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의 神이 편애하는 사람이 있다?

김동식 소설가 2023. 10. 28.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주말]
[김동식의 기이한 이야기]
’초심자의 행운’ 이용하면
누구나 돈 딸 수 있을까
일러스트=한상엽

강원랜드 필승법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입니까? 녀석이 또 어디서 사기당하고 온 게 분명했습니다. 아주 단단히 혹했는지 침까지 튀겨가며 설명하더군요. “나 지난 주말에 강원랜드 갔다 온 거 알지? 거기 이상한 아저씨가 한 명 있더라고. 도박하는 내내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누구랑 통화를 하더라? 처음에는 신경 안 썼지. 게임 하면서 통화 좀 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근데 세상에 5시간 내내 그러고 있어.” “수다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지.” “아냐. 글쎄, 자기가 하는 게임을 생중계하고 있더라. 무슨 상황이고, 무슨 패가 나왔는지, 뭘 해야 할지 일일이 전부. 느낌이 오더라고. 타짜의 지도를 받고 있는 거구나.”

“흠, 타짜가 시키는 대로 원격 도박을 한다고?” “그렇지. 그래서 그 아저씨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 엄청 땄더라. 난 가져간 돈 전부 잃었잖아? 그 아저씨 나갈 때 따라 나가서 바짓가랑이 붙잡고 부탁했다. 그 타짜 전화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느냐고. 수수료라도 드리겠다고.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빵 터져서 웃기만 하는 거야. 타짜가 아니래.” 여기까지 들으니 솔직히 궁금했습니다. 제가 바로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 녀석은 목소리를 낮추더군요.

“너 ‘초심자의 행운’이란 말 알지? 노름 처음 하는 사람의 ‘첫 끗발’ 말야. 그 아저씨 논리는 그 초심자의 행운을 자기가 가져가겠다는 거였어. 한마디로, 도박을 처음 해보는 초심자에게 전화로 상황을 생중계하고, 초심자가 시키는 대로 다 한다는 거지. 그러면 초심자의 행운이 자기한테 와서 돈을 딸 수 있다는 거야.” 녀석의 눈빛이 흥분으로 반짝거렸지만, 저는 황당했습니다. “그게 무슨 필승법이냐?” “네가 잘 모르나 본데, 다른 분야는 몰라도 도박은 무조건이다. 도박에서 초심자의 행운은 절대적 진리다.”

“자 들어 봐. 원래 어떤 분야든 하다 보면 ‘쪼’가 생기는데, 도박은 그게 심각해. 도박은 확률 게임이지? 도박 좀 하는 사람들은 그 확률을 달달 외우게 된다고. 확률 49%면 안 걸고 51%면 걸고 그런다니까? 자기도 모르게 몸에 배어버린단 말이다. 근데 초심자는 그딴 거 없지. 그냥 느낌대로 막 하는 거야. 그게 오히려 돈을 따게 할 때가 있다는 거다. 왜냐? 카지노는 카지노 측이 1%라도 높은 승률을 갖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라, 확률 싸움 하는 사람들은 카지노에 질 수밖에 없거든. 그런데 확률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 막 한다? 카지노의 설계를 무시할 수 있다는 거지.”

“근데 확률을 모르면 보통 더 빨리 잃지 않나?” “아닐 가능성이 더 높지. 왜냐고? 도박의 신은 초심자에게 관대하거든.” “도박의 신?” “너 이 바닥에서 유명한 명언이 뭔 줄 아냐? 첫 도박에서 잃은 사람이 가장 운 좋은 사람이고, 딴 사람이 가장 재수가 없는 사람이란 말이다. 처음에 잃으면 도박에 흥미가 식을 수 있지만, 따면? 절대 못 잊지. 도파민이 폭발하거든. 도박에 재능이 있는 것 같고. 결국 도박판에 다시 앉는 사람은 돈을 딴 사람이지, 잃은 사람이 아니거든. 그래서 도박의 신은 초심자에게 무조건 행운을 내준다는 거다. 도박판에 다시 돌아오도록. 아주 잔인한 신이지.”

듣다 보니 꽤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녀석은 이번 주말에 다시 한번 강원랜드에 가서 필승법을 시도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사람도 벌써 구했더군요. 누가 한가하게 그걸 해주려나 싶었는데, 저도 아는 후배 재준이를 섭외했더군요. 시급을 쳐주기로 해서 말입니다. “재준이는 진짜 도박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대?” “블랙잭도 몰라서 내가 알려줬다. 무조건이야. 걔는 초심자의 행운으로 가득 차 있어. 기대해라. 많이 따면 소고기 살게.”

긴가민가하면서도 솔직히 결과가 궁금했습니다. 정말 강원랜드 필승법이 맞는다면, 그야말로 대박 아니겠습니까? 주말이 지나가고 월요일이 돼 녀석을 보자마자 바로 물었습니다. “야! 너 어떻게 됐어? 진짜 돼? 필승법이 먹혀? 땄어?” 녀석은 한숨을 푹 내쉬더군요. “다 잃었다. 안 먹히네.” 허무할 만큼 뻔한 결과였습니다. 역시 필승법 같은 건 없었던 겁니다. 하긴, 증명도 안 된 그런 허술한 논리가 먹힐 리가 없지요. 씁쓸하게 고개를 젓던 녀석은 제게 당부했습니다. “근데 재준이한테는 비밀이다.” “왜?” “재준이한테는 내가 돈 땄다고 말했거든.” “뭐?” “내가 네 초심자의 행운을 다 소진했으니까, 넌 앞으로 도박판 근처도 가지 말라고 말했거든. 가면 무조건 크게 잃을 거라고.”

의외의 대답이었습니다. 녀석은 아무것도 아닌 양 말했지만, 꽤 사려 깊은 행동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박판의 명언을 나름대로 실천에 옮긴 것이니까요. 아마 재준이가 강원랜드에 호기심을 가질 일은 없어 보였습니다. 저도 사실은 흥미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난 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녀석이 거짓말을 한 상대가 정말 재준이였을까요? 돈을 잃었다는 말이 거짓말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당시 제가 필승법에 너무 과도한 관심을 갖게 되는 걸 우려해, 흥미를 잃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혹시 필승법은 정말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어휴, 아닙니다. 아무래도 상관없겠죠. 어차피 도박판의 진짜 필승법은 ‘도박을 안 하는 것’일테니까요.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