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양말·명품 재킷… 튀어야 사는 태국 정치인들
지난 17일 중국 정부 주최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 참석차 베이징을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난 세타 타위신(60) 태국 총리의 회담 당시 사진이 태국에서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짙은 청색의 정장에 분홍색 넥타이를 매고, 분홍색 양말을 신고 나왔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이 조합은 검은 정장, 검은 구두, 회색 넥타이 등 무채색의 푸틴 옷차림과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세타 총리는 나흘 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의 회담 자리에 새빨간 양말을 신고 나타났다. 세타 총리는 태국의 최대 부동산 개발 업체 ‘산시리’를 경영해온 기업인 출신이다. 서민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다가 군부와 갈등을 겪었던 태국 정가의 풍운아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추종하는 프아타이당 소속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9년간 통치해온 육군 참모총장 출신 쁘라윳 짠오차의 뒤를 이어 지난 8월 취임했다.
그는 정책이나 노선이 아닌 ‘패션’으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9월 첫 내각 회의를 주재하면서 분홍색 양말을 신은 데 이어, 한 주 뒤 외교 데뷔 무대인 뉴욕 유엔총회 참석 때는 빨간 양말을 신었다. 그가 취임 직후 인터뷰에서 “(빨간색을 상징으로 하는) 영국 축구팀 리버풀의 오랜 팬으로 20~30년째 빨간 양말을 즐겨 신고 있고, 분홍·주황 등 비슷한 계열 색깔도 선호한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가열되고 있다. 국익을 챙겨야 하는 정상 외교 최전선에서 개인 취향을 앞세우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태국 공영 PBS 방송은 “세계 지도자들과의 회동에 나서는 총리의 현란한 옷차림에 대해 국내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며 “정상 외교의 격식에 맞는 점잖은 품격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지적”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세타 총리의 옷차림이 개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남에게 보이는 시선을 중시하는 태국의 독특한 정치 풍토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런 현상을 “태국에서는 과시하는 것이 승자가 되는 길”이라고 분석했다. 심한 빈부 격차로 상류 사회에 대한 동경심이 강한 태국 사회에서 부(富)나 패션 감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튀어야 산다’ 전략이 정치인 성공 공식 중 하나라는 것이다. 세타 총리는 최근 개인적으로 760만바트(약 2억8400만원)를 주고 새로 장만한 렉서스 고급승합차를 타고 태국 국왕을 예방하러 가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탁신 전 총리의 막내딸이자 프아타이당 대표인 패통탄 친나왓(37)도 이런 공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세타와 함께 유력 총리 후보군이었던 그는 지난 5월 총선 당시 유세 현장에 나타날 때마다 샤넬 재킷, 디올 드레스, 구찌 신발 등 매번 새로운 명품을 입고 나타났고, 이런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시시각각 올렸다. 패통탄은 최근에도 다이아몬드 반지와 다이아몬드 귀고리, 목걸이 등을 착용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1만8000명이 몰려와 ‘좋아요’를 누르고 ‘너무 아름답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개혁적이고 서민적인 이미지로 지난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총리 취임 직전까지 갔던 피타 림짜른랏(43) 전 전진당 대표조차 총선 당시 210만바트(약 8000만원) 상당의 파텍필립 시계를 차고 다니는 모습이 언론에 잡혔다. 피타 역시 기업가인 아버지 덕분에 뉴질랜드에서 자랐고 하버드대를 나온 ‘금수저’인데, 자신에게 따라붙는 ‘명문가 도련님 이미지’를 굳이 감추려 하지 않고 은근히 과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앞서 2017년 쁘라윗 웡수완 당시 부총리는 250만바트(약 9300만원)에 달하는 초고가 ‘리처드 밀(Richard Mille)’ 시계를 찼다가 언론에 포착돼 논란을 불렀다. 현재 부총리 겸 내무부 장관인 아누틴 찬위라꾼도 지난 5월 총선 유세 현장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초고가 시계 브랜드 오데마피게를 차고 나타나 이목을 끌었다. 그의 집안은 태국 최대 건설사 중 하나인 시노타이엔지니어링건설을 운영하는 재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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