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美 강경파들의 ‘협박 전략’

이민석 워싱턴 특파원 2023. 10. 2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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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게이츠 하원의원이 지난 2일(현지시각) 워싱턴 의사당 계단에서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관련 질의에 답하고 있다./AP 연합뉴스

미 권력 서열 3위인 연방 하원의장을 쫓아내 지난 3주 동안 ‘의회 마비’ 사태를 부른 건 공화당 의원 전체의 4%에 불과한 초강경파 의원 8명이었다. 공화당 96%가 “혼돈의 길로 가선 안 된다”고 만류했지만 막지 못했다. 한 줌의 극단 세력이 다수를 쥐고 흔드는 미국 정치의 취약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타협을 거부하는 이들은 주류(主流)를 뒤엎는 수준을 넘어 자신들이 미는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성공해 ‘신주류’로 뛰어오르려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들과 지지자들이 보인 ‘집단행동’은 한국 정치판의 극단 지지층을 연상하게 했다.

“마음 안 바꾸면 당신 아내가 위험해질 거야.” 중도 성향의 돈 베이컨 하원의원은 지난 한 주간 자신과 가족들을 겨냥한 협박 전화, 음성 메시지를 수백 통 넘게 받았다. 차기 의장 후보로 나선 공화당 짐 조던 의원에게 반대표를 던졌다가 같은 당 극성 지지자들로부터 공격받았다. 조던과 초강경파 의원 대부분은 공화당 내에서도 극단 성향으로 분류되는 의원 모임인 ‘프리덤 코커스(자유회)’ 출신이다. 조던을 반대했던 다른 공화당 의원 20여 명도 아내, 자녀들 이름과 연락처가 인터넷에 공개돼 공포에 떨었다.

이는 조던을 지지하는 강성 세력들이 같은 당 의원들을 상대로 ‘협박 전략’을 쓴 결과였다. 첫 표결에서 조던이 과반(過半)을 확보하지 못하자, 지지층을 동원해 반대 의원들 마음을 강제로 바꾸려 했다. 조던의 측근 토머스 매시 의원은 언론에 “그들은 곧 ‘육류 분쇄기(meat grinder)’ 앞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지지자들의 협박과 공세에 그야말로 ‘갈려’ 나가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동료 의원들을 상대로 대놓고 ‘좌표 찍기’ 공격에 나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 시위대가 지난 2021년 1월 6일(현지 시각)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 서쪽 벽을 기어오르고 있는 모습. 당시 상하원은 합동회의를 개최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를 인증할 예정이었으나 시위대가 의사당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로 회의가 전격 중단됐었다. /AP 연합뉴스

강경파들은 20명만 완력으로 깔아뭉개면 손쉽게 당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이미 2년 전 미 의사당 난입 사태 때 극단의 정치 팬덤이 얼마나 심각한 폭력을 불러올 수 있는지 보여줬다. 그런데 협박받은 의원들이 “겁먹지 않겠다”며 단합했다. 이들은 잇따라 성명을 내고 “폭력적인 억압 행위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당내 반대표는 25명까지 늘어났고, 조던은 결국 후보직을 내려놔야 했다. 미 언론들은 “위협에 굴복하려는 ‘관성’을 이겨낸 것”이라고 했다. 네 번째 후보로 나서 결국 당선된 강경파 마이크 존슨 신임 의장은 이를 의식한 듯 취임 일성으로 ‘대화’ ‘신뢰’ ‘화합’을 강조했다.

미 우익의 극단 세력이 보인 행태는 ‘개딸’로 불리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극단 지지층이 당내 반대 세력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번에 미 공화당은 지지자들의 도 넘은 위협과 노골적 협박이 의회 내부까지 들어오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국 민주당도 지지자들에게 “이젠 낯 뜨거운 행동을 멈춰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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