안전법이 규정하는 ‘사회 재난’의 개념에 ‘다중 운집 인파 사고’를 추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재난 유형에 다중 운집 인파 사고가 포함되지 않아 인파 재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법안은 아직 상임위 논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참사 당시 책임 소재에 대한 수사 때문에 논의가 늦어지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이 핼러윈 참사 직후 나왔던 관련 법안들을 이상민 장관 탄핵과 연관 지어 다루며 심사를 아예 안 해왔다”고 했다.
지난 8월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대표 발의한 지자체 폐쇄회로(CC) TV 관련 법개정 논의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하 의원은 핼러윈 참사 당시 정부가 지자체의 영상 정보를 즉각 활용할 수 없어 대응이 늦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자체 CCTV를 국가 재난 관리 정보통신 체계와 연계한다’는 조항을 재난안전법에 넣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소관 상임위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민주당 이해식 의원이 지난 2월 대표 발의한 법안도 상임위 논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참사 이후 유족이 2차 가해에 시달리는 일이 생기자, 이 의원은 재난안전법에 ‘재난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하자고 했다. 하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이 외에도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의 개정안도 상임위에 머물고 있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은 작년 11월 국가·지자체가 24시간 사용 가능한 장소에 심폐소생 장치를 마련하는 내용의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여야는 서로 “상대방이 법안 논의에 소극적”이라고 하고 있다.
정치권은 정부가 제안한 법안 개정도 막아섰다. 정부는 작년 말 ‘주최자가 없는 행사’인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안전 관리 대책을 세우고, 행안부 장관이 특정 기관을 ‘재난 관리 주관 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법안 개정안을 냈다. 여야 의원들도 유사 법안을 10여 건 제출했지만 지난 9월까지도 정부안을 비롯해 어느 하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야당 의원들이 “정부안은 행안부 책임을 다른 기관에 전가하려는 것”이라고 반대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론의 비판에 밀려 행안위에서 처리한 이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핼러윈 참사 관련법 중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건 지난 4월 법안이 유일하다. 다중 운집 시 정부가 이동통신사 데이터 등을 요청할 수 있고, 재난 지역에 대한 국고 보조 지원 대상에 ‘소상공인’을 포함하는 내용이 골자다.
정치권뿐 아니라 정부가 추진 중인 안전 시스템 개편도 더디다. 행안부가 민주당 이해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정부가 발표한 ‘국가 안전 시스템 개편 종합 대책’의 이행률은 지난 21일 기준 21.6%(21건)였다. 정부는 인파 사고의 제도적 사각지대 해소 등 대책을 97건 추진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부가 밝힌 이행 과제 중 실제로 완료된 건 13건(13.4%)이었다. 나머지 8건(8.2%)은 완료되지 않고 계속 추진 중인 정책이었다고 이 의원실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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